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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샌더스, 힐러리 뒤집나…3%p 추격

중앙일보 2016.01.31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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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첫 관문인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 D-2인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저녁 6시 30분.

아이오와주 주도 디모인에서 차로 2시간 거리의 시더래피즈 컨벤션센터 유세장에 선 버니 샌더스는 "오늘 밤 우리는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니다"고 외쳤다. 한 시간 전 아이오와주 최대 일간지 디모인레지스터가 '힐러리 클린턴 45%, 샌더스 42%'의 박빙 승부를 알리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한 직후였다.

"이제 따라잡았다"는 자신감에 샌더스는 고무돼 있었다. 그는 "내 경쟁자(클린턴)는 백만장자 몇 명에게 거액의 후원금을 받지만 난 무려 300만 명의 보통 유권자로부터 평균 27달러(3만2000원)를 받았다. 내 선거야말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라고 주먹을 치켜들었다.

전날 저녁 80번 고속도로를 3시간 달려 도착한 대븐포트시의 샌더스 유세장. 클린턴 유세장과 대비되는 몇 가지가 있었다. 살벌한 경호팀에 의한 검색대와 탐지견이 없고 대신 입구의 대학생 자원봉사자가 "그냥 들어가세요"라고 했다. 중절모나 멋쟁이 모자가 아닌 털모자와 야구모자 차림의 대학생과 근로자들이 다수였다.

무엇보다 장내 볼륨이 달랐다. 샌더스가 한마디 외칠 때마다 지지자들은 발을 구르며 "버니, 버니"라 함성을 질렀다. 1시간 동안 귀청이 울릴 정도였다. 유세장인 댄스홀은 계속 출렁거렸다. 흑인과 히스패닉 유권자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청중과 후보의 물리적 간격도 훨씬 가까웠다. 2002년의 '노무현 열기'를 연상케 했다.

샌더스는 물을 벌컥 마셔가며 시종 "이대로는 안 된다!(Enough is enough!)"를 외쳤다. "젊은이들은 마리화나를 소지한 것만으로도 평생 범죄 기록을 떠안는데 골드만삭스 같은 월가의 '정치 권력'은 50억 달러(6조원)의 벌금을 내고도 최고경영자(CEO)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고 열변을 토하자 젊은이들은 "우~우~"란 야유로 맞장구를 쳤다. 샌더스 의원이 막판 "투표율이 낮으면 내가 진다. 우리 모두 월요일(경선일) 미국의 역사를 만들자"고 하자 유세장의 열기는 절정에 달했다.

'바람'이 '표'로 되도록 젊은 지지자들을 투표장으로 유인하는 게 샌더스의 막판 과제. 더구나 영하 13도였던 2008년 경선일과 달리 올해는 영하 1도 정도의 포근한 날씨가 예상되고 있어 클린턴의 지지 기반인 중·노년층이 대거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대학생이라는 제니퍼 스토그너(20)는 "우리는 75살의 버니에게서 젊은이의 희망을 보기 때문에 투표율은 문제없다"며 "이번 월요일을 버니가 '제2의 오바마 기적'을 일으키는 날로 만들 것"이라고 승리를 자신했다.

클린턴(69)은 30분 뒤 샌더스의 유세장에서 차로 2분 거리에서 맞불을 놓았다. 그 동안 따로 아이오와주 지역을 돌며 지원 유세를 하던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급거 '찬조 연사'로 지원 사격에 나섰다. 빌은 그 동안의 강행군 때문인지 목이 쉬어있었다.

"45년 전 힐러리를 만난 이후 힐러리가 손을 대면 모든 게 좋아졌다"며 홀을 가득 메운 1000여 명의 청중의 웃음을 유발한 뒤 "그녀는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치켜 세웠다. 빌은 유세가 끝난 뒤 기자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활짝 웃으며 엄지 손가락을 내보인 뒤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이어 등단한 클린턴은 8년 전 버락 오바마 후보(현 대통령)에게 아이오와에서 막판 역전패 당한 최대 이유가 여성 표 이탈이었던 걸 의식한 듯 유독 여성을 겨냥한 발언을 거듭했다.

