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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중국을 움직이려면 마음부터 읽어야

중앙일보 2016.02.11 00:45 종합 2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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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논설위원

중국이 북한과 아직도 혈맹이라고 여기는 분을 가끔 만난다. 물론 중국은 과거 냉전시기엔 ‘잇몸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며 북한을 동지·형제·혈맹으로 불렀다. 하지만 이젠 해묵은 과거사일 뿐이다.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에 나서고 79년 미국과 수교한 이래 경제발전을 추구하면서 북한과 거리를 뒀다. 그런 중국에 지금 북한은 ‘불편한 이웃’이자 ‘지정학적인 부담’일 뿐이다.

경제번영 위해 국제사회와 함께할 운명인 중국
압박보다 설득으로 북핵 포기 행동 나서게 해야

역사를 살펴보자. 양국이 틈새가 벌어진 결정적 계기는 75년 4월이었다. 당시 중국 도움을 받은 크메르루주가 4월 17일 프놈펜을 점령하며 캄보디아를 적화했다. 북베트남군은 사이공 점령(4월 30일)을 위한 최후 공세 중이었다. 4월 18일부터 8일 일정으로 베이징을 방문해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을 만난 김일성은 한껏 고조됐다. 환영만찬장에서 유명한 “잃는 것은 군사분계선이요, 얻는 것은 조국 통일”이라는 연설을 했다. “군사적인 방식으로 통일을 이룰 황금 같은 기회다. 한시바삐 이 엄청난 기회를 잡아야 한다”며 마오를 설득하려 했다. 마오의 대답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덩샤오핑(鄧小平) 상무부총리는 고개를 저었다. 김일성을 만난 덩은 “해방전쟁이 20년 이상 계속됐던 인도차이나와 달리 한반도에는 정전협정이 발효 중”이라며 대결정책에 반대했다. 중국 지도자들의 선택은 또 다른 전쟁을 피하고 적절한 정치적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당시 중국은 71년 8월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의 베이징 비밀 방문, 72년 2월 21일 마오 주석과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 이후 대미 수교(79년 1월)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78년부터 덩의 지도로 개혁·개방에 나선 중국은 경제발전을 위해 동북아 평화와 안정이 절실했기에 대결정책을 추구한 북한과 갈등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새해 들어 북한이 지난 1월 6일 4차 핵실험에 이어 2월 7일에는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동북아를 뒤흔들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도 대놓고 무시했다. 그동안의 대북제재가 별 효과가 없음이 증명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중국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익명을 요구한 중국의 한반도 학자는 북핵은 중국에 심각한 악영향을 준다고 설파했다.

첫째, 동북아에 새로운 불안 요소를 증대함으로써 안정이 필요한 중국의 핵심 이익을 침해한다. 둘째, 미국과 북한의 군사적 긴장을 유발한다. 이는 중국의 잠재적 딜레마다. 이미 북한 핵실험 직후 미군의 B-52 폭격기가 한반도로 비행했으며, 항공모함 전단과 잠수함의 서해 진입도 예정돼 있다. 이는 북한엔 물론 중국에도 눈엣가시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실험 직후 한국과 미국은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논의하기로 했다. 사드는 중국 대부분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감시거리 2000㎞의 X-밴드 레이더를 포함해 중국 핵 전력의 상당수를 무력화하는 효과도 있다. 중국은 이를 감수하든지, 천문학적 군비를 들여 ‘스타워즈’ 급 대체전력 마련에 나설 수밖에 없다. 옛 소련이 미국과의 군비경쟁 끝에 무너졌음을 생각하면 악몽이다. 가뜩이나 글로벌 불경기에 올해 경제전망도 불투명하지 않은가. 동북아에 핵 도미노가 벌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있다.

경제부흥으로 ‘중국의 꿈’을 추구하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이런 상황에서 북한을 편들어서 얻을 게 없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다만 한·미동맹이 현실주의를 내세워 자국을 힘으로 누르는 상황에서 떠밀려서 대북 압박에 나서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이런 입장을 존중하면서 동북아 미래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제안한다면 그 과정에서 중국을 스스로 행동에 나서게 할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 결과 한·미·일이 마침내 중국, 나아가 러시아와 손잡을 수 있다면 고립무원이 될 북한을 실질적으로 움직일 길을 보다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지금처럼 한·미·일이 중·러와 대결한다면 핵과 미사일을 계속 만지작거리며 꽃놀이패를 즐기는 북한을 계속 볼 수밖에 없다.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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