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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열고 다시!” 한 소절만 수십 번 … 가수의 길, 험난하네요

중앙일보 2016.02.03 01:40 종합 2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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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다른 삶을 꿈꿉니다.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 행복이 있을 거라 믿으면서 말이죠. ‘내가 만약에 OOO이 될 수 있었다면 더 행복했을 텐데….’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간절히 바랐던 꿈이 현실이 된다면 우리 삶은 행복으로 넘쳐날까요. 이번 청춘리포트는 그런 의문에서 출발했습니다. 당신에게 꿈을 이룰 수 있는 단 하루가 주어진다면?

[젊어진 수요일] 청춘리포트 - 꿈꾸던 직업, 하루 체험해보니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인생이란 아쉬운 것들의 총체다. 한 번의 성공 전에 아홉 번의 실패가 있고, 한 차례 행복이 오기까지 무수한 불행을 견뎌야 하는 게 인생이다.

20~30대 청춘이라고 다를까. 청춘에겐 무한정 꿈을 꿀 수 있는 특권이 있지만 그 특권은 매우 드물게만 현실로 입증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아쉬워하며 이런 상상을 해보곤 한다.

‘만약에 내가 ○○○이 되는 꿈을 이뤘다면….’ 단 하루라도 못다 이룬 꿈을 실현할 순 없을까. 청춘리포트팀이 그 불가능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청춘 꿈 조작단’을 꾸렸다.

세 명의 의뢰인이 문을 두드렸다. 이들에겐 마음속 고이 접어놓았던 각자의 꿈을 이루는 하루가 주어졌다.

“이러면 앨범 못 나가” 첫 녹음에 디렉터 질타 쏟아져
노래 듣고 나도 실망…그래도 직장인 밴드 도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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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호 롯데JTB 대리=초등학교 6학년 때 한경호(33)씨는 좋아하는 여학생의 마음을 얻고자 수학여행 장기자랑 무대에서 이지훈의 ‘왜 하늘은’을 불렀다. 덕분에 짝사랑하던 아이의 마음을 얻었다. 고등학교 시절엔 학교를 대표하는 밴드 보컬이었다. 학창시절 한씨는 늘 ‘노래 잘하는 친구’로 통했다. 그렇게 가수의 꿈을 키워가며 대학도 실용음악과를 지원했다. 결과는 모두 낙방.

‘소질이 없는 걸까’ ‘ 밥벌이는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결국 평범한 회사원의 길을 택했다. 여행사에서 일하는 현재의 삶도 나쁘진 않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미련이 남아 있다. 지금도 친구들의 결혼식 축가는 늘 한씨의 몫이다.

신인가수 한경호=한씨 에게 ‘신인가수 한경호’로서의 하루가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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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호씨가 서울 방배동 ‘헤마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렇게 부르면 앨범 못 나가요.”

디렉터의 질타가 쏟아진다. 지난달 31일 신인가수 한경호는 서울 방배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첫 앨범 녹음을 했다. 녹음실 안에 있는 그의 표정이 어두웠다. 반주가 시작되자 이내 마음을 다잡고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디렉터가 음악을 끊었다.

“볼륨 밸런싱이 좋지 않아요. 목을 열고 불러야 하는데 닫혀 있다고요.”

디렉터의 지적은 멈추질 않았다. 언성이 더 높아지며 표정이 굳었다. “성시경의 ‘한 번 더 이별’은 가사에 푹 빠져서 말하듯 노래를 불러야 해요. ”

앨범에 실리는 노래 한 곡을 완성하는 일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 소절도 수십 번 계속 불렀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녹음을 하고 나서야 1차 녹음이 마무리됐다. 자신이 녹음한 곡을 들어보면서 신인가수 한경호는 고개를 저었다.

“생각했던 것과 제 목소리가 많이 다르게 들리네요. 쉽지 않은 건 알지만 직장인 밴드를 해서라도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싶습니다.”

다시 여행사 직원으로 돌아온 한씨는 “하루가 너무 짧았다”며 아쉬워했다.

음료 만들고 서빙·설거지, 임대료 걱정까지
여유 즐기는 카페 주인? 커피 마실 틈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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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진 마이크임팩트 기획 매니저=3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휴직 중이던 정미진(29)씨는 카페 창업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갓 내린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단골손님이 오는 날엔 두런두런 대화도 나누는 삶을 상상했다. 하지만 고민이 실천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사업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던 것이다.

