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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언론에 재갈? 정권 비판 방송 앵커 3명 동시에 하차

중앙일보 2016.02.03 01:53 종합 1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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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에 거침없이 ‘쓴소리’를 해온 일본 주요 방송사 뉴스·시사 프로그램 앵커들이 오는 3월 말 잇따라 물러난다.

안보법·아베노믹스·헌법해석 ?
거침없는 쓴소리로 정부와 갈등
NHK·TV아사히·TBS 앵커 퇴장
계약 만료 등 우연 겹쳤지만
시청자들, 교체 배경에 의혹 시선

NHK 보도 프로그램 ‘클로즈업 현대’의 진행자 구니야 히로코(國谷裕子·58)와 TV아사히(朝日)의 간판 앵커 후루타치 이치로(61), TBS의 메인 뉴스 앵커 기시이 시게타다(岸井成格·71)이다. 날카로운 뉴스 분석과 정권 비판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아베 정권과 우익에겐 ‘눈엣가시’ 같은 존재여서 교체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NHK는 1993년부터 ‘클로즈업 현대’를 진행해온 프리랜서 방송인 구니야 앵커와의 계약을 갱신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사히신문은 2일 “현장(제작진)은 구니야의 유임을 강하게 요구했지만 NHK 간부가 프로그램을 새롭게 바꾼다며 교체를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구니야는 2014년 7월 각료회의 결정만으로 집단적 자위권 관련 헌법해석을 변경한 아베 정권을 강하게 질타했다.

당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을 게스트로 불러 “일본이 전쟁에 휘말리는 것 아니냐” “헌법 해석을 이렇게 쉽게 바꿔도 되느냐”는 등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스가 장관은 NHK 제작진에 항의했고 이후 NHK 회장이 사죄한 사실이 일본 주간지에 보도됐다.

민영방송인 TV아사히의 후루타치 앵커는 2004년부터 12년간 진행해온 평일 밤 10시 메인 뉴스 ‘보도 스테이션’에서 아베 정권에 비판적인 논조를 유지해왔다.

지난해 9월 안보 법안이 참의원 특별위원회를 통과했을 때 “나는 강행 처리였다고 생각한다”는 소신 발언으로 화제가 됐다.

지난해 3월에는 원전 재가동 정책을 비판해온 시사 평론가 고가 시케아키(古賀茂明)가 ‘보도 스테이션’ 생방송 도중 “아베 정권의 압력으로 내가 TV아사히에서 물러나게 됐다”고 주장하며 ‘나는 아베가 아니다’는 문구를 적은 종이를 펼쳐보여 파문이 일기도 했다.

자민당은 TV아사히 경영진을 불러 당시 상황에 대해 조사를 벌였고 압력 논란을 빚었다. 이 때문에 앵커 교체를 둘러싸고 의혹이 일고 있지만 TV아사히는 “후루타치 앵커가 현재의 계약 기간이 끝나는 시점에 뉴스를 그만두고 싶다는 뜻을 먼저 전해왔다”고 밝혔다.

마이니치신문 정치부 기자·주필 출신인 민방 TBS ‘뉴스 23’의 기시이 앵커는 아베 정권이 국민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특정비밀보호법과 안보법을 밀어붙였을 때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9월 16일 뉴스에선 “안보 법안은 위헌이며 언론도 법안 폐기를 위해 목소리를 계속 높여야 한다”고 아베를 향해 돌직구를 던졌다.

당시 ‘방송법 준수를 요구하는 시청자 모임’이란 우익 단체가 산케이신문과 요미우리신문에 그의 발언을 비판하는 의견 광고를 게재하는 등 반발했다.

스나카와 히로요시(砂川浩慶) 릿쿄(立敎)대 교수는 “(앵커들의) 교체가 겹친 것은 우연의 요소가 크고 각각의 사정이 있겠지만 시청자들이 보기엔 정권에 비판적인 앵커들이 밀려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며 “권력 감시는 언론 본래의 역할이다. 옳고 그른 데 대해 정확하게 문제를 지적하는 앵커가 없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도쿄=이정헌 특파원 jhleeh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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