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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복합 가능 분야 선점이 경쟁국 따돌리는 지름길

중앙일보 2016.02.01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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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로욜의 ‘모바일 영화관’ 로욜-X에는 해상도 3300ppi의 플렉서블 올레드 가 쓰였다. [사진 로욜]


지난 달 초 열린 CES2016에선 중국의 디스플레이 업체 로욜(Royole·柔宇)이 화제였다.

중국, 두께 0.01㎜ 아몰레드 개발
대기업 연합 일본도 명성 재현 나서
대규모 공장 생산 시스템으론 한계
맞춤형 제품으로 부가가치 높여야


로욜은 CES에서 세계 최초의 ‘모바일 영화관’ 로욜-X를 공개했다. 헤드셋(HMD) 형태의 로욜-X는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를 활용하는 기존의 가상현실(VR) 제품들과 달리 자체 스크린과 음향, 운영체제(OS)까지 갖췄다.

로욜-X를 스마트폰과 연결하고 머리에 쓰면 1인 전용 영화관에 온 듯 실감나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이 회사는 로욜-X를 온라인숍에서 699달러에 판매 중이다.

이 회사를 좀 더 뜯어보면 중국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음을 실감한다. 올해로 창업 4년차인 스타트업 로욜은 이미 2014년 8월 세계에서 가장 얇은 0.01mm 두께의 플렉서블 아몰레드(AMOLED·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를 공개했다. 바람이 살짝만 불어도 풀 칼라의 아몰레드가 종이처럼 펄럭인다. 둘둘 말았을 때 생기는 밑면 동그라미의 반경은 1mm도 안 된다.

모바일 영화관 로욜-X에 탑재한 디스플레이도 놀라운 수준이다. 해상도가 3300ppi(인치당 픽셀)로 이제까지 상용화된 플렉서블 아몰레드 중 가장 높다. 한국이 20년 가까이 노력해 세계 1위의 디스플레이 강국에 올랐지만 중국의 스타트업은 단 3~4년 만에 턱밑까지 쫓아온 것이다.

로욜은 스탠포드대 유학생 출신 리우쯔홍 대표가 미국 실리콘밸리와 중국 선전·홍콩을 무대로 창업한 회사다. 수조원을 들여 공장을 짓고 대량생산해 이익을 남기는 기존 디스플레이 기업들과 체질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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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부분은 디스플레이 업체가 소비자가 좋아할만한 새로운 제품을 먼저 기획하고 직접 제품OS 같은 소프트웨어까지 개발해 완결된 제품까지 내놓았다는 점이다.

로욜은 삼성·애플·LG 같은 제조사에 부품을 공급하는 B2B(기업간 거래) 위주의 기존 굴뚝형 디스플레이 기업들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의 이우근 책임연구원은 “중국의 올레드 추격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며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도 대량생산 체제에서 벗어난 제조혁신과 디자인 혁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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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디스플레이의 추격은 거침없다. 최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중국과 우리의 디스플레이 산업 기술격차는 2008년 4.2년에서 2014년 2.9년으로 줄었다. 내년이면 한·중 기술격차가 사라진다.

세계 TV 시장의 25%를 차지하는 중국은 2009년부터 정부의 강력한 지원 하에 디스플레이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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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BOE는 지난해 12월 초 정부 지원 하에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에 10.5세대(유리기판 크기 2940×3370㎜) LCD 공장을 착공했다. 400억 위안(약 7조3400억원)을 투자해 2018년 2분기부터 65인치 대형 TV용 패널을 매달 9만장 이상 생산하겠다는 계획이다. 유리기판 크기가 커질수록 LCD를 많이 찍어낼 수 있어 생산성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BOE의 10.5세대 공장 착공은 8~10세대인 한국 LCD를 하루라도 더 빨리 뛰어넘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된다.

