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충성도 높은 수퍼 컨슈머 파악이 최고의 위기대응 전략

중앙선데이 2016.01.31 05:03 464호 20면 지면보기

수퍼 컨슈머(super comsumer)는 사라진 제품도 되살린다. 경쟁사 펩시의 마운틴듀에 밀려 퇴출당한 코카콜라의 레몬맛 탄산음료 ‘서지(Surge)’는 수퍼 컨슈머들의 부활운동으로 12년만인 2014년 재출시됐다. [사진 코카콜라]



25세 청년 벤 슐라피그의 직업은 여행 블로거다. 항공사 마일리지 수집 전문가로도 불린다. 슐라피그는 전 세계를 무료로 여행한다. 항공기는 주로 일등석을 타고 최고급 호텔에서 머문다. 여러 신용카드를 들락날락 사용하며 쌓은 마일리지와 포인트로 지불하고 가끔 예약 초과가 예상되는 항공기를 일부러 선택해 보상 마일리지를 받기도 한다.


[마켓&마케팅-25-] 수퍼 컨슈머(Super Consumer)를 찾아서

그가 운영하는 사이트 ‘원마일앳어타임(One Mile at a Time)’에는 마일리지를 쌓는 팁과 신용카드 혜택 정보는 물론 항공기·호텔·공항 라운지에 대한 생생한 리뷰가 소개된다. 좌석의 다양한 기능부터 승무원과의 대화, 기내식, 잠옷과 슬리퍼, 세면 도구까지 사진과 함께 제공된 세세한 설명을 읽다보면 마치 직접 비행기를 타고 내린 듯하다. CNN·텔레그라프 등 유력 매체와의 인터뷰를 즐기며 블로그 광고, 여행 컨설팅 등으로 엄청난 수익을 거두는 그를 음악전문잡지 롤링스톤은 ‘여행업계의 록스타’라고 칭했다.



 



특정 브랜드에 몰입해 수익 창출 도와슐라피그는 항공사·호텔·신용카드 업계의 전문 정보를 제공하고 기업의 명성을 좌우하는 '수퍼 컨슈머(super consumer)'다. 수퍼 컨슈머는 상품 구입 양이 많은 헤비 유저, 구매를 반복하는 충성 고객을 넘어 제품 차별화와 경쟁력·수익 창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고객을 일컫는다. 특정 제품, 브랜드에 몰입해 에너지를 쏟아 붓고,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만큼 충족되지 않은 잠재 욕구를 지니고 있다.



 

2 미국 크래프트는 판매 정체 상태였던 벨비타 치즈의 회생 방안을 수퍼 컨슈머의 다양한 응용 방법에서찾았다.



미국 식품업체 크래프트의 치즈 브랜드 벨비타(Velveeta)는 걸쭉하게 녹인 형태로, 주로 찍어먹는 디핑 소스로 이용된다. 2013년 가공치즈 시장은 건강을 염려하는 많은 소비자들이 유기농·자연 치즈로 이동해 성장이 정체되고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벨비타를 회생시킬 방안을 모색하던 크래프트는 벨비타 치즈를 구매하지 않거나 사용량이 적은 고객을 핵심 타깃으로 고려했지만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해 경영 컨설팅업체 캠브리지 그룹을 찾았다.



수퍼마켓 스캐너, 소비자 패널조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벨비타 브랜드에도 수퍼 컨슈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이들은 전체 고객의 10% 정도지만 수익의 절반 이상을 담당했다. 또 일반 고객들이 평균 1년에 두세 번, 파티에서 디핑 소스로 사용하는 것과 달리 수퍼 컨슈머는 벨비타를 부드럽고 잘 녹는 고급 치즈로 생각해 찜·퍼지 등 다양한 음식을 요리할 때 수시로 사용하고 있었다.



크래프트는 24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벨비타 수퍼 컨슈머들에게 집중하기로 결정하고 이들의 니즈를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벨비타를 더 많은 종류의 음식에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 했다. 수퍼 컨슈머들을 모아 인터뷰하는 자리에서도 서로 이메일·전화번호를 교환하며 레시피를 공유하는 모습을 보였다. 크래프트는 벨비타를 활용한 다양한 레시피를 수집하거나 직접 개발해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하기 시작했다. 또 샌드위치용 치즈, 가늘게 채썬 슈레즈 치즈 같은 신상품을 내놓아 1년 만에 1억 달러 매출을 거두는데 성공했다.



 



고객의 10%가 수익의 50~70% 차지124개 상품 카테고리의 수퍼 컨슈머를 분석한 리서치업체 닐슨에 의하면 전체 고객의 약 10%인 수퍼 컨슈머가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70%에 달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 제품에 꽂힌 수퍼 컨슈머는 평균 9개의 연관 제품에서도 수퍼 컨슈머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특정 우유에 열정적인 고객은 시리얼 시장에서도 전문가 수준의 소비자일 가능성이 크다. 항공사 마일리지 적립의 달인 슐라피그가 호텔·신용카드 업계에서도 수퍼 컨슈머로 활약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관련 분야에서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는 메가 브랜드일수록 수퍼 컨슈머는 무한 잠재력을 발휘하는 존재가 된다.



