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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의 퀴즈쇼 나간 엑소브레인, 주장원전 우승 먹었다

중앙선데이 2016.01.31 01:18 464호 11면 지면보기

엑소브레인이 1월 현재 정답을 찾아내는 속도는 평균 8초로, 오는 10월에는 6초 이내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장학퀴즈에서 참가자들이 답을 말하는 평균 속도는 12초다. 대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연구원들이 엑소브레인 시뮬레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김성태 기자



지난 28일 새벽 한 국제뉴스가 과학계와 바둑계를 동시에 흔들어놨다. 정보기술(IT) 분야 글로벌 기업 구글의 인공지능 연구그룹인 딥마인드가 개발한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가 유럽 바둑 챔피언을 5연승으로 이기고 오는 3월 서울에서 세계 바둑의 정상인 이세돌 9단에 도전한다는 내용이었다. 인공지능이 프로 바둑기사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세돌은 “구글의 딥마인드 인공지능 실력이 이미 상당하며 지속적으로 향상되고 있다고 들었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내가 이길 자신이 있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한국 땅에서 벌어질 인공지능과 바둑계의 세기적 대결 소식을 두고 한국 IT산업과 과학계를 바라보는 눈이 뜨겁다. 한국의 인공지능 기술은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한국 인공지능 어디까지 … 대덕 ETRI 르포

 



TV 화면 속에서 퀴즈쇼가 진행된다. 참가한 4개 팀 중 3개 팀은 학교 명패를 붙인 2인 1조의 실제 고교생 팀인데, 나머지 한 팀은 몸도 얼굴도 없다. 대신에 무지개 색 다이아몬드가 빛을 내며 둥둥 떠 있다. 팀 명패엔 ‘Wise Q&A’라고 적혀 있다. 사회자가 문제를 던진다. “사람의 팔과 새의 날개, 사람의 폐와 물고기의 부레 등은 모두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기원이 동일해 형태나 발생에서 유사성을 가지는 기관을 무엇이라 할까?”



1초, 2초, 3초…. 짧지만 숨 막히는 시간이 흐른다. 불과 5초 만에 버튼을 누르고 ‘상동기관’이라고 말한 팀은 Wise Q&A이다. 정답이다. 다이아몬드 머리 위로 정답을 뜻하는 ‘GOOD’이라는 글자가 나타난다. 2011년 미국 IBM의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Watson)이 인간 퀴즈 챔피언들을 가볍게 물리쳐 화제가 됐던 미 ABC방송의 제퍼디(Jeopardy!) 퀴즈쇼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출발 늦었지만 빠른 속도로 진화 중 Wise Q&A팀이 출연한 퀴즈쇼가 열린 곳은 외국의 어느 방송사 스튜디오가 아니다. 지난 20일 찾아간 대전 대덕특구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지식마이닝연구실 컴퓨터 모니터 속이다. 퀴즈 정답을 맞힌 Wise Q&A팀의 정체는 ETRI가 주도해 지난 3년간 개발해온 인공지능(AI) 컴퓨터 엑소브레인(Exo-brain). ‘내 몸 밖의 두뇌’라는 뜻의 엑소브레인은 2013년 12월부터 매주 평균 한 차례 장학퀴즈와 비슷한 형식의 모의 퀴즈쇼를 해오고 있다. 횟수로 치면 최근까지 100차례가 넘었다. 그간 고교 장학퀴즈쇼에서 나왔던 꼴찌팀 대신에 엑소브레인을 집어넣어 과거의 퀴즈쇼를 재연하는 방식이다. 엑소브레인은 오는 10월로 예정된 실제 퀴즈 챔피언들과의 퀴즈쇼를 준비하고 있다. 1월 말 현재 실력은 장학퀴즈 주장원전 우승 수준이다. 하지만 10월이 되면 왕중왕전에서 우승할 수 있을 정도까지 진화가 예상된다는 게 ETRI 측의 설명이다. 퀴즈 사회자의 장황한 자연어 질문을 알아듣고 인간보다 더 빨리 답을 찾아낼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그간 미국 등 선진국에 크게 뒤처져 있다고만 알려진 한국의 인공지능 연구가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그 선두주자가 ETRI를 중심으로 솔트룩스·KAIST 등이 추진하고 있는 엑소브레인 프로젝트다. 엑소브레인은 미래창조과학부가 2013년 5월 발주한 총 연구기간 10년, 연구비 1000억여원의 장기 대규모 연구개발(R&D) 과제다. 연구기간만큼이나 이름도 길고 거창하다. ‘사용자와 의사소통을 하고 스마트기기 간 자율협업을 통한 지식공유 및 지능진화가 가능한 소프트웨어 기술개발’. 사람처럼 인간의 언어로 대화하고 스스로 공부해 지식을 쌓고 진화해나갈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현재로서는 IBM 왓슨이 롤 모델이지만 계획이 마무리될 즈음엔 왓슨을 넘어서겠다는 게 목표다.



