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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츠걸 차지연 “복면가왕은 내 청춘의 씻김굿”

중앙일보 2016.02.10 00:48 종합 19면 지면보기
뮤지컬 배우 차지연(34). 지난 두 달간 MBC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서 보여준 그의 노래 솜씨는 폭발력, 그 자체였다. 발라드든 록이든 댄스곡이든 그의 몸을 거치는 순간, 한편의 드라마가 저절로 완성됐다. ‘캣츠걸’의 에너지와 절규에 시청자도 빨려 들어갔다.

5회 연속 1위. 김연우와 거미(4회) 등 내로라하는 국내 최정상급 가수들을 제친, 프로그램 사상 최장수 1위 기록을 세웠다. 어디서 이런 거침없는 성량과 화려한 움직임이 터져나오는 것일까. 설 연휴 직전인 4일 서울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캣츠걸’ 차지연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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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연을 촬영한 뒤, 그가 썼던 캣츠걸 복면을 합성했다. 차지연은 “결혼식 때도 방송 출연을 숨기느라 시치미를 뗐다”고 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어떻게 ‘복면가왕’에 출연하게 됐나.
“4년 전 KBS ‘불후의 명곡’에 출연했다. 처음엔 ‘그냥 뮤지컬에서 노래하듯 하면 되는 거겠지’라며 쉽게 생각했다. 아니었다. 4분 남짓한 시간에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을 드러낸다는 게, 서서히 캐릭터를 구축하는 뮤지컬과 전혀 달랐다. ‘아, 나는 방송과 안 맞는구나’라고 생각해 이후 출연 제의를 번번이 고사했다. 그러다 ‘복면을 쓴다는 게, 어찌보면 연기하는 것과 비슷한 거 아냐’란 생각이 불현듯 스쳤고, 출연하게 됐다.”
선곡의 음악적 진폭이 컸다.
“첫 녹화 직전에 감기 몸살에 시달렸다. 리허설 마치고 녹화 직전까지 방송국 앞 병원에서 링거를 맞을 정도였다. 병든 닭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카메라 불빛만 들어오면 정신줄 놓고 불렀는데 갑자기 가왕이라니…. 별 기대가 없었는데 벼락처럼 온 선물 아닌가. 그 덕인지 욕심없이 음악적 모험을 계속 시도할 수 있었다.”
방송에선 여러 번 울먹거렸는데.
“본래 가수가 꿈이었다. 사기를 당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앨범 하나 내지 못했다. 뮤지컬 무대에 서고, 노래하면서 다 치유된 줄 알았다. 근데 차지연이란 이름으로 온전히 노래하고, 그것으로 인정받는 게 이토록 벅찰 줄 나도 몰랐다. 제 가슴 한편에 꽁꽁 숨겨두었던 응어리를 다 푸는 느낌이랄까. ‘복면가왕’은 실로 내 청춘의 그늘을 다 걷어내는, 한편의 씻김굿이었다. 모든 분께 감사하다.”

