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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잔소리·심심함은 NO, 진정한 덕담 원해

온라인 중앙일보 2016.02.0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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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대명절 설이 머지 않았습니다. 짧게는 5일, 길게는 9일까지 쉴 수 있는 ‘황금 연휴’죠.

설날 전날과 다음 날을 포함한 3일이 법정 공휴일이라 우리가 신나게 놀 수 있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설날에 뭘 하고 노시나요?

혹시 설의 의미를 모른 채 마냥 ‘노는 날’로 여기지는 않나요. 소중은 10대들의 설날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습니다. 소중 4·5기 학생기자 및 초4~중3 독자 102명에게 설은 어떤 의미인지, 뭘 하고 시간을 보내는지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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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넘게 이어진 민족 최대의 명절
올해 설날은 2월 8일, 연휴 기간은 7~10일입니다. 대체공휴일이 하루 붙은 덕분에 연휴가 그만큼 늘어난 것이죠. 즐겁게 놀 수 있는 기간이지만, 왜 놀아야 하는지 의미를 알고 있다면 더욱 좋겠죠. 설날은 정월 초하룻날(음력 1월 1일)로, 웃어른을 찾아 뵙고 인사하며 덕담을 주고 받는 민족의 명절입니다. 설날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설 풍습에 대한 기록은 7세기 때 중국의 역사서 『수서』에 ‘신라에서는 새해 첫 날 왕이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격려하며 일월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고려·조선에서도 설은 중요한 명절이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설·대보름·삼짇날·팔관회·한식·단오·추석·중양절·동지 등을 9대 명절로 삼았고, 조선시대에는 설날 아침에 임금이 모든 관원에게 신년하례(새해 인사)를 받고 이 날부터 3일 동안 모든 관청이 휴무하며 시장도 쉬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몰래 설 쇠던 일제강점기
양력 1월 1일(신정)을 설 연휴로 보낸 시기도 있습니다. 바로 1910년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훈령을 통해 ‘조선인들도 일본인들처럼 양력 1월 1일에 의무적으로 명절을 보내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인데요. 전통적인 음력 설을 ‘구정’이라 규정하며 이때 명절을 보내거나 세배를 할 경우 엄벌에 처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1000년 넘게 이어져 온 전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일제의 눈을 피해 음력 설을 보낸 사람들은 계속 있어왔죠. 그러다가 1945년 광복이 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음력 설을 다시 보낼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정부 수립 초기에는 지금처럼 음력 설을 연휴로 지정하진 않았어요. 1980년대 초에 음력 설을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의 공휴일로 공식 지정했죠. 80년대 말에는 ‘민속의 날’이 다시 ‘설날’로 바뀌고, 설날 하루만 쉬던 것을 지금과 같은 3일 연휴로 지정하게 됐답니다.

고향 찾아 ‘민족의 대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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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에는 멀리 떨어진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고향을 찾는 사람들로 ‘민족 대이동’도 일어납니다.

설문조사에서도 ‘설날을 어디에서 보내시나요’라는 질문에 응답자 92.6%가 ‘친척집’이라고 답할 정도였습니다. 나머지 7.4%는 자신의 집이라고 응답했고요. 친척집에서 설을 보낼 경우 이동에 걸리는 시간은 65.4%가 ‘1시간 미만’, 19.2%가 ‘1~3시간’이라 응답했어요. ‘5시간 이상’이라 응답한 사람도 11.6%나 됐습니다.

온 가족이 가까이 모여 사는 경우도 있지만, 멀리 떨어진 고향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죠. 고향으로 가는 귀성길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모두가 힘들어집니다. 매년 TV 뉴스를 보면 공중에서 꽉 막힌 고속도로를 보여주며 정체 상황을 알려주곤 하는데, 10대들은 뭘 하며 귀성길의 지루함을 달랠까요? 절반 이상인 57.7%가 ‘신나는 음악이나 라디오를 듣는다’고 답했습니다. ‘잠을 잔다’, ‘가족과 대화를 한다’는 응답도 각각 19.2%로 동일하게 나왔죠.

놀기 전에 할 건 하자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면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차례와 떡국, 세배는 설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풍습이죠. 우선 설날에 차례를 지내는 이유를 알고 있냐는 질문에 73.1%가 ‘알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차례는 명절에 지내는 제사인데, 설날 아침 대부분의 가정에서 조상을 기리는 차례를 지내기 때문이겠죠.

또 설날에 왜 떡국을 먹는지 알고 있냐는 질문에는 70.4%가 ‘한 살 더 먹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라고 응답했어요. 물론 맞는 말입니다. 떡국에는 얇게 썰린 가래떡이 들어가죠. 가래떡을 막 뽑아냈을 때의 모습이 길고, 흰색을 띄기에 ‘장수와 순수’를 의미해 설에 먹는 것입니다.

