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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된 연인의 폭력, 사흘에 한 명 꼴로 숨진다

중앙일보 2016.02.03 01:58 종합 1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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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김모(22)씨는 지난해 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알게 된 A양(18)과 연인관계로 지내다 그해 6월 성격 차이로 헤어졌다.

작년 살인·강간·폭행 등 7692건
경찰 TF설치 “피해자 밀착보호”
가해자 77%는 이전에 범죄 전력
전문가 “영국처럼 전과조회 허용”

헤어지고 나서 A양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인생 자체가 거짓말인 X’ 등의 욕설을 하고 특정 신체 부위를 찍은 사진을 보내라고 협박했다. 둘이 사귈 때 주고받은 은밀한 문자메시지를 어머니에게 보내겠다는 협박에 A양은 할 수 없이 사진과 동영상을 보냈다.

그러자 한술 더 뜬 김씨는 A양을 불러내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 견디다 못한 A양의 신고로 경찰의 수사가 이뤄졌고 김씨는 강간 등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2부(부장 조의연)는 지난달 22일 김씨에게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A양같이 헤어진 연인으로부터 폭행·협박을 당하는 이른바 ‘데이트 폭력’ 사건 피해자는 앞으로 경찰의 밀착 보호를 받게 된다.

경찰청은 전국 251개 경찰서에 ‘연인 간 폭력 근절’ 태스크 포스(TF)를 설치해 운영한다고 2일 밝혔다. TF는 각 경찰서 형사과장을 팀장으로 전담수사요원, 상담 전문 인력, 피해자보호 담당자 등으로 구성된다. 우선 다음달 2일까지 ‘연인 간 폭력 집중 신고기간’을 운영해 피해 신고를 받는다.

TF는 데이트 폭력 사건 발생 시 수사를 통해 가해자를 처벌하는 업무뿐 아니라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사후관리까지 한다. 가해자가 다시 범죄를 저지를 징후가 보이면 경찰관이 가해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만약 이를 어기고 접근하거나 폭력을 행사할 경우 원칙적으로 구속수사할 계획이다.

데이트 폭력은 부부 간에 발생하는 가정폭력과 달리 이를 처벌하는 특별법이 없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데이트 폭력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제발 저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라며 “이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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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폭력 사건으로 인한 피해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데이트 폭력 사건은 지난해 총 7692건이 발생했다. 살인·상해·폭행·강간·강제추행 등 범행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살인사건만 102건이다. 사흘에 한 번꼴로 한때 사랑했던 이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생기는 셈이다. 형사정책연구원이 2005년부터 10년간 데이트 폭력을 저지른 7만1526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달 25일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전과자 비율이 76.6%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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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데이트 폭력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발생한다. 지난달 24일 경남 창원시에선 김모(46)씨가 8개월간 사귄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한다는 이유로 살해하려 한 사건이 발생했다.

김씨가 “계속 만나자”고 했으나 거절당하자 뒤따라가 검은 비닐봉지에 넣은 벽돌로 여자친구를 네 번 내리쳤다. 김씨는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됐다.

광주광역시에서는 지난해 3월 의학전문대학원생 B씨(36)가 전화를 퉁명스럽게 받았다는 이유로 여자 친구를 무차별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6월에는 차세대 진보 논객으로 주목받던 한윤형(33)씨의 전 여자친구 폭행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처음에는 단순한 협박이지만 사랑하는 사이라는 이유로 참아주다 보면 강력범죄로까지 이어진다”며 “드러나지 않은 범행은 더 많을 것이란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찰이 운영할 TF가 사후 처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사전 예방 조치의 필요성을 지적한다.

이명숙 법무법인 나우리 대표 변호사는 “데이트 폭력은 재범률이 높은 만큼 연인의 과거 폭력 전과를 상대방이 조회할 수 있게 한 영국의 ‘클레어법’을 도입하는 등 근본적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민제·조한대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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