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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전면 중단] 북 2013년엔 “존엄 훼손” 철수, 이번엔 언제 빛 볼까요

중앙일보 2016.02.11 03:01 종합 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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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0일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을 발표했다. 남북 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에는 현재 124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위 사진은 2015년 12월 불 밝힌 개성공단, 아래 사진은 2013년 4월 조업 중단 당시 불 꺼진 공단의 모습이다. [사진 강정현 기자], [중앙포토]


나는 열두 살배기 개성공단, 어제(10일)부터 기약 없이 문을 닫은 남북관계의 천덕꾸러기입니다.

열두 살 개성공단이 말하는 수난사


주소는 북한 개성직할시 판문읍 봉동리. 남쪽 파주시 도라산역에서 바로 군사분계선 너머죠. 남한이 자본을 대고 북한이 토지와 노동력을 제공해 만든 합작 공단입니다. 2008년 중단된 금강산관광이 제 여섯 살 위 형입니다.

제 신세가 처음부터 이렇진 않았어요. 예전엔 형 금강산관광과 더불어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 ‘남북 대치의 안전판’이란 칭찬을 받았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6년 서울대 강연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은 우리가 북으로 각각 5㎞, 10㎞까지 진출한 것”이라며 “휴전선이 그만큼 올라가 안보에 지대한 도움을 주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물론 ‘달러 퍼주기’란 비난도 받았지만요.

제가 태어난 건 1998년 6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떼 500마리를 몰고 방북한 게 계기였습니다.

그해 11월 금강산관광이 먼저 태어났죠. 이어 정 회장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해안 공단에 합의하고, 2000년 8월 현대아산과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민족경제협력연합회가 ‘공업지구 건설·운영에 관한 합의서’에 서명하면서 태동했습니다.

이후 현대아산의 경영 사정이 나빠지자 노무현 정부가 직접 바통을 넘겨받아 북한과 함께 2003년 6월 착공식을 가졌지요.

2004년 12월 15일 백화점 주방 코너에 출하된 통일냄비 1000세트가 제가 만든 첫 생산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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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생산액 기준으로 5억6000만 달러(약 6700억원)어치 물건을 제 품에서 만들어냈죠. 국내 주요 백화점에서 팔리는 제일모직의 로가디스, 코오롱의 쿠아를 포함한 남녀 정장, 구두·등산화·숙녀화와 골프웨어까지 73개 업체의 섬유제품을 제가 만들고 있습니다.

손목시계와 압력밥솥, 휴대전화 부품까지 금속·전자제품도 36개 업체가 공장을 운영합니다. 모두 124개 업체에서 남측 근로자 803명, 북한 근로자 5만4763명이 함께 일하고 있고요.

하지만 제 운명은 남북관계에 따라 늘 위태위태했습니다. 특히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군사 도발을 벌이면 나를 축소하느니, 가동 중단을 하느니, 폐쇄하느니 하는 이야기가 터져 나왔죠.

금강산관광은 2008년 7월 11일 새벽 박왕자(당시 53세)씨가 해변에서 산책하다 북한 경비병의 총격을 받고 숨진 뒤 중단됐지요.

그해 12월 1일 북한은 ‘대북전단 살포’를 이유로 들어 1500명이 넘던 남측 체류인원을 880명으로 제한하며 저한테 화풀이를 했어요. 2009년 3월에도 키리졸브 한·미 군사훈련을 빌미로 세 차례에 걸쳐 남한에서 나한테 오는 육로 통행을 차단했고요.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사건이 벌어지자 남한도 나에 대한 신규 투자를 금지하는 ‘5·24 조치’를 취했답니다. 그래서 1단계 330만m²(약 100만 평) 이후 제 성장은 멈췄죠.

북한은 2012년 12월 장거리 미사일(은하 3호) 발사에 이어 2013년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감행했습니다. 그러곤 한 달 뒤 남측 언론 보도가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존엄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북측 근로자 5만3000명 전원을 철수시키고 9월까지 5개월간 나를 멈춰세웠습니다.

이번엔 3년 만에 남한 정부가 제 문을 닫는군요. 지난 7일 미사일 발사 당일 남측 체류인원을 500명으로 줄였다가 사흘 만에 전면 중단하는 ‘살라미 전술’로 북한에 충격을 줬네요. 북한은 제 덕분에 매년 1억 달러 이상 현금을 벌다가 자금줄이 끊어지게 됐습니다. 어쩌다 제 처지가 남북의 안전판에서 동네북으로 전락했는지 서글프네요.

정효식·서준석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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