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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8세 궁전서 가톨릭 미사? 무덤서 돌아눕겠네

중앙일보 2016.02.11 02:28 종합 1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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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국교회(성공회) 예배당인 햄프턴 코트의 로열 채플에서 로마 가톨릭의 빈센트 니컬스 추기경(왼쪽)과 영국 국교회 리처드 차터스 런던 주교가 가톨릭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헨리 8세가 1534년 국교회를 만든 후 햄프턴 코트에서 가톨릭 미사가 열린 건 450년 만이다. [런던 AP=뉴시스]


“망자(亡者)가 무덤에서 돌아눕겠다.”

왕비와 이혼하려 영국 국교회 독립
450년 만에 종교 화해 행사 열려


망자가 대단히 분노했다는 의미로 쓰이는 문구다. 영국 신문에서도 유사한 표현(turn in his grave)이 등장했다. 여기서 망자는 헨리 8세(1491~1547)다.

9일 저녁(현지시간) 영국 런던 인근에 있는 국교회(성공회) 예배당에서 가톨릭 미사가 열렸다. 가톨릭을 대신해 국교회를 창설한 헨리8세가 주궁(主宮)으로 삼았던 햄프턴 코트의 로열 채플에서였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빈센트 니컬스 추기경은 영국 국교회의 리처드 차터스 런던 주교와 함께 이 예배당에서 두 종교의 화해를 의미하는 상징적 행사로 저녁 기도를 함께 했다. 일부 왕실 가족과 토니 블레어 전 총리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교회 안에선 15~16세기의 라틴어 성가가 울렸다. 두 교회가 갈라지기 전 서유럽 교회에서 불렸던 노래들이었다.

전문가들은 “역사적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헨리 8세로 인해 바티칸과 영국 교회가 갈라졌다. 그는 한때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에 맞서 ‘신앙의 수호자’로 불렸으나 바티칸이 그와 캐서린 왕비의 이혼에 반대하자 1534년 영국 국왕을 수장으로 한 국교회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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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8세는 이후 앤 불린과 결혼했다. 또 가톨릭 교회와 수도원을 해산하고 재산을 몰수했다. 바티칸에선 헨리 8세를 파문했다. 햄프턴 코트는 그런 그가 주로 머물던 곳이다. 햄프턴 코트는 원래 추기경의 집이었다. 헨리 8세 아래에서 막강한 부와 권세를 누렸던 토머스 울시 추기경이 1525년 완공한 건물이다.

그러나 헨리 8세의 눈 밖에 나자 이 건물을 헨리 8세에게 선물로 바쳤다. 울시 추기경이 객사한 뒤 헨리 8세는 이 건물을 증축해 1530년 자신의 궁전으로 삼았다.

햄프턴 코트에서의 가톨릭 미사는 450여 년 만이다. 헨리 8세와 캐서린 왕비의 딸인 메리 1세(1516~1558)가 이곳에서 가톨릭 미사를 드렸다. 메리 1세는 영국 국교도를 박해해 ‘블러디(피투성이) 메리’로 불린다.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딸인 엘리자베스 1세가 가톨릭과의 인연을 끊었다.

이번 행사는 종교 간 화해 움직임 중 하나다. 가톨릭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유대교와 개신교, 동방 정교회는 물론 이슬람에 손을 내미는 것과 유사한 행보다.

타 종교에 비해 가톨릭과 영국 국교회는 차이가 크지 않다. 그러나 영국에선 여전히 가톨릭 교도는 국왕이 될 수 없다는 법(1701년 제정)이 시행되고 있고 지금껏 총리 중 가톨릭 교도는 없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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