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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라의 아이슬란드 오디세이] ① 여행의 시작 레이캬비크

중앙일보 2016.02.01 00:01
1.1  낯선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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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것이 그리웠다. 어렸을 때는 할머니댁에만 가도 콩닥대던 가슴이 이제는 태평양을 건너도 덤덤했다. 낯선 것이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설렘이 줄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여행자에게는 더욱 더 치명적인 현상이었다. 새로움을 찾아 헤매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오는 행복과 희열을 먹고 사는 것이 여행자의 운명이기 때문이었다.

어딜 가야 할까 생각했다. 아이슬란드가 떠올랐다. 텔레비전이나 사진에서 만난 아이슬란드의 모습은 마치 다른 행성의 그것처럼 낯설었다. 불이 펄펄 끓는 대지와, 중력을 거슬러 용솟음치는 물줄기.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과 절벽 사이를 자유롭게 낙하하는 폭포. 하늘에는 새하얀 구름이, 바다에는 푸른 빙하가 둥둥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이곳이라면 익숙함에 잊었던, 모든 감정이 되살아날 것만 같았다. 아이슬란드를 가기로 했다.
 

1.2  작은 대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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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여행은 레이캬비크(Reykjavik)에서 시작된다. 레이캬비크는 아이슬란드의 수도지만, 인구는 약 12만 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에서 이보다 더 큰 도시는 없다. 전체 인구가 약 30만 명인 아이슬란드에서 레이캬비크는 그야말로 대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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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캬비크는 그동안 익숙했던 도시들과 무언가 달랐다. 빵빵거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인적도 드물었다. 아이의 코와 볼은 항상 빨갰고, 입에서 하얀 입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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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대부분은 걸어서 갈 수 있었다. 바삐 걷지 않아도 시간이 넉넉했고 길을 잃어도 5분이면 제자리를 찾았다. 조금만 경사진 곳에 올라가면 장난감 같은 집들의 알록달록한 정수리가 보였고, 교회 꼭대기에 올라가면 도시를 한눈에 품을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비를 피해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 잔 마시다 보면 창밖에는 눈이 내렸고, 카페를 나설 때가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햇살이 비췄다. 자연이 그립다면 항구로 향하면 되었다. 바다는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고 그 뒤로는 눈 덮인 에스야 산맥이 시원하게 뻗어있었다. 밤이 어두워지면 바에서는 청년이 치는 피아노 소리가 골목 어귀까지 흘러나왔고, 시내는 행인으로 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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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깊어지면 하늘을 바라보며 오로라를 기다렸고,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나는 이 작은 대도시가 마음에 들었다.
 

1.3  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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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와 나는 숙소 주인과 투숙객의 관계로 만났다. 콜롬비아 출신의 그녀는 아이슬란드인 남편을 따라 레이캬비크로 이주한 지 10년이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쾌활했다. 처음 만나자마자 갈비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나를 껴안았고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밥을 먹였다.

헬레나는 유쾌한 수다쟁이였다. 그녀는 쉴 새 없이 이야기했고, 끊임없이 웃었다. 만난 지 10분도 채 안 되어 아이슬란드 소금의 품질이 얼마나 좋은지,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저렴한 슈퍼마켓이 어디인지, ‘아라’라는 이름이 아이슬란드에서는 남자 이름 중 하나이고, 자신의 딸 친구의 이름은 오로라이며, 오늘 밤 진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확률이 50%라는 사실 등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후식으로 커피를 권했고, 우리는 주방에서 2시간을 더 떠들었다. 헬레나의 집에서 묵는 내내 아침과 저녁 식사를 그녀와 함께했다. 한 식탁에서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고 웃음을 나눴다. 우리는 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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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캬비크를 떠나는 날, 이른 아침 눈을 떴다. 버스를 타고 렌터카 사무실로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숙소까지 차를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돈도 아낄 겸 직접 가기로 했다. 물을 마시려 주방 불을 켰다. 식탁에 놓인 동전과 메모를 발견했다. 버스비였다. 지난밤 버스비를 어떻게 낼지 고민했었다. 환전을 미처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기억한 모양이었다.

바깥 날씨는 무척 추웠다. 코와 볼이 얼얼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헬레나가 준 동전을 만지작거렸다. 두 번째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동이 텄다. 하늘이 생전 처음 보는 색으로 물들었다.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를 얼굴 가까이 가져댈 때마다 손에서 동전 냄새가 났다. 여행은 여행 중 만나는 인연과 풍경에 의해 정의된다. 아이슬란드 여행은 이미 아름다웠고, 앞으로도 아름다울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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