현재 정씨는 재취업해 강연을 기획하고 연사들을 관리하는 매니저 일을 한다. 애칭은 ‘쩡 매니저’다. 활발하고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적성에 딱 맞는 일이지만 이따금씩 사람에 치여 지치기 일쑤다. 그럴 때마다 3년 전 했던 고민이 다시 떠오른다. “어디 조용한 곳에 카페나 하나 차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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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진씨가 서울 이태원 카페 ‘세랭게티’의 일일 사장이 되어 커피를 내리고 있다.


OO카페 정미진 사장=지난 1일 정 사장은 서울 이태원동에 차린 카페 문을 연다. 오전 11시부터 밤 10시까지 영업이다. 제일 먼저 커피 기계를 작동시키고 가게 구석구석을 쓸고 닦았다. 그날 하루 제일 먼저 내린 커피 한 잔을 들고 음악을 틀었다. ‘그래, 이런 게 카페의 낭만이지.’ 정씨는 눈을 감고 커피 향을 음미했다.

여유도 잠시, 손님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음료를 만들고 서빙하는 것 모두 정씨의 몫이다.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하기에는 인건비가 부담됐다. 잠시 쉬려는 찰나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주문한 재료가 카페에 도착했다. 재료들을 일일이 정리하고 다듬는 동안 또 손님이 오고 나갔다. 중간중간 화장실 체크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했다. 오전에 잠시 누린 여유는 잊혀진 지 오래였다. 장사가 잘 될수록 정씨가 꿈꾸던 카페에서의 일상은 점점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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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틈이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도 관리해 줘야 한다. 그래야 입소문이 나 손님이 더 많이 찾는다. 카페에 대해 불평하는 블로그나 댓글이 없는지도 살폈다. 하루를 마감하며 정씨는 “바쁜 것도 바쁜 거지만 카페 주인으로서의 여유로운 삶을 꿈꾸기엔 임대료와 기타 부대비용 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다시 현실의 ‘쩡 매니저’로 돌아갔다.

정장 입고 객실 체크, 고객 응대 쉴 틈 없어
식사는 구내식당서…“호텔리어에 이런 고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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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생 이민우씨=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초등학생 시절 이민우(27)씨는 우연히 고급 호텔 앞을 지나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마주친 정장 차림의 호텔 직원들이 어린 그에게 퍽 멋져 보였다.

그때부터 이씨는 호텔리어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품게 됐다. 대학 입학 후 레스토랑·카페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이씨는 ‘서비스업’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임을 확신했고, 서비스업의 정점은 바로 ‘호텔’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졸업 후 취업 시장에 뛰어들고 나니 호텔리어라는 직업만을 고집하기엔 현실이 너무 각박했다. 현실의 이씨는 ‘남들 다 하는’ 토익 점수 올리기에 한창인 평범한 취업준비생이다.

호텔리어 이민우씨=이씨는 지난 1일 밀레니엄 서울힐튼 호텔 객실부 신입사원이 됐다. 출근 후 정장으로 옷을 갈아입은 이씨는 지하 2층 사무실로 갔다. 그곳에 있던 선배가 이씨에게 문서 하나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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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씨가 고객이 투숙하기 전 호텔 객실을 정리하고 있다.


“오늘 우리 호텔에 묵을 VIP 명단이야. 방마다 셋업이 조금씩 다르니 한 번씩 다 가서 체크해야 해.”

오전 내내 앉아 있을 시간은 없었다. 룸서비스팀에 가서 객실 세팅 사항을 전달한 뒤 손님들이 묵을 객실 상태를 일일이 점검했다. 객실을 살피던 이씨가 화장실에서 머리카락 한 올을 발견했다. 사소한 고객의 불편이나 불쾌함이 바로 불만족으로 이어지는 만큼 꼼꼼함은 필수였다.

객실을 체크한 뒤 점심시간 전까지 호텔 입구 앞에 서서 고객들을 맞았다. 도움이 필요한 고객에게 귀신같이 다가가는 선배의 모습에 이씨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서울역 가는 방향이 어딘지 묻는 중국인 관광객 앞에서는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점심시간이 돼서야 이씨는 겨우 의자에 앉았다. 다른 구내식당과 다를 바 없는 호텔 직원 급식을 40분 만에 먹고 다시 업무에 복귀해야 했다. 일을 마치고 호텔 밖을 나서는 그는 제법 홀가분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호텔리어의 화려한 이미지 뒤로 직원들의 남모를 고충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하지만 그만큼 욕심도 생기네요. 앞으로 취업 공부하면서 오늘 하루를 자주 떠올리게 될 것 같아요.”

글=홍상지·백수진 기자, 사진=김성룡·전민규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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