전문성과 창의성을 지닌 수퍼 컨슈머는 자신 만의 방식으로 상품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기를 즐긴다. 최근 한국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춰 PC·자동차를 튜닝하고 화장품을 직접 제조하거나 기발한 응용 레시피를 연구하는 '모디슈머(modi-sumer)'가 증가하는 현상을 보면 다양한 업종에서 수퍼 컨슈머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디슈머 덕에 인기몰이를 한 삼양 불닭볶음면.



2013년 출시된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은 모디슈머의 덕을 톡톡히 본 사례다. 초기에는 매운 맛에 대한 호기심으로 도전하는 소비자들이 생겼지만 이후 마니아 고객들이 개발한 ‘불닭볶음면을 맛있게 먹는 방법’이 온라인으로 확산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떡볶이·치즈·우유·삼각김밥 등과 조합하는 창의적인 레시피가 소개되면 그 맛을 확인하고 싶은 소비자들이 레시피를 모방하고 창조하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롯데마트 자료에 의하면 2014년 라면 매출이 8% 이상 감소한 가운데 이 제품은 64.8% 상승하는 기록을 세웠다.



특정 브랜드에 정서적으로 깊이 몰입한 수퍼 컨슈머는 죽은 브랜드를 살려내는 괴력도 발휘한다. 지난해 9월 코카콜라는 12년 전 생산을 중단한 서지(Surge)를 다시 세상에 내놓았다. 1996년 처음 출시되었던 서지는 레몬 맛이 나는 탄산음료로 경쟁사 펩시의 제품에 밀려 퇴출당했던 제품이다. 서지 부활의 주역은 서지를 그리워하는 세 명의 광팬들이었다. 이들은 2011년부터 소셜미디어를 통해 ‘서지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고 12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확보했다.



2013년에는 기부금을 조성해 애틀랜타 코카콜라 본사 근처에 빌보드 광고를 설치하기도 했다. 광고에는 “코크, 우리는 서지를 살 수 없어서 대신 이 광고판을 샀어요”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서지를 돌려달라는 내용의 유튜브 동영상과 연하장도 제작해 온라인으로 퍼뜨렸다. 떠난 브랜드를 그리워하는 고객들의 수년에 걸친 열정적인 요청에 대한 화답으로 코카콜라는 서지를 다시 출시하기로 결정했다. 단종된 제품을 되살린 것은 코카콜라에게 전례 없는 일이었다.



 



직원은 가장 중요한 수퍼 컨슈머상황과 목적에 따라 수퍼 컨슈머는 다른 기준으로 정의될 수 있지만 어떤 환경이든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수퍼 컨슈머가 있다. 바로 내부 고객들이다. 직원들만큼 제품·기업에 관심이 많고 성공을 바라는 고객도 없다. 1980년대 일본 업체의 공격으로 위기에 빠진 할리 데이비슨을 구제하고 지금까지 이어져온 고객 커뮤니티도 직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직원을 주요 고객으로 인식해 브랜드 가치를 공유하고 신뢰를 얻는 기업은 많지 않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갤럽 조사에서 59%가 자사 브랜드와 경쟁 브랜드의 차별점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25개국에서 정부·기업 등에 대한 신뢰도를 측정하는 ‘에델만 신뢰지표(Edelman Trust Barometer)’의 2016년 조사에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기업을 신뢰한다고 대답한 직원의 비중은 65% 수준이었고 한국은 55%에 머물렀다.



내부 고객들에게 제품 가치와 브랜드 정체성을 전달하는 내부 브랜딩이 부족하면 시장에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지금은 애플의 유통 부문을 지휘하고 있는 안젤라 아렌츠는 2006년 명품 브랜드 버버리의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했을 당시 첫 임원회의에서 단 한명의 임원도 버버리를 입고 있지 않은 것을 보고 위기의 심각성을 직감했다고 한다. 만드는 사람조차 외면한 옷을 돈을 주고 사 입을 소비자가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급격한 변화가 필요한 때일수록 내부 고객들과의 공감대 형성을 우선시해야 한다. 외부에 보이는 이미지와 내부 실체의 괴리가 커질 때 직원들은 기업의 노력에 냉소적으로 반응한다.



삼성전자가 1995년 직원들 앞에서 불량품 화형식을 거행한 것은 ‘질(質) 경영’으로의 도약 의지를 삼성인들과 공유하는 내부 마케팅의 일환이기도 했다.



 

1 직원들에게 커피 원두 재배부터 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을 알려주는 스타벅스 리더십 랩.



스타벅스는 수백 개의 매장을 철수하는 위기를 겪었던 2000년대 중반에도 직원들을 위한 ‘리더십 랩(Leadership Lab)’을 마련하기 위해 3억 5000만 달러의 투자를 단행했다. 커피 원두 재배부터 생산 과정, 기업 미션과 브랜드 정체성 등을 전시와 공연으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 공간은 교육 장소라기보다 내부 고객들에게 브랜드를 파는 곳이다. 하워드 슐츠 CEO는 “스타벅스 마케팅의 최우선 목표는 직원을 브랜드 홍보대사로 전환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수퍼맨·원더우먼·배트맨 같은 수퍼 히어로는 평상시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절체절명의 순간 어디선가 나타나 목숨을 구해주고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준다. 수퍼 컨슈머도 시장 상황이 좋지 않거나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할 때 존재감이 더욱 빛난다. 문제가 발생한 후 다급하게 찾기 전에 우리 기업의 수퍼 컨슈머는 누구이며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schoi@dongduk.ac.kr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