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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미국 중산층 … 사회경제적 갈등이 ‘이슈 블랙홀’

중앙선데이 2016.01.31 01:30 464호 6면 지면보기

미국 대선 아이오와주 코커스를 이틀 앞둔 29일 데븐포트의 콜 볼룸에서 청중들이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유세를 듣고 있다. [AP=뉴시스]



미국·영국 등 세계 핵심 국가들의 정치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한편으로는 좌파가 대두하는 조류가 형성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민주사회주의자인 버니 샌더스의 분전으로 대선 열기가 고조되고 있고, 영국에서도 당내 좌파인 제러미 코빈이 지난해 압도적인 지지로 노동당의 당수 경선에서 승리했다.


오바마 이후 … 미국 대선 코드 읽기 요동치는 정치지형

다른 한편으로는 강경우파도 득세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국민전선이 최근 지방선거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는 선풍을 일으켰다. 국민전선은 유럽 우파 포퓰리즘의 대표적인 정당이다. 이 계열에 속하는 영국의 독립당(UKIP)도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보수당과 노동당을 제치고 득표율 1위를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우파 포퓰리즘은 1980년대부터 유럽 정치지형의 우경화 추세에서 새로 등장한 정치 조류이며 외국인 혐오가 대표적인 슬로건이다. 최근 중동권 난민의 쇄도로 우파 포퓰리즘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좌파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는 최근 저서 『새로운 계급투쟁(2015년 독어판)』에서 난민 쇄도와 이슬람국가(IS) 테러로 인해 유럽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위기에 빠졌기 때문에 유럽은 갈림길에 서 있다고 본다. 유럽 위기의 파장은 미국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미국도 글로벌 자본주의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민과 난민 문제에 직면해 왔다.



우파 포퓰리즘과 새 좌파 노선 격돌서방세계가 난민과 테러 문제를 장기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선택엔 두 가지 경향이 있다. 하나는 우파 포퓰리즘 노선으로 차별과 배제가 보편화되는 세계질서가 관철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좌파 노선으로 서구의 이상적인 복지국가가 전 세계적으로 일반화하는 것이다. 양대 조류는 세계 도처에서 격돌하고 있다. 승패의 향방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서구에서는 50~60년대 자본주의 황금기에 중산층의 확대를 기반으로 중도 좌·우파의 수렴화 과정이 있었으며 80년대에 정치지형의 우경화가 시작되었다.



그 결정적 계기는 영국 마거릿 대처와 미국 로널드 레이건의 집권이었다.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회민주당은 우경화된 중간계층의 표심을 따라잡기 위해 이른바 ‘제3의 길’을 추구해 집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3의 길은 신자유주의의 대세를 반전시키기보다 적응하는 노선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구미 좌파의 부활은 세계적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물론 북대서양의 양편을 가로지르면서 등장하고 있는 새로운 좌파는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공통점은 명백하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이다. 새로운 좌파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의 혁명이 결코 아니고 자본주의의 수정 또는 재편이다. 현재 직면한 과제는 ‘긴축정책의 폐기’ 및 한국에서도 도그마가 된 균형재정의 극복이다.



정치지형은 대체로 정당체제로 구성되고, 정당체제는 사회의 갈등구조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균열선(Cleavage)’을 배경으로 형성된다. 사회적 균열선이란 인구집단 및 사회집단 사이에 장기간 형성돼 고착된 분열선이다. 서구의 정당경쟁은 일반적으로 균열선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현대의 균열선은 사회경제적 갈등선과 사회문화적 균열선으로 대별된다. 갈등선은 균열선과 동의어이지만 현대산업사회에서는 사회 갈등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사회경제적 갈등선의 주요 내용은 경제 과정에 대한 국가개입 문제, 소득 양극화와 연관되는 복지국가 및 부자과세 문제가 대표적이다. 따라서 사회경제적 갈등선은 정당의 정치적 스펙트럼과 직결된다. 좌파 블록은 국가개입 및 복지국가의 확대를 찬성하는 편이고, 우파 블록은 반대하는 편이다.



좌·우 블록 내의 정파는 각각 강경·온건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명칭으로 분류된다. 물론 정치적 스펙트럼은 사회경제적 갈등선만을 중심으로 좌·우파로 구분하지는 않는다. 인권과 기본권에 대한 진보·보수적 입장도 보완적인 기준이 된다. 사회문화적 균열선은 사회 여러 부문의 다양한 갈등(인종·민족, 종교, 지역 등)을 포괄하는 분열선이다.



일부 학자들은 정당경쟁이 현대에서는 균열선이 아니라 이슈 중심으로 변화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비록 단기적인 이슈들이 정당경쟁에서 무시할 수 없는 변수라고 하더라도 주된 갈등선은 여전히 유지되어 왔다.



소득집중도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높아 단순화하면 균열선은 장기적인 갈등과 균열이 고착된 결과이고, 이슈는 단기적이고 유동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사회경제적 갈등선과 지역 대립이라는 사회문화적 균열선이 중첩되어 있고 이슈도 일정한 역할을 한다. 미국의 정당경쟁은 사회경제적 갈등선이 견고하지도 않았고 이슈 중심의 경쟁이 전개되는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설명을 근거로 2016년 미국 대선을 전망해보자. 무엇보다도 미국의 정치지평은 서구 국가의 지형과는 다른 특수한 형태로 형성되어 있다. 건국 이후의 정치적 유산과 정치문화 때문에 좌파 블록이 공백이고 양대 정당인 민주당과 공화당과 명멸한 제3당으로 정치지형이 구성되어 왔다.