차지연은 대전에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는 판소리 무형문화재 박오용 옹이다. 그 끼를 받아 세 살부터 ‘국악 신동’이란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고3 때 건설업을 하던 아버지가 부도를 내며, 여섯살 터울 여동생과 단 둘이 서울로 상경했다. 호프집·고깃집·커피숍 서빙을 했고 전단지를 돌렸으며 홍대 클럽 ‘삐끼’를 했다. 심지어 다단계 판매를 하기도 했다. 7년여간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2006년 ‘라이온 킹’이 뮤지컬 데뷔작이다.
“가수 꿈을 접고 은행에서 한 달에 70만원 받는 알바를 했다. 아는 후배가 ‘뮤지컬엔 앙상블이라는 게 있는데, 누나처럼 연기 해 본적 없는 사람도 그냥 서서 노래만 해도 돼. 한 달에 100만원 이상 줘’라며 권유했다. 별 기대 없이 오디션을 봤는데 덜컥 됐다. 일본 ‘시키’ 극단이었다. 6개월 남짓 연습하는 와중에 주연이 공석이 됐고, 그 기회가 나한테 왔다. 뮤지컬·연극 한 번도 안 한 생초보에게 ‘라이온 킹’의 여주인공이라니, 말이 되는가. 한국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훗날 시키의 아사리 게이타 대표가 주변에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차지연 목소리엔 눈물이 있어요’.”
‘복면가왕’ 출연 중 결혼을 했다.
“남편은 4살 연하의 뮤지컬 배우(윤은채)다. 지난해 초 ‘드림걸즈’를 하며 처음 만났다. 사귄지 6개월 만에 결혼했다. 남편을 사귀면서 수면제 없이도 잠들 수 있게 됐다. 그만큼 정신적 안정을 준다. 지금 일이 잘 되는 것 역시 남편의 건강한 기운 덕이다.”
뮤지컬 ‘레베카’에 출연 중이다.
“짧지만 강렬한 댄버스 부인역이다. 내면의 쓸쓸함과 처연함을 보여주고 싶다. 지금껏 너무 센 역할만 해왔다. 내가 가볍게 생기질 않은 탓일까.(웃음) 방송 덕에 스케줄이 빡빡해 숨이 차지만, 잠깐 연예인 체험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누가 뭐래도 난 무대 체질이다.”
차지연표 뮤지컬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유명 배우가 이미 했던 작품의 재공연에 출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팬들도 안타까워한다. 왜 영악하게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누가 한들, 언제 한들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비교하면 끝이 없다. 차지연만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다면 무엇이든 도전할 것이다.”

| 차지연 뮤지컬 명곡 3선
올해로 차지연은 뮤지컬 데뷔 10년째다. 지금껏 16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음악의 진폭이 컸듯, 뮤지컬 출연작도 소극장과 실험극, 대형 뮤지컬 등 골고루 포진돼 있다.

그렇다면 '캣츠걸' 차지연이 생각하는 뮤지컬 명곡은 무엇일까. 세곡을 부탁했다. 흥미롭게도 그의 출연작이 아닌, 의외의 뮤지컬에서 세곡을 골라줬다.

1. '빨래' 중 '참 예뻐요'
 

소극장 창작 뮤지컬의 전범인 '빨래'의 한 대목을 차지연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1순위로 뽑았다. '참 예뻐요'는 주인공 솔롱고의 내면을 포착한다. 이웃집에 사는 나영을 슈퍼마켓에서 우연히 보고 옆에 있는 친구가 "예쁘다"라고 말하는 순간, 솔롱고는 환상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다. 담백한 가사와 서정적인 선율로 유명하다. 차지연은 "노랫말도, 음악적 색채도 너무 맑다. 슬플 때 들어도 그 슬픔을 아름답게 해준다"고 말했다.


2. '원스' 중 '더 힐(the hill)'
 

음악 영화로도 널리 알려진 뮤지컬 '원스'의 '더 힐'을 택했다. '더 힐'은 작품 2막 중반쯤 여주인공이 부른다. 체코에 살았고, 이혼을 했고, 그러다 우연히 새로운 남자를 만났는데 과연 그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할 지 방황하는 마음을 담았다. 차지연은 "어쿠스틱 감성이 마음을 스산하게 만들었다. 아픔을 목놓아 우는 것보다 읊조리는 게 더 아렸다"고 전했다.


3. '킹키부츠' 중 '섹스 이즈 인 더 힐(sex is in the heel)'
 

팝스타 신디 로퍼가 작곡했다. 가업을 잇겠다며 구두 제작에 나선 찰리. 하지만 막상 나온 완제품은 여전히 밋밋하다. 그러자 여장남자로 출연한 롤라가 반기를 든다. "그렇게 뻔해선 안돼, 과감히 도전해야 돼"라며. 신나는 리듬으로 작품 전체에 활기찬 기운을 불어넣는다. 이 곡은 뮤지컬 넘버로는 드물게 빌보드 차트 톱10에 진입해 화제였다. 차지연은 "곡이 나오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같이 흔들었다"고 말했다.


글=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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