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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리포트 24] “설 전날 복 통” 영덕서도 급거 상경…인턴 “15시간 만에 식사”

중앙일보 2016.02.11 02:03 종합 1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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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대병원 응급실은 복도에서 진료해야 할 정도로 환자들이 몰렸다. [사진 오상민 기자]


“환자분, 정신 차리세요. 제 말 들리세요?”

평소 1.5배 환자 몰려 복도서도 진료
“술 마시다 싸워” 얼굴 다친 환자에
“MRI 결과 왜 늦나” 링거 뽑고 난동도
“의사 된 뒤 7년째 명절날 고향 못 가”
나흘 꼬박 병원 지킨 간호사 부부도
손 비는 대로 식사…떡국 퉁퉁 불어


지난 9일 오전 9시20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응급실. 119 구급대원이 의식을 잃은 60대 여성 환자를 휠체어에 태운 채 응급실로 들이닥쳤다.

환자분류실 황세림 간호사가 환자의 뺨을 두드렸지만 반응이 없다. 환자는 췌장암 3기였는데 영양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환자의 아들 임모(40)씨는 “어머니가 새벽에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더니 몸이 차가워졌다”고 전했다. 환자는 의료진의 응급 처치를 받고 위기를 넘겼다.

본지 취재진은 이날 오전부터 10일 오전까지 24시간 동안 응급실을 지켜봤다. 서울대병원 응급실은 과밀화지수(수용 능력 초과 비율)가 177%로 전국 1위다. 설 연휴엔 훨씬 더 붐빈다. 전국에서 환자가 몰리면서다.

평소 120명 수준인 환자가 9일엔 187명으로 1.5배 이상 늘었다. 응급실엔 전문의 2명, 전공의(레지던트) 4명, 인턴 5명, 간호사 10여 명이 상주한다. 이들에게 설 귀성이나 닷새 연휴는 전혀 다른 세상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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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50명이던 환자는 2시간 만에 76명이 됐다. [사진 오상민 기자]

이날 오전 10시 대기 의자 49개가 꽉 찼다. 70대 남성이 “가슴이 답답하고 아프다” 며 응급실을 찾았다. 이상협 인턴이 곧바로 심전도 촬영을 지시했다. 진단 결과는 급성 심근경색(심장마비).

전문의·레지던트와 함께 허벅지 혈관으로 기구를 넣어 막힌 심장 혈관을 뚫은 뒤 약물을 투여했다. 하마터면 급사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 인턴은 “이틀에 한 명꼴로 이런 환자가 온다”고 했다.

오전 11시 경북 영덕에서 상경한 장염 환자를 만났다. 환자의 동생 윤모(65)씨는 “이틀 전 형이 탈이 났다. 울진의 한 병원에 갔는데 장비가 없어 치료를 못한다고 하더라. 시속 160~170㎞를 밟아 서울에 왔다”고 말했다.

이날 따라 암 환자가 많았다. 백혈병 어머니를 모시고 온 김모(36)씨는 “대기 시간이 너무 길었지만 연휴에도 진료할 수 있는 게 어디냐”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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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협 인턴이 정밀검사를 위해 환자의 피를 뽑는 모습. [사진 오상민 기자]

낮 12시. 응급실 내부의 작은 방에 떡국 11그릇이 배달됐다. 의사들이 손이 비는 순서대로 방을 찾았다. 늦게 오면 불어터진 떡국을 먹어야 했다.

이들은 명절에 고향에 가본 지 오래다. 유경민 전임의는 “의사가 된 뒤 7년째 명절에 고향(부산)에 못 갔다”고 했다. 그는 설 연휴 닷새 중 8일을 제외하고 나흘간 응급실을 지켰다.

오후 들어 환자가 밀리자 ‘복도 진료’가 속출했다. 오후 2시 30대 허리디스크 환자가 휠체어에 앉은 채 복도에서 통증 완화 주사를 맞았다.

오후 8시에는 부산에서 위암 환자 우모(48)씨가 올라왔다. 열이 나길래 겁이 나서 수술했던 서울대병원으로 급히 왔다고 했다. 앰뷸런스 비용만 75만원이 들었다.

오후 9시 환자가 조금씩 줄자 이지애·이상협·오세진 인턴이 휴게실에서 피자를 먹었다. 오전 6시 출근 이후 첫 끼니다. 간호사들이 먹다 남은 식은 피자였다. 하지만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호출을 받고는 부리나케 응급실로 향했다.

그새 병원이 소란스러웠다. 80대 환자가 “자기공명영상촬영(MRI) 결과가 늦게 나온다”며 거칠게 항의하면서다. 팔에 꽂힌 링거를 뽑으며 고함을 지르자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이형복 간호사가 “원래 오래 걸린다”며 차분히 설득한 뒤에야 상황이 진정될 수 있었다. 이 간호사 부부는 6~9일 병원을 지켰다. 이 간호사는 응급실에, 아내는 중환자실에 근무한다.

이 간호사는 “명절에 친척과 같이하지 못해 아쉽지만 누군가는 병원을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며 “우리 부부가 그 일을 하기로 했고 환자들이 조금씩 안정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10일 오전 6시. 20대 환자가 술자리에서 싸우다 다쳐 얼굴에 붕대를 감고 들어왔다. 어머니 사망에 쇼크를 받은 30대 여성은 가슴 통증을 호소했다.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응급 처치에 나서면서 잠시 잠잠하던 실내가 다시 부산해졌다. 또 하루의 ‘응급실 24시’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글=김준영·윤재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사진=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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