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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사람 손 잡는 순간, 내 천직이라 확신

중앙일보 2016.02.11 01:23 종합 2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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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환 소방교는 “소방관으로서 마지막 날까지도 현장에서 뛰는 게 최종 꿈”이라고 했다. [사진 김현동 기자]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라.’ 서울 성북소방서 오영환(28) 소방교에게 주어진 임무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오토바이 구급대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서울 성북소방서 오영환 소방교
오토바이 구급대원으로 인명 구조
산악구조대 클라이밍 배우며 인연
암벽여제 김자인과 두 달 전 결혼
『어느 소방관의 기도』 인세는 기부


오토바이 구급대는 심장마비 등 응급처치가 시급한 상황에서 골든타임을 확보하기 위해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2010년 도입했다. 현재 서울시내에 22대가 운영되고 있다.

좁은 골목길과 차량정체로 신속한 출동이 어려운 지역에 구급차보다 먼저 도착해 1차 응급처치를 하는 게 오씨의 역할이다.

지난 2일 만난 오씨의 오토바이에는 전기 충격을 통해 심장 박동을 살리는 제세동기와 외상 응급처치 장비가 실려 있었다.

그는 “심정지 환자의 경우 멈춘 심장이 돌아올 확률은 5%, 정상적으로 걸어서 퇴원할 확률은 3% 정도로 매우 낮다”면서 “석 달 동안 30여 명의 심정지 환자를 한 명도 구하지 못하다가 얼마 전 첫 환자를 살렸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축구 한일전이 열리고 있을 때 60대 남성이 갑자기 쓰러져 숨을 쉬지 않는다는 신고가 접수됐어요. 현장에 도착했더니 딸이 울면서 심장압박을 하고 있었어요. 기도를 확보하고 전기쇼크를 가하자 다행히 호흡이 돌아왔습니다. 그날 축구는 졌지만 저한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오씨는 23세에 소방관이 된 뒤 119구조대와 산악구조대를 거쳐 6년째 현장에서 뛰고 있다.

그는 “뉴스에서 화재와 싸우는 소방관들을 보면서 ‘나 같은 평범한 사람도 소방관이 되면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소방관을 꿈꾸게 됐다”면서 “대학을 그만두고 소방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하자 담당 교수가 ‘왜 유망한 전공(나노공학과)을 포기하려 하느냐’며 자퇴서를 찢었을 정도로 반대가 심했다”고 말했다.

소방관이 된 뒤 처음으로 물에 빠진 구조자의 손을 잡았을 때 “이게 내가 해야할 일이 맞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했다. 소방관이 된 덕분에 평생의 동반자도 만났다. 산악구조대 시절 클라이밍을 배우며 알게 된 ‘암벽여제’ 김자인 선수와 지난해 12월 결혼했다.

오씨는 지난해 말 현장에서의 경험을 담은 책 『어느 소방관의 기도』를 출간했다. “매년 현장에서 목숨을 잃어가는 선배들을 보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소방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소셜미디어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셨어요. 잊을 수 없었던 현장 얘기를 꺼내 책을 쓰자고 마음 먹었죠.”

그는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으로 한 청년의 고독사를 꼽았다. “집주인이 옥탑방에 혼자 사는 청년에게 집세를 독촉하러 갔는데 화장실에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어요. 출동해보니 이미 사망한 지 몇 시간이 지난 뒤였어요. 누구의 도움도 청하지 못한 채 홀로 남은 청년의 주검을 보면서 안타까웠습니다.”

인세 수익의 70%는 순직하거나 부상당한 소방관, 결식아동 등에게 기부할 계획이다. 그는 “우리가 출동한 현장에선 누군가 다치거나 죽는다”며 “그런 경험담에서 나온 수익이기 때문에 이를 돌려드린다는 마음으로 기부하기로 정했다”고 말했다. 나머지는 “소방관으로 일하는 아들 때문에 뉴스도 보지 않는 부모님을 위해 쓰고 싶다”고 했다.

오씨의 다음 목표는 헬기를 타는 항공구조구급대원이 되는 것이다. 그는 “구조와 구급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고 싶다”며 “소방관으로서 마지막 날까지도 현장에 있는 게 최종 꿈”이라고 말했다.

글=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사진=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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