이승수 중앙대 아시아문화학부 교수는 “돌잔치에 흰 실을 놓고 아이의 장수를 기원하는 것처럼, 긴 가래떡은 장수를 상징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잘라낸 떡은 조상들이 쓰던 화폐인 엽전과 비슷하게 생겨 ‘돈’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장수를 누리면서 새해의 재물복을 바라는 의미가 담겼다고 할 수 있어요.

조선시대 백성들이 사는 민가에서는 새해에 떡국을 먹으며 조상의 음덕(남에게 알려지지 않게 행하는 덕행)을 기리기도 했죠. 이후 하는 세배는 웃어른부터 나이와 항렬(친족집단 내에서 세대의 관계) 순으로 드리며, 이때 덕담도 나눕니다. 길에서 만나는 친구나 친지에게도 서로 복을 빌고 축하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고 해요.

뭘 하고 놀아야 잘 놀았다고 소문이 날까
차례와 세배를 마치고 떡국을 먹고 나면 기본적으로 해야 할 건 다 한 셈이 됩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설 연휴 보내기가 시작되는 것이죠. 뭘 하고 시간을 때울지는 저마다 다 달랐습니다. 응답자의 37%는 ‘사촌들과 신나게 논다’고 답했죠.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아야 대화 코드도 잘 맞고 재미있기 때문일까요.

송인서(서울 광남초 6) 학생은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과 신나게 놀고 싶다”고 말했어요. 또 33.3%는 ‘친척들과 함께 그냥 있는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남는 시간을 이용해 취미 활동을 한다’는 답변도 25.9%나 됐죠. ‘친척들을 피해 방에 들어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는 응답도 3.8%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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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를 맞아 국립민속박물관 야외에서 윷놀이를 즐기는 가족의 모습.

설 연휴 동안 가장 하고 싶은 것으로는 ‘여행’이 29.6%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모처럼 긴 연휴를 맞이하는 만큼 색다른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 기대될 수 있겠죠. 오요셉(서울 잠실초 4) 학생은 “일상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느끼고 싶어서 설 연휴에 꼭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윤현성(고양 정발초 4) 학생은 “설날에 여행을 가면 놀거리나 볼거리가 많을 것 같다”고 말했어요. ‘TV나 영화 보기’가 18.5%로 2위, ‘친구와 놀기’ ‘나 홀로 휴식’도 각각 14.8%로 공동 3위를 차지했어요. 평소 학교나 학원에 치여 즐겁게 놀 수 없는 요즘 어린이들의 실태를 잘 보여주는 응답입니다. 박주영(서울 목동초 5) 학생은 “평소 자주 볼 수 없었던 TV 프로그램이나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조주연(수원 잠원초 6) 학생은 “친척들과 영화를 보러 가면 더욱 즐거운 설날이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설날이 기다려지지 않는다고?
이렇게 즐거운 설날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설날이 기대되지 않는 이유 1위로 ‘가족·친지를 만나야 한다는 부담감(29.2%)’가 뽑혔어요. 만나면 잔소리만 한가득 늘어놓는 어른들 때문일까요. 이승수 교수는 “가족 간의 유대감 약화로 인해 설날이라는 특별한 날에 가족·친족 모임이 갖는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점도 원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심심함’도 설을 재미없게 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아쉬웠던 설날의 이유 1위로 ‘시골에 놀거리(컴퓨터 등)가 없어서’가 뽑혔습니다. 멍하게 앉아 있거나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다 설 연휴가 끝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죠. 기타(30.8%)의 이유도 참 씁쓸합니다. ‘설날에 밀린 학원 숙제에 치여서’, ‘또래 사촌이 없어 어른들의 심부름을 도맡아 해서’와 같은 이유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과거에는 설날에 대한 기대감이 오히려 높았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전화·인터넷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교통수단이 발달하지도 않아서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기 쉽지 않아서죠. 설 연휴나 되야 가족들이 모여 그동안 못다한 정을 나누고 덕담을 주고 받을 수 있으니까요.

반면 요즘에는 ‘공부는 잘하냐’는 등의 질문을 하는 어른들이 많아져 설에 대한 부담감이 늘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올 한 해도 건강해라’, ‘많이 먹고 아프지 말아라’는 덕담을 하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승수 교수는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어린이들은 새 옷을 선물로 받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귀가 즐겁고, 눈이 즐겁고, 입이 즐거운’ 설을 보낼 수 있었지만, 의료와 경제의 발달로 먹고살 걱정이 줄어들며 덕담의 양상이 조금씩 바뀌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어린이들에게는 즐겁게 놀 수 있고 좋은 말을 듣는 설 연휴를 보내는 것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글=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사진=국립민속박물관·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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