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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바둑 두는 로봇과 애플

중앙일보 2016.02.03 00:37 종합 2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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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중
가톨릭대 교수·컴퓨터정보공학부

최고 기업 애플에 찾아온 위기
패러다임 시프트 실패한 팀 쿡
합리적 모험가 역할 하는 구글
우리의 기업은 미래를 보는가

융·복합전공 학부장

2015년 애플사는 여전히 역대 최고의 실적을 보여줬다. 하지만 올 1분기 갑작스러운 성장세 정체를 발표하면서 세계 최고 가치의 기업은 구글이 됐다. 애플 주가는 지난해 중반 이후 6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하락해 기업 가치의 30%가 사라졌다. 물론 현재도 애플은 글로벌 초우량 기업이며, 당장 매출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이러한 풍요 속의 위기는 무엇 때문인가. 애플의 수장인 팀 쿡은 최고의 실적을 보여줬다. 하지만 전 세계의 투자가는 그에게 “그런데, 그 다음은?”이라고 묻고 있다. 최고의 기업에 찾아온 위기, 그것은 우리의 인생과도 닮아 있다. 백세 시대가 펼쳐진다는 지금, 우리는 미래에 불안해한다.

정보통신의 발달은 세계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이 세계 전역을 하나의 경제권, 일일생활권으로 묶어 놓더니 초고속 인터넷과 LTE 통신은 세계를 바로 옆집으로 만들어 놓았다. 얼마 전 있었던 미국과 중국의 대형 할인행사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들썩이고, 바다 너머 가게에서 거리낌 없이 상품을 구입한다. 우리 기업도 인터넷 건너편 중국 손님을 받기 위해 분주하다. 사람의 생활은 이렇게 정보통신과 기술 발달에 따라 변화하게 된다. 십 수년 전인 2001년 이러한 변화에 빠르게 대응했던 것이 애플의 스티브 잡스였고,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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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사라져 간 기업도 많다. 한 예로 MP3 플레이어로 세계 시장을 선도했던 우리나라의 한 기업은 이제 옛이야기가 돼 버렸다. 스마트폰이 MP3를 대신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스마트폰이 바꾼 것은 사람들의 생활 형태, 즉 패러다임을 바꾸었던 것이다. 기업이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새로운 제품을 창조하는 것, 이러한 행보는 모험적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지만 냉정하게 외면될 수도 있다. 때로는 조롱당하기까지 한다.

생산적 창조,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미래는 현재를 지배한다. 당연히 세계는 애플과 같은 일류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패러다임 시프트를 이끌기를 바란다. 하지만 ‘관리형’ 기업가인 팀 쿡은 안정적인 제품을 만들어내는 데 집착했다. 이미 한참을 파던 우물을 더 파내기만 하고 새 물길을 찾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우리 기업도 마찬가지다. 요즘 각종 ‘페이’가 넘쳐난다. 전자상거래의 개인화가 패러다임을 바꿀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글로벌 경쟁에 놓인 우리나라 기업도 모두 이 ‘페이’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그런데 이 ‘페이’가 생활을 바꾸어 놓을 핵심 요소인가. 필자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질적인 상품 구입과 지불 관계에 끼어든 대체재일 뿐 삶의 형태를 바꾸어 놓은 것이 아니다.

패러다임 시프트에 대해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우리는 과거 레코드판을 사고 CD를 구입해 음악을 소유하는 것을 즐겼다. 지금은 어떠한가. 이제는 음악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음악 콘텐트에 ‘액세스’하는 권한을 산다. 음악의 소유에서 콘텐트의 액세스로 사람들이 생활하는 방식을 바꾸어 버림으로써 음악 감상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고, 스티브 잡스는 이 부분을 잡아냈던 것이다.

며칠 전 구글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 기사의 대국을 성사시켰다. 인공지능이 최고의 프로기사에게 이길 정도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승패를 넘어 그 과정은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구글은 온 세계인이 초고속통신과 스마트폰을 통해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국을 지켜보도록 함으로써 새 인공지능을 선보이는 것이다. 구글이 애플의 기업가치를 넘어선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구글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패러다임 시프터를 자임하면서 합리적인 모험가 역할을 끊임없이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구글이 소비자에게 직접 팔고 있는 것은 별로 없지만, 구글이 미래에 만들어낼 그 무엇인가가 우리의 삶을 바꿔 놓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래 세계 대부분의 국가와 기업이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정체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현재의 패러다임을 바꿀 그 무엇인가가 나타나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선순환으로 연결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이를 위해 미래창조과학부를 필두로 ‘X-프로젝트’와 같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모험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었다는 세계 굴지의 기업이 여러 개 있다. 여기에다 최근 이들 대기업 간에 합종연횡이 일어나고 있다. 대기업들의 전략적 투자 부문이 바뀌기도 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과연 이런 재편이 미래를 내다보고 진행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당장의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한 것은 아닌지 답답할 때가 적지 않다. 어느 때보다 구글처럼 생산적 창조,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대담한 도전이 절실하다. 미래를 창조하려는 기업이 현재를 지배하는 시대다.

서효중 가톨릭대 교수·컴퓨터정보공학부 융·복합전공 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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