서구 정당체제의 정치 스펙트럼에 맞추면 민주당은 중도우파, 공화당은 우파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50~60년대에 이상적인 ‘중산층 사회’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상적인 중산층 사회는 레이건의 집권 이후 80년대 신자유주의 시대를 경과하면서 완전히 해체되어 버렸다.



미국 중산층의 몰락은 널리 알려져 있다.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발생한 소득 양극화 문제가 세계적인 논란거리가 되었지만 각국별로 양극화의 심화 정도는 다르다. 미국 소득계층 상위 1% 및 10%의 소득집중도가 타국에 비해 훨씬 높이 상승했고, 따라서 소득 양극화가 가장 심하게 관철되었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와 민주당의 샌더스가 양당에서 부상하고 있는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유권자의 투표성향이 과거 선거에서는 다양한 균열선과 이슈로 관심이 분산되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사회경제적 갈등선으로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 경선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트럼프는 원래부터 공화당 주류의 노선에서 벗어난 이단자였다. 빌 클린턴을 성공적인 대통령으로 치켜세우고 조지 W 부시를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매도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공화당의 기본 노선과는 다른 사회·경제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선거 공약에서 최우선 순위는 초강경 이민정책이다.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공화당 후보 밋 롬니의 상대적으로 온건한 이민정책을 ‘어리석은 짓으로’ 비난할 뿐만 아니라 유럽 난민에 대한 국제적 논쟁에서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관용정책을 ‘미친 짓’으로 비방하기까지 했다. 그도 애초에는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는 입장이었으나 곧 모든 시리아 난민을 추방하자고 주장했다.



라티노(라틴계 주민·히스패닉)에 대한 강경한 입장은 잘 알려져 있다. 여론의 평가를 종합하면 트럼프에 대한 지지가 견고한 것은 그가 공화당의 보수주의적 기본 가치에 충실하기 때문이 아니고 그의 지지층이 미국 정치의 현재 상황에 분노를 표출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샌더스가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그러나 양자는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뚜렷하다. 공통점은 트럼프와 샌더스의 선거 캠페인이 사회경제적 갈등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중산층의 구제 또는 재흥과 부자증세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트럼프는 한편으로는 저소득층의 사회경제적 관심사도 고려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라티노 이민 문제에 대해 강경한 대책을 선동하면서 우파 지지층의 결집을 시도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선거 전략이 비록 현재 아이오와주의 예비선거에서 라이벌인 강경우파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과 접전을 벌이고 있지만 전국 지지도에서는 우세한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초강경 이민정책과 저소득층·중산층을 배려하는 정책의 혼합은 이른바 전형적인 ‘복지 쇼비니즘’이다. 복지 쇼비니즘이란 자국민이 아닌 이주민에게는 복지 혜택을 허용할 수 없다는 국수주의 노선의 한 변종이다. 이러한 노선은 서구의 우파 포퓰리즘과 유사하다. 영국의 독립당도 동일한 전략으로 노동자에게 접근해 노동자의 상당수를 지지층으로 유인할 수 있었고 이 점이 노동당이 지난 총선에서 패배한 한 요인이 되었다.



힐러리의 UFO 정보 공개 공약은 궁여지책샌더스는 트럼프와는 달리 사회경제적 갈등선에 집중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점이 그의 선거 전략의 장점이면서도 단점이다. 트럼프와 달리 샌더스는 사회경제 문제에 체계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여타 균열선과 이슈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하기 때문에 힐러리 클린턴에 비해 흑인과 라티노의 지지도가 낮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샌더스의 정치적 스펙트럼에 관해 논란도 분분하다. 물론 스펙트럼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엄밀한 정책 평가가 필요하지만 재정정책 면에서는 중도우파 정도가 아니라 중도좌파를 넘어서는 요소를 보이고 있다. 그의 재정정책의 이론적 기반은 전통적인 재정균형론을 비판하는 현대통화이론으로서 적극적인 재정 확대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클린턴은 중도우파 민주당에서도 중도적인 입장이라 원래 월등한 기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샌더스의 공세에 밀려 수세에 몰려 진보적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다. 현재 비록 클린턴과 샌더스가 사회경제적 갈등선을 겨냥해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지만 경선 기간 동안 언제, 어디에서 어떤 돌발 이슈로 선거판이 반전될지 모르기 때문에 선거 결과는 예측을 불허한다.



힐러리가 미확인비행물체(UFO)의 정보 공개를 선언한 것도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 보려는 궁여지책에 불과하다. 이번 대선에서 사회경제적 갈등선이 주된 갈등선이 된다면 샌더스가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영국 노동당의 코빈 당수가 현재 차기 총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지만 반전시킬 시간은 충분히 있기 때문에 정권교체를 달성할 수도 있다. 만약 샌더스와 코빈이 모두 승리한다면 79년 대처의 집권과 81년 레이건의 집권이 신자유주의 시대를 열었던 것과 같은 역사적인 대전환기가 도래할 것이다.



 



 



이국영 성균관대 정치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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