그는 "(세계적 투자자) 워런 버핏이 내 지지자다. 그런데 버핏의 비서가 버핏보다 소득세율이 높다. 부자일수록 세율이 낮아지는 이 모순을 시정하겠다고 버핏까지 나서주기로 했다. 이 '버핏 룰(연봉 100만 달러 이상 부유층에게 최소 30% 세율 적용)'을 통해 생긴 돈을 여성에 투자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자 바로 옆에서 유세를 지켜보던 50대 여성은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면 2명의 대통령(빌 클린턴)을 같은 가격에 얻게 되는 셈이니 미국인으로선 괜찮은 거래"라고 말했다. 회사원 크리스 쿡(28)은 "샌더스는 이상주의자이고 힐러리는 현실주의자"라며 "우리는 현실을 원하지 '아이디어'를 원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달 30일 오전 아이오와 중부 스컹크강 연안의 에임스에 위치한 아이오와 주립대학 강당. 홀과 1·2층 난간을 1000여 명이 가득 메웠다. 클린턴에겐 밤 사이 1개의 호재와 1개의 악재가 동시에 나왔다. 호재는 뉴욕타임스의 지지 선언, 악재는 미 국무부의 "클린턴의 장관 재직시절 개인 e메일에서 '1급 비밀' 22건이 발견됐다"는 발표였다.

물론 악재 쪽 파급이 크다. '강철녀'라 불리는 그이지만 충격은 커 보였다. 당장 이날 연설의 톤이 확 낮아졌다. 딸 첼시가 연단 뒤에 앉아 힘을 보탰지만 표정은 어두워 보였다. 하지만 클린턴은 이날 인터뷰에서 국무부 발표에 대해 "그 동안의 수개월 동안 같은 이야기(e메일이 오고 간 당시에는 1급 비밀로 분류 안됐다는 뜻)"라고 일축했다. 입을 꽉 문 클린턴의 표정에서 8년 전 악몽을 되풀이 않으려는 막판 굳은 다짐이 느껴졌다.

공화당은 도널드 트럼프의 기세와 오만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밤 8시 디모인의 드레이크대 강당. 마치 최면에 걸린 지지자들은 광신도처럼 “트럼프”를 외쳤다. 일부 청중이 트럼프를 비판하는 구호를 외치자 삿대질을 하며 욕을 퍼부었다.

트럼프는 가득 몰린 TV 카메라를 가리키며 "저기 (언론사) 카메라를 봐라. (같은 시간 진행 중인) TV토론에 안 가고 여기 다 왔다"고 자랑했다. 부인 멜라니아와 딸 이반카를 소개하며 "만삭인 이반카가 출산 2주를 앞두고 있는 데 이곳 아이오와에서 낳았으면 좋겠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트럼프는 지난달 30일부터는 유세 현장에 취재진을 제한했다. 주로 외신기자들이 대상이란 점 때문에 "트럼프의 인종차별주의가 극에 달했다"는 불만이 디모인에 운집한 2500 여명의 기자들 사이에서 나왔다.

2위를 달리는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텍사스주)은 발로 다진 조직표에 기대를 걸고 있다. 아이오와주 내 99개 카운티를 전부 돈 것은 그가 유일하다. 심지어 인구 300명의 외진 마을까지 찾아갔다. 그런 정성 때문인지 지난달 30일 오전 에임스 게이트호텔 가든룸에서 열린 그의 유세에는 인파가 몰려 행사장에 발을 들이기조차 힘들었다. 유세장에서 만난 릭 셰프턴(58)은 "강한 보수주의자 크루즈가 결국 트럼프를 이길 것"이라고 자신했다.


디모인·대븐포트·에임스·뉴턴(아이오와주)=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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