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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이등병이 된 '프로골퍼 배상문' 인터뷰

중앙일보 2016.02.0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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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골퍼 배상문(30)

군대는 춥다. 지난달 31일 강원 원주에 있는 육군 모 부대 위병소를 통과했다. 군 부대 특유의 한기가 확 몰려들었다. 병역기피 논란을 일으켰다가 지난해 11월 뒤늦게 입대한 프로골퍼 배상문(30)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서른 살 이등병 배상문의 표정은 밝았다. 미국프로골프협회(PGA) 투어에서 2승을 거둔 그는 기자가 들고 간 비타민 음료 상자에 찍힌 사진을 보고 “와! 수지다”라면서 좋아했다.

강원도에서 복무 중인 배상문 이병은 휴가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는 “설 직후 첫 휴가를 나간다. 3월엔 일등병이 된다”면서 “휴가를 고대하고 있지만 날짜를 세면 오히려 시간이 안 간다고 해서 지금 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5주 훈련을 마치고 지난해 12월 자대에 배치됐다. 부대원 180명 가운데 계급은 가장 아래인데 나이는 가장 많다. 배상문은 “앳돼 보이는 스무 살 선임이 ‘상문아’ 하고 나를 부르는데 무척 어색했다. 앞으로 어떻게 군대생활을 해야할지 갑갑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니 자연스럽게 내 입에서 존대말이 나왔다. 군대는 계급사회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체력 단련에도 힘을 쓰고 있다. 배상문은 “훈련소에서는 단 것이 먹고 싶어서 초코파이를 많이 먹었다. 운동을 많이 했는데도 살이 쪘다. 지금은 단 것은 삼가고, 운동을 열심히 한다. 제대할 때 멋진 몸으로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투어에서 활동할 때 '10~20야드만 더 멀리 치면 훨씬 더 유리하겠다' 고 생각했다. 그 거리를 늘리기가 쉽지 않았는데 군대에서 열심히 훈련을 하다보니 '20야드가 아니라 30야드도 늘릴 수 있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부대원들과 함께 상의를 벗고 2.5km를 뛴다. 배상문은 “뛰고 나면 기분은 좋은데 춥긴 되게 춥다”고 했다.

그의 보직은 소총수다. 아직 이등병이지만 지고는 못사는 성격이어서 욕심도 많다. 배상문은 “사격은 호흡이라고 들었다. 호흡은 잘 하는데 이상하게 총알이 똑바로 안 나간다. 입대하기 전엔 퍼트가 안 되면 혼자 연습할 수 있었는데 사격은 혼자 마음대로 훈련을 할 수 없어 답답하기도 하다”며 입맛을 다셨다. 그는 “더 연습해서 백발백중, 만발만중의 사수가 되겠다”고 능청도 떨었다.

사회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훈련소에서 퇴소할 때 어머니가 이등병 계급장을 달아 주셨다. 그 전에 ‘어머니 은혜’ 노래를 부를 때 부터 감정이 북받쳐 엉엉 울었다. 우승할 때도 울어본 적은 없다. 그런데 훈련소에서는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았는데도 많이 울었다. 불과 5주지만 훈련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배상문은 또 "군대에 오길 잘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태극기를 보며 애국가를 부르다 감정이 울컥할 때가 있다. '20대 초반에 군대에 다녀온 뒤 한국을 대표해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도 했다”며 “입대 전 1년 동안은 군대 고민 때문에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원형탈모증도 생겼다. 지금은 잠을 잘 잔다. 그러나 원형탈모증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배상문은 "입대한 뒤엔 골프 클럽을 아예 만져보지도 못했다. 가끔은 골프를 잊을까 불안해서 휴식시간에 맨손으로 빈스윙을 해보기도 했다. 그래도 체력을 기르면 제대한 뒤에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방부 시계는 천천히 돈다. 늙은(?) 이등병은 거수경례를 마치고 부대를 향해 뛰어갔다.

원주=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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