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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에 드러난 한국과 미국의 핵심 가치

중앙일보 2016.02.11 00:14
국가가 쓰는 돈은 그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를 드러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의회에 제출한 예산안을 살펴보면, 미국이 지향하는 가치와 방향을 확인할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도 ‘오바마가 임기 마지막 회계연도 예산을 어디에 쓰기를 원하는가’라는 기사를 통해 예산안이 어떤 분야를 강조하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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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백악관이 공개한 2017 회계연도 예산안


백악관에서 제출한 2017 회계연도(2016년 10월~2017년 9월) 연방 예산안은 지난해 보다 4.9% 증가한 4조 1500억 달러(4910조원) 규모다. 이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은 붉은 색으로 표시된 사회보장(Social Security) 항목으로 976억 달러(1168조 7600억원)의 예산 배정을 요구했다. 2000년대 중반 두 개의 전쟁(이라크ㆍ아프가니스탄 전쟁) 시기 잠시 국방비에 추월 당했지만 2010년 이후 사회보장에 쏟는 돈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경제 회생을 위해 기초 체력 격인 국민의 일자리 보장과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 마련에 애를 쓰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예산을 통해 불안정한 고용 문제와 낮은 임금 문제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뉴햄프셔에서 낙승을 거둔 버니 샌더스 민주당 대선 후보도 1300만 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5년간 사회 보장 인프라 구축에 1조 달러(1198조원)를 쓰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상황이다.

반면 파란색으로 표시된 국방비의 경우 정체 추이를 보이고 있다. 2017년 회계 예산에 포함된 국방비는 6190억 달러(741조 2525억원) 규모로 지난해 보다 0.7% 포인트 증가했다. 이번 예산에는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 쓰일 예산이 110억 달러(13조 1725억원) 포함되었고, 사이버 안보 영역에도 190억달러(22조 7525억원)의 예산을 요청했다. 물론 미국의 국방비는 2위인 중국부터 10위(한국)까지 다 합친 금액 보다 높다.

미국 연방 의료제도인 메디케어(노란색 선)에 대한 예산 배정도 눈에 띈다. 2000년대 초반 2000억 달러(239조 5000억원) 수준이던 메디케어는 2017년 6050억 달러(724조 4875억원)로 3배 이상 예산이 늘었다. 메디케어는 노인에게 지원되는 건강 보험 제도로 베이비 부머의 은퇴와 맞물리며 급속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3년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케어)을 전면 실시하는 등 의료복지 강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초록색으로 표시된 공공 보건 및 건강 영역에 대한 예산도 꾸준한 증가세다. 식품 안전 및 각종 질병 예방 등을 포괄하는 건강 영역은 5680억 달러(680조 1800억원)의 예산 배정을 요구했으며 이는 지난해보다 8.3% 포인트 높아진 금액이다. 소득 보장(짙은 노랑색)의 경우 5500억달러(68조 6250억원)가 배정되었다. 이는 저소득층에게 소득 일부를 보전해 주는 것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기회의 균등’을 위해 소득보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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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가 지난해 9월 제출한 2016년 정부 예산 원안


그렇다면 한국의 예산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실제 국회가 지난해 12월 통과시킨 예산안은 386조 4000억원으로 정부 원안 보다 3000억원 가량 적은 금액이다. 기획재정부가 제출한 정부 원안을 중심으로 한국의 예산을 분석해 보자.

정부의 올해 예산은 지난해 보다 3%포인트(약 11조원) 가량 늘었다. 가장 증가율이 두드러지는 분야는 보건ㆍ복지ㆍ노동 분야로 전 해에 비해 6.2% 포인트 급증했다. 특히 노동 분야에 대한 예산이 많이 늘었는데 일자리 예산이 12.8% 포인트 증가한 15조 8000억원이 배정됐고, 청년 일자리 지원예산도 21% 포인트 늘어 2조 1200억원을 투입키로 했다. 이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고용 불안정이 경제 성장을 침식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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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대비 예산 증감율

다음으로 많은 금액이 배정된 곳은 일반ㆍ지방 행정 분야(60조 9000억원)로 지자체 사업 등을 지원하는 돈이다. 다음은 교육인데 미국이 교육과 고용 등에 배정된 금액이 전체 8번째인데 반해 한국에서는 교육 분야에 배정된 금액이 53조 2000억원으로 3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이어 국방이 39조원으로 4번째로 많은 예산이 투입된다. 국방비는 4% 포인트 증가했으며 전체 국가 예산의 10% 가량을 차지하는 등 분단된 한국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는 부분이다.

그 밖에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이 6% 포인트, 산업 분야가 2% 포인트 감소한 것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대형 국책 공사를 통한 경기 부양의 한계를 확인한 것이라 분석할 수 있다.

농림ㆍ연구개발(R&D) 분야도 각각 0.1, 0.2% 포인트 증가하며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절대 금액은 적지만 문화와 외교ㆍ통일 분야도 예산 배정 비율은 많이 늘었다.

문화는 전해에 비해 7.5% 포인트 예산 배정이 늘어 6조 6000억원이 배정되었고 외교ㆍ통일 분야도 3.9% 포인트 증액해 4조 7000억원을 투입키로 했다.

그럼, 2010년부터 정부 예산 변화를 살펴보면 어떨까? 기획재정부 재정정보 공개시스템 ‘열린 재정’을 통해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정부 분야별 세출/지출 예산편성 현황을 그래프로 만들어봤다. (세출/지출은 전년도 예산중 집행되지 않은 금액이 포함되어 수치가 더 크다)

눈에 띄는 건 정부가 2016년 예산 발표 당시 한꺼번에 뭉쳐서 발표했던 보건ㆍ복지ㆍ노동이 따로 분류되는 분야라는 점이다. 정부가 2016년 예산을 발표하며 노동 분야에 힘을 쏟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배정이 많은 사회복지와 보건을 합쳐 일반ㆍ지방 행정에 투입되는 예산보다 크게 보이도록 했다는 의심을 살 수 있는 부분이다.



먼저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일반ㆍ지방 행정 분야와 사회복지 분야만 따로 그래프로 확인해 보자. 사회복지 분야는 2010년 약 178조원에서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2016년의 경우 273조원의 예산이 사회복지 분야에 사용될 예정이다.

 
나머지 예산을 살펴보면 교육분야와 산업ㆍ중소기업 및 에너지 부분의 예산 증가율이 두드러진다. 교육은 2010년에서 2016년 사이 약 10조원이 늘었고 산업ㆍ중소기업 및 에너지 분야도 같은 기간 14조원 가량 예산 투입이 증가했다. 반면 환경이나 보건 통신 등 분야는 예산 투입이 과거와 크게 차이가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2017 회계연도 예산안에서 향후 10년간 2조 6000억달러(3113조원) 규모의 증세안을 포함시켰다. 수입원유에 대한 세금 부과로 382조원을, 부자 증세로 1144조원을 더 걷는 등 여러 방법으로 세수를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6년 회계연도 예산안에서도 1조 4000억 달러(1677조원) 규모의 증세를 요청했지만 공화당의 반대로 무산됐었다. 공화당은 이번에도 “좌파적인 예산안”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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