미래부 서석진 소프트웨어정책관은 “현재 정보의 80%는 자연어로 기술된 비정형 텍스트 빅데이터”라며 “빅데이터에서 누가 먼저 많은 가치를 추출해내느냐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지식산업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엑소브레인 프로젝트의 1단계(2013년 5월~2017년 2월) 목표는 일반적인 지식을 대상으로 심층 분석형 인공지능 원천기술을 개발해 기업-대학-연구기관이 연계된 인공지능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그 1단계의 검증을 퀴즈쇼라는 형태를 통해 인간과 인공지능의 지식 대결을 한다는 것이다.



엑소브레인은 지난 3년간 방대한 양의 학습을 해왔다. 국내 웬만한 백과사전류와 고교 교과서뿐 아니라 속담 사전, 사자성어 사전 등 상식 수준을 넘어서는 방대한 지식을 섭렵했다. 또한 시사(時事) 지식에 뒤지지 않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한국어판 위키피디아를 반복 학습해왔다. 뉴스는 매일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중앙일보를 비롯한 20개 일간지들을 읽어 들인다. 올 10월 발표 때까지 음악·미술·건축 등의 분야를 더 공부할 계획이다.



인공지능이 퀴즈쇼에서 인간을 상대로 우승하기 위해서는 지식의 입력만으론 불가능하다. 퀴즈 문제의 의미를 이해하고 데이터베이스에서 그에 적합한 답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ETRI는 이를 위해 지난 3년간 인공지능이 자연어 질문의 문장구조를 파악해 이해하고 추론을 통해 답을 찾아내는 연구를 발전시켜왔다.<그래픽 참조>



2단계(2017년 3월~2020년 2월)는 1단계 성과를 바탕으로 의료와 특허·법률 등의 다양한 지식산업 환경에서 인간의 지식노동을 보조할 수 있는 스마트 어드바이저(Smart Advisor)를 개발해 사업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미국 IBM의 왓슨도 암 진단 분야에서 의사를 보조하기 위한 기술 개발을 추진 중이다.



3단계(2020년 3월~2023년 2월)는 의사결정 지원이 가능하고 영어를 바탕으로 다른 여러 외국어 전문지식을 소화하는 인공두뇌 개발이 목표다. 이를 통해 지식처리 신산업 창출과 글로벌 시장에도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콜센터가 로봇 상담사로 대체되고, 스마트카에 엑소브레인이 들어가며, 외국어에 능통한 가상 아바타가 전문지식으로 도움을 주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공상과학(SF)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장면들이 향후 7년 안에 현실로 나타난다는 얘기다.



엑소브레인 실무 책임자인 ETRI 김현기 지식마이닝연구실장은 “지금까지 계획대로 기술 진보를 해왔다”며 “지금처럼 앞으로도 일관된 지원이 뒷받침되면 계획된 연도까지 목표를 수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엑소브레인이 언어 분야 인공지능 컴퓨터라면 인간의 눈에 해당하는 시각 분야 인공지능도 개발 중에 있다. 역시 ETRI가 주도하고 있는 ?딥뷰(DeepView)? 프로젝트다. 2014년 연구를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폐쇄회로TV(CCTV)나 인공위성의 대규모 동영상 시각 데이터를 학습해서 사물을 이해하고 분석해 가까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연구기간은 2024년까지 10년이다. 사진 속 인물을 알아보는 기술을 이미 서비스하고 있는 구글, 바이두(중국) 등이 경쟁자들이다.



삼성전자·네이버와 같은 국내 대기업들도 늦은 감이 있지만 수년 전부터 인공지능 개발에 뛰어들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포스텍 이근배(컴퓨터공학) 교수를 SW연구센터 전무로 영입, 인공지능 연구를 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사용자 욕구를 먼저 파악해 적합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개발에 우선 나선다는 방침이다. 네이버는 구글처럼 자동번역과 이미지·음성 인식 분야의 인공지능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추론 등 일부 분야는 IBM 왓슨 앞질러 사실 국내의 인공지능 연구는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천하다. 투자 규모만 봐도 구글 한 회사가 한국 전체의 20배 이상이다. 미국은 구글뿐 아니라 IBM과 마이크로소프트 등도 각각 구글만큼 인공지능에 투자하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은 그나마 박근혜 정부 들어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소프트웨어 연구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평가한다.



엑소브레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솔트룩스의 이경일 대표는 “인공지능이 세계시장에서 산업적으로 가시적 성과가 나기 시작한 것은 만 2년이 되지 않았다”며 “한국이 늦은 것은 사실이지만 2013년부터 국책과제로 연구를 시작한 것은 다행이고 행운”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엑소브레인은 IBM의 왓슨보다 출발 자체가 늦었지만 추론과 같은 인공지능 내 특정 분야 기술은 이미 왓슨을 앞서기 시작했다”며 “제한된 인력과 투자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 만큼 연구도 전략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마침 미래부는 인공지능 기술을 육성하기 위해 올해 300억원 규모의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대기업이 참여하는 연구소 설립을 추진한다는 내용의 2016년 업무계획을 지난 27일 발표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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