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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과 창업] “너희 뽑은 진짜 이유…인상 좋아서, 당돌해서, 축구 잘해서”

중앙일보 2016.02.04 00:26 경제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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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후 회식에서 선배들이 털어놓는 신입사원의 합격 비결은 취업 준비생에게도 도움이 된다. 이들은 "면접장에 들어선 지원자들은 다들 스펙과 실력이 뛰어나다"며 "작은 태도 하나가 당락을 가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2일 회식에서 롯데마트의 신입사원들과 선배들이 입사 비결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태욱 과장·송태경·박지훈·최지원 사원. [사진 김상선 기자]

지난 2일 서울역 인근의 한 삼겹살집. 롯데마트 서울역점 김태욱(40) 과장이 지난해 입사한 영업사원 박지훈(26)·최지원(28·여)씨에게 소줏잔을 건네며 “요즘 취업도 어려운데 너희들이 왜 합격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회사 선배들의 술자리 ‘뒷담화’
“경영전략 뭐냐 묻는 게 당당했어”
“생일선물로 합격을…넉살 좋더라”
“면접 때 일찍 온 게 성실해보여”
“남자보다 목소리 크고 씩씩해서”

최씨는 영어가 유창하고 삼성디자인스쿨(SADI)에서 제품디자인 기초 과정을 수료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박씨는 명문대에서 성실하게 학점 관리를 잘했고, ‘스펙(자격증·학점·외국어 성적 등 취업 자격 요건)’도 고루 갖췄다. 그런데 김 과장은 최씨에게는 “당돌해서”, 박씨에게는 “축구”라며 두 사람이 예상 못했던 ‘진짜 합격 이유’를 들려줬다.

최씨는 롯데마트 면접을 앞두고 롯데마트 서울역점이 문을 여는 오전 10시부터 찾아왔다. 중국인 관광객이 사는 물건, 판매대 배치 등을 꼼꼼히 분석하고, 매장에서 재고를 정리 중이던 점장에게 “유통 산업의 미래가 있느냐”, “김종인 대표의 경영 전략은 뭐냐”는 등을 무작정 물었는데 이것이 합격으로 이어진 것이다.

박씨의 경우 대학 축구 동아리에서 열심히 뛴 것이 의외로 ‘최고의 스펙’이 됐다. 김 과장은 “모든 지원자들이 다 우수하다 보니, 사내 축구 동아리에서 선배들과 잘 어울리고 업무 팀워크도 다질 수 있겠다 싶어서 합격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 수많은 취업 준비생들이 ‘탈락 이유’를 듣지 못한채 불합격 통지를 받는다.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내가 왜 합격했는지는 알기가 어렵다. 대개 직장에 들어간 뒤 1~2년 뒤에야 선배·상사와의 술자리에서 ‘취중진담’으로 비로소 듣게 된다.

본인이 생각했던 합격 비결이나 스펙과 회사 선배로부터 들은 합격 이유 사이엔 괴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가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1~2년차 남녀 직장인 681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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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자들은 자기소개서(28.7%)-인턴 등 실무 경력(22%)-학점 관리(16.7%)-외국어 능력(14.4%) 등을 자신의 입사 경쟁력으로 꼽았다. 태도나 인상 때문에 합격했다는 사람은 2.4%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들이 입사 후 듣게 된 ‘진짜 합격 이유’는 좋은 태도와 인상(41.1%)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특히 최씨처럼 입사 전부터 적극적으로 업무에 대한 지식을 쌓으려는 태도가 좋은 점수를 받았다. CJ오쇼핑 상품기획자(MD) 이강수(26)씨는 “입사 시험 전 6개월 넘게 4대 홈쇼핑 방송을 매일 노트에 분석해서 면접 때 발표했는데 선배들이 그걸 좋게 봤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1~2년차 직장인들로부터 실명을 밝히지 않고 가명을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입사후 술자리에서 들은 솔직한 나의 합격 비결’을 들어봤다.

KT 엔지니어 강석현(27·가명)씨는 “술 취한 부장이 ‘야! 너 왜 합격했는지 알아? 면접 시간 한참 전에 와서 앉아있는 거 보고 본부장이 쟨 무조건 뽑으라더라. 얼마나 성실한지 지켜볼 거다’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삼성중공업에 다니는 유성훈(28·가명)씨는 “디자인 전공하는 친형에게 부탁한 캐리커처를 면접관들에게 나눠주고, ‘오늘 생일인데 입사를 내 생애 최고의 선물로 받고 싶다’고 했었다. 입사 후에 부장이 ‘야 너 생일이어서 합격한거야’라고 웃더라. 반은 농담이었겠지만 고만고만한 지원자들 사이에서 인상을 깊게 남긴 것 같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의 이지영(28·여·가명)씨는 “화장품 회사라서 여성이 많은데 ‘돌이라도 씹어먹을 것 같은 표정’에 목소리가 크고 남자보다 씩씩하게 말해서 인상이 깊었다고 한다”며 웃었다.

대한항공의 정수연(26·여·가명)씨는 “평소 인상이 세다는 얘기를 들어 면접날 전문 메이크업을 받고 갔는데 효과를 봤다. ‘온화하고 밝은 인상이라 뽑았다’는데 그런 말은 처음 들어보았다”고 털어놓았다.

인턴을 거쳐 채용하는 경우는 좋은 근무태도로 깊은 인상을 심어줄 기회도 많다. 7주 인턴 과정후 정규직으로 채용된 현대자동차 김민석(28·가명)씨는 “선배가 일을 시키기 전에 ‘이건 엑셀 파일로 만들까요?’라는 식으로 먼저 물어보고, 복사든 청소든 시키지 않은 일도 찾아서 열심히 하는 모습이 예뻤다더라”고 했다.

왜 태도와 인상이 ‘진짜 합격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히는 걸까. 이에 대해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최종면접까지 올라오는 지원자들은 필기시험이나 학점·영어점수 등이 고루 뛰어나다”며 “결국 면접과정에서 보이는 ‘태도의 경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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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취업컨설턴트인 박영진 인크루트 과장은 “현장을 찾아서 살펴보거나 자료 분석을 하고 나만의 사업 기획안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결국 1차 관문인 서류전형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기본적인 자기소개서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글=허정연·이현택 기자, 강민경 인턴기자 jypower@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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