또 다른 중국 기업 CSOT는 11세대 LCD 공장을 추진한다는 설도 있다. 이렇게 공급이 늘면 LCD 가격하락 속도가 빨라져 한국 LCD 산업의 수익성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시장조사기관 위츠뷰는 중국이 2018년이면 한국을 제치고 세계 디스플레이 생산 1위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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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폴더블(접히는) 스마트폰이 나온다면 이런 모습일까. 지갑처럼 반으로 접으면 스마트 폰이 되고 펼치면 화면이 두 배로 커지는 태블릿이 된다. [사진 삼성전자 동영상 캡쳐]


한국이 앞선 올레드도 시간이 얼마 없다. 삼성과 LG는 90년대 후반부터 ‘올레드’에 투자하며 미래를 준비해왔다. 정부도 2001년 올레드 디스플레이를 차세대 먹거리 산업으로 정하고 정책적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이젠 다른 선수들도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올레드에 뛰어들고 있다. 올레드 재료인 유기화합물 핵심 재료를 생산하는 일본도 다시 뛰고 있다. 재팬디스플레이(JDI)가 앞장섰다.

2012년 설립된 JDI는 일본 정부가 주도한 민관펀드인 산업혁신기구(INCJ)가 디스플레이 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소니·히타치·도시바 인력을 모아서 설립했다.

일본 산업혁신기구와 JDI는 지난해 초 다시 올레드 전문업체 JOLED를 세웠다. 최근엔 올레드 패널 양산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특히 JDI는 이제까지 LCD를 쓰던 애플이 내놓을 첫 올레드폰의 공급 파트너 자리를 노리고 있어 삼성·LG디스플레이와 경쟁이 불가피하다.

매년 2억 대씩 팔리는 아이폰은 아이폰7이나 아이폰8부터 올레드 패널로 바뀔 전망이다. 애플의 선택은 글로벌 디스플레이 업계의 경쟁 구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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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퍼스트 무버’인 올레드에서 추격자들을 따돌리기 위해선 굴뚝형 장치산업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권오경 한양대 석좌교수는 “디스플레이 크기와 가격 위주의 경쟁으로는 중국과 차별화하기 어렵다”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생각으로 디스플레이 응용 분야를 찾아내고 고부가가치 디스플레이 위주로 생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3D프린팅과 클라우드·사물인터넷이 확산돼 대량생산 제품보다 맞춤형 제품 위주의 시장이 커지는 점도 눈여겨 봐야 한다. 파트너 기업들이 시장의 요구에 따라 빠르게 변하는데 대규모 공장 위주의 생산 시스템만으론 대응하기 어렵다.

그러자면 기업 밖에서 동력을 찾아야 한다.

유희수 KISTEP 박사는 “그저 재밌고 신기한 디스플레이를 넘어 실제 ‘팔리는 제품’이 나올 시장을 개척하려면 스타트업과의 협업이나 산학연 연구를 통해 UI(사용자인터페이스)·UX(사용자 경험)에 대한 역량을 디스플레이 기업들이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디스플레이가 쓰일 시장을 기업이 직접 개발하고 융합 가능한 산업에 대한 이해 높이기 위해서다. 이미 디스플레이는 전자산업을 뛰어넘어 자동차, 섬유, 교육, 의료, 미디어 등 거의 모든 산업과 만나고 있다.

정인재 전 LG디스플레이 부사장은 “롤스로이스가 항공기·선박 엔진을 팔아 번 돈보다 사후서비스(A/S)로 더 큰 매출을 올리듯 디스플레이도 패널 판매 외의 새로운 비즈니스를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료가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이 큰 올레드 시장을 주도하려면 유기화합물 개발에 대한 연구와 투자도 중요하다. 핵심 재료인 유기물 주공급처는 이데미츠 코산을 비롯한 일본 화학기업들이다.

유희수 KISTEP 박사는 “반도체와 달리 유기 재료는 화학분야 기초연구가 탄탄하지 않으면 쉽게 따라갈 수 없다” 고 말했다. 디스플레이 학계에선 정부의 연구비 투자가 급감하고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박수련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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