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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텔링] 딱 2년 빼고…사랑도 100도에서 끓었습니다

중앙일보 2016.02.01 02:32 종합 1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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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금 모금 마지막 날인 31일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가 99.7도를 가리키고 있다. [사진 김성룡 기자]

당신은 올겨울에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저를 스쳐갔습니다. 올해도 100도를 넘길 수 있을까…. 2000년부터 17년째. 저는 추운 겨울이 되면 당신 앞에 우뚝 섭니다.

날씨 추울수록, 경제 힘들수록
더 뜨거운 ‘사랑의 온도탑’ 17년
평생 모은 29억 기부한 재일동포
매년 1억 수표 보내는 대구 60대…
올해도 눈금 100도 넘길까 관심

제겐 좀 ‘이상한 온도계’가 달려 있습니다. 날씨가 추울수록, 가계 경제가 휘청거릴수록 눈금이 더 높이 올라갑니다. 언제나 그렇듯 겨울은 가난한 이웃에게 더 혹독한 계절입니다. 당신도 그 사실을 잘 알기에 몇 만원이라도 꺼내 온정의 손길을 건네는 것이겠지요.

당신은 매년 겨울 서울 광화문광장에 서는 저를 ‘사랑의 온도탑’이라고 부릅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매년 11월 말부터 다음해 1월 말까지 펼치는 집중모금 캠페인을 상징하는 조형물이죠.

모금회 측에서 경제 지표 등을 따져 해마다 목표 액수를 정합니다. 목표치의 1%가 모일 때마다 1도씩 눈금이 올라갑니다. 목표 액수를 다 채우면 100도를 기록하는 거죠.

‘2015~2016년 모금’은 지난해 11월 23일 시작됐어요. 목표 금액은 3430억원. 1월 30일 자정 기준으로 99.7도를 기록 중입니다. 모금회 측은 이번에도 무난히 100도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합니다(※최종 집계는 2월 1일 오전 10시쯤 나올 예정). 올해도 저를 향한 당신의 관심이 뜨거웠던 덕분입니다.

사실 17년 전만 해도 이런 뜨거운 반응은 예상하기 힘들었어요. 처음으로 ‘사랑의 온도탑’을 제안한 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일하던 김휘관 과장이었다고 합니다. 미국 공동모금회에서 모금액을 표시하기 위해 온도계 조형물을 사용하고 있는 데서 착안했다지요.

맨 처음 제가 섰던 곳은 서울시청 광장이었습니다. 첫 모금은 2000년 11월부터 2001년 1월까지 진행됐지요. 당시 목표액은 427억원. 홍보가 부족했음에도 92.7도(396억원)를 기록했고, 이후 관심은 더 커져갔습니다.

목표 모금액이 426억원이었던 2001~2002년에는 632억원이 모여 눈금이 148도까지 치솟기도 했죠. 저는 2008년 겨울까지는 서울시청에 있다가 2009년부터 광화문광장으로 옮겼습니다. 넓은 공간에서 더 많은 시민을 맞이하자는 취지였죠. 첫해를 제외하면 그때까지 매년 온도계 눈금은 늘 100도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위기가 닥쳤습니다. 2010년 10월 보건복지부 종합감사에서 사랑의 온도탑 성금이 불법 사용된 사실이 적발됐습니다. 심지어 모금회의 한 간부는 성금을 유흥비로 몰래 쓰기도 했지요. 아, 그해 겨울은 얼마나 혹독했던지요.

결국 그해 온도탑 눈금은 94.2도에 그쳤습니다. 광화문광장에 서 있는 게 치욕스러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성금 사용의 투명성이 강화됐고 당신은 변함없는 응원을 제게 보내줬습니다.

실제로 2010년 11월~2011년 1월 시즌 이후 온도계 눈금은 또다시 매년 100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라 경제가 해마다 기울고 있다는데 어려운 이웃을 향한 시민들의 손길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지난 17년간 성금을 보내온 시민들이 누구인지 다 알진 못합니다. 다만 저를 뭉클하게 했던 몇몇 이들은 기억에서 지우기 힘듭니다.

2013년 평생 모은 29억원을 기부한 어느 재일동포 할아버지는 “고국의 독거노인들을 위해 써 달라”는 말만 남겼다고 해요. 2012년부터 매년 익명으로 1억원 이상을 기부해 온 대구의 한 60대 남성은 올겨울에도 1억2000만원짜리 수표를 보내왔지요.

2003년부터 재롱잔치에서 물품을 팔아 모은 돈을 보내오는 제주도 해봉유치원 아이들은 또 어떻고요. 모두가 우리 사회를 좀 더 따뜻하게 만드는 고마운 손길입니다. 당신이 ARS·계좌이체 등으로 보내온 성금은 저소득층의 기초생계·의료비·교육비 지원 등으로 사용됩니다. 전국 2만 개 단체 약 400만 명이 매년 도움을 받습니다.

올겨울에도 저는 광화문광장에서 당신의 손길을 기다렸습니다. 인천·청주·목포 등 전국 16개 지역에서도 함께했지요. 사람의 정상체온이 36.5도라면 저의 정상체온은 100도일 겁니다. 이웃을 향한 당신의 따뜻한 손길이 계속돼 한국 사회가 100도의 ‘기부 체온’을 지켜냈으면 좋겠습니다.

글=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사랑의 온도탑 시점에서 1인칭으로 재구성한 기사입니다. 올해 온도탑 눈금이 100도를 넘겼는지는 모금 액수가 최종 집계되는 1일 오전 10시 이후 온라인 중앙일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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