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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던 차에 불 나서 수천만원 피해 원인 입증못하면 100% 제조사 책임”

중앙일보 2016.02.01 02:41 종합 8면 지면보기
주행 중인 자동차의 엔진에 불이 붙어 차가 손상됐다면 제조사에 100%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제조사가 화재의 원인이 차량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 이례적 사례다.

법원 “차량 결함 때문 아니라는 것
제조과정 잘 아는 쪽이 증명해야”

2012년 6월 렉스턴(쌍용자동차)을 몰고 경북 청도에서 대구로 가던 A씨는 경적을 울리고 창문을 열어 소리를 지르는 옆 차 운전자 때문에 차를 세웠다. 내려서 보니 엔진 아래 쪽에서 불똥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후 차량은 고쳐 쓰지 못할 정도로 탔다.

A씨 측 보험사는 자차 손해보험금 등 2594만원을 지급한 뒤 쌍용차를 상대로 구상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에 서울중앙지법은 “쌍용차는 2234만원을 지급하라”고 지난달 27일 판결했다. 지급된 보험금에서 망가진 차의 가치를 추정한 금액인 360만원을 제외한 만큼을 쌍용차가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 과정에선 “배터리 단자 부분에서 발생한 전기 스파크가 원인이 됐을 것”이라는 전문가 진단이 제시됐다. 쌍용차는 문제의 차량이 두 차례 교통사고를 낸 차라는 점을 강조하며 관리 부실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기계적 결함 때문인지, 운전자의 관리 부실 때문인지를 구별할 명확한 증거는 없었다.

오성우 부장판사는 “화재가 차량의 결함 때문에 발생한 게 아니라는 점을 쌍용차가 입증하지 못했다”며 “차량 결함 때문에 화재가 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결론 냈다. 제품의 결함으로 소비자에게 손해가 생겼을 때 면책사유를 입증하지 못하면 제조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제조물 책임의 원칙을 적용하는 게 옳다고 봤다.

현행 제조물책임법은 원칙적으로 제품의 결함으로 소비자가 신체 등에 2차 피해를 본 경우에만 적용돼 이 사건처럼 제품 그 자체에 손해가 생긴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동안 제품 자체에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이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생산기술과 공정을 알 수 없는 소비자가 손해의 발생 원인을 증명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은 제품 자체에 손해가 발생한 경우나 2차 피해를 본 경우 모두에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판례로 이 같은 확대 적용을 차단해 왔다. 그러나 오 부장판사는 “(자동차회사처럼) 제조사와 판매자가 사실상 동일한 경우에는 제품 자체에 손해가 발생했을 때에도 제조물책임의 원칙을 적용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임장혁 기자·변호사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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