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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길'에서 펼쳐진 사랑과 평화의 마라톤

중앙일보 2016.01.3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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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죽음의 길’이라 불렸던 바그다드 공항 도로에서 29일(현지시간) 사랑과 평화를 기원하는 마라톤이 개최됐다.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시내로 이어지는 이 길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폭탄 공격과 저격수의 총격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이 같은 호칭이 붙었다. 바그다드 시내에서 마라톤이 열린 건 13년만에 처음이다.

이날 경기에선 과거의 참혹한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참가자들이 경주로를 달리는 가운데 참가자 가족들이 길가에서 이라크 국기를 흔들며 선수들을 응원했다. 참가자 중에는 여성·노인·어린이도 있었으며 심지어 장애인도 참가했다고 주최 측은 전했다. 경주로는 남자 12㎞, 여자 8㎞로 일반적인 마라톤 42.195㎞보다는 짧았지만, 이날 마라톤 참가자는 2200여 명으로 최근 100년 간 이라크에서 열린 육상경기 중 가장 규모가 컸다. 이날 대회는 이라크 경찰의 호위 하에 사고 없이 성황리에 종료됐다.

대회 조직위원회에 참여한 자이돈 무함마드 바그다드대 체육학과 교수는 "이라크 내 종파 분쟁과 이슬람국가의 위협, 저유가로 인한 경제 위기 등 침체된 이라크와는 다른 이라크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이번 마라톤의 테마는 "사랑과 평화"라고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마라톤 코치인 무함마드 오바이드는 "바그다드의 치안이 좋아졌음을 보여주려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며 "이번 마라톤은 우리가 평화롭게 살고 있음을 알리는 메시지이며, 참가 선수들은 이 메시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전령들"이라고 말했다.

대회 주최 측은 바그다드 마라톤 대회를 정례화하고 국제마라톤·장거리달리기협회에 등록할 계획이다. 조직위원장 휴 존스는 "아프가니스탄 카불·레바논 베이루트·인도 뭄바이 등 혼잡하거나 치안이 좋지 않다고 알려진 도시도 바그다드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며 "그런 도시들이 바그다드처럼 사고 없이 성공적으로 행사를 치러낸다면 이는 국제사회에 전하는 아주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고 말했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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