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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근대 정신사에 큰 영향 종로서적 ‘복원’에 함께 나서자

중앙선데이 2016.01.31 00:33 464호 26면 지면보기



지난 2000년 세계는 ‘뉴밀레니엄’으로 야단법석이었다. 지난 천 년을 되돌아보면서 새 천 년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프로그램들을 진행했다. 그때 나는 영국 로터리클럽의 한 프로그램에 주목했다. 에브리맨스 라이브러리(Everyman’s Library)가 발행하는 동서고금의 고전 200권을 선정해서 영국 전역의 중·고교 4000군데에 보내는 것이었다. 에브리맨스 라이브러리 고전시리즈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인데, 책과 책 읽기의 가치를 아는 영국인다운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젊은이들에게 고전을 선물하는 안목과 문제의식. 로터리클럽의 정신이란 바로 그런 것이겠구나 했다. 그 해 프랑스는 뉴밀레니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365일 내내 인문학 강의를 진행했다. 이 역시 인문정신을 중시하는 프랑스다웠다.


[김언호의 세계 책방 기행 -끝-] 에필로그

그 해 세계의 유수한 매스미디어들은, 지난 천년 동안 인류 문명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들을 거론하면서 금속활자를 창안해 1450년대에 『42행 성서』를 인쇄해낸 구텐베르크를 첫째로 선정했다. 금속활자의 보급으로 모든 사람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책을 읽음으로써 인류의 정신사·사상사는 물론이고 정치적·경제적 민주주의를 구현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때 한국은 무엇을 했는가. 저 하늘에 대고 새 천년을 축하한다면서 불꽃만 펑펑 쏘아댔다. 변변한 기념물 하나 건축하지 못했다.



새로 지은 프랑스 국립미테랑도서관1997년 봄 나는 당시 상하이 총영사관에 근무하던 강효백 교수와 함께 난징대학출판사를 방문했다. 그때 난징대학출판사는 대형기획 ‘중국사상가 평전총서’를 펴내고 있었다. 총 200권에 이르는 이 총서가 나에겐 놀라웠다. 우리가 익히 아는 사상가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사상가들의 시대와 생애, 그 이론과 사상을 평석해내는 출판사를 방문해서 그 편집자들과 대화해보고 싶었다. 나도 그 즈음 우리 역사를 빛낸 사상가들의 평전을 출판하고 있었다.



국책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이 총서의 저자들에겐 ‘저술 안식년’을 준다는 것이었다. 약속한 기한에 저술을 끝내지 못하면 안식년을 연장받을 수도 있다. 중간에 국가주석 장쩌민(江澤民)이 참석하는 출판기념회도 연다고 했다. 완간되면 베이징에서 큰 기념행사를 하게 되어 있다. 『사고전서(四庫全書)』 같은 방대한 책을 출판해내는 중국이다. 중국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사회주의 국가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저술과 출판과 독서란 국가와 민족의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일이라는 걸 아는 나라가 아닌가. 이런 프로그램을 발상하고 구현해내는 정책을 우리도 살펴봐야 할 터이다.



그 해 하반기부터 IMF 환란이 쓰나미처럼 이 나라를 덮쳤고 총서의 일부라도 번역·출판해볼까 하는 나의 생각도 스러지고 말았다. 우리 출판사도 책값으로 받은 어음들이 모조리 부도나면서 휴지조각이 돼버렸다.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지 고뇌하면서 동분서주했다. 모진 시련이었다.



나는 올해로 책 만들기 40년을 맞았다. 40년 동안 3000여 권의 책을 펴내면서 책 쓰기·책 만들기·책 읽기야말로 국가와 사회, 민족공동체의 삶을 건강하게 창조하는 ‘문화 인프라’라고 생각하게 된다. 책 없이 나라와 사회, 민족공동체가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책으로 가능한 사유의 힘 없이 그 무엇 하나 창조해낼 수 있는가 말이다. 책 없이 민주주의를 펼칠 수 있는가.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할 수 있는가. 21세기 지식과 정보의 시대에 책의 문화란 우리 삶의 필요·충분조건이다.



파리를 여행할 때마다 나는 파리 베르시 지역에 있는 미테랑도서관(프랑스국립도서관·BNF)에 들른다. 1988년 7월 14일 혁명기념일을 맞아 미테랑 대통령이 건축 계획을 발표한 뒤 96년에 개관한 곳이다. 프랑스의 문화적 위상을 세계에 과시하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세계의 지식인·관광객들이 이곳을 방문하면서 책과 인문의 나라 프랑스를 알게 된다. 1977년에 문을 연 퐁피두센터도 사실은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복합 문화공간이다. 



“세계에 내놓을만한 책의 전당 짓자”2013년 나는 출판·도서관 인사들과 함께 경복궁 옆 송현동의 미국대사관 관저 터에 ‘서울 책의 전당’을 세우자는 제안을 발표했다. 한진그룹의 소유로 1만 평 이상 되는 땅이다. 수도 서울이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하고도 의미 있는 터전이다. 이곳에 세워지는 책의 전당이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창안해낸 우리 겨레가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한진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대토를 해주어야 할 것이다. 이미 국군수도병원을 고쳐 문을 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우리 문화·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지 않은가. 정부와 한진은 여기에 호텔 중심의 시설을 세워 관광을 도모하겠다는 생각이지만, 책의 전당에 들어서는 다양한 문화·예술 시설들과 프로그램들은 사실은 호텔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직간접으로 ‘코리아의 고품격 문화·관광’을 세계인에게 각인시킬 수 있다. 경복궁과 잘 어울리도록 저층으로 건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주고받았다. 시설을 지하에 넣고 지상은 한옥 이미지로 건축한다면 ‘세계의 광화문’이 될 수 있겠다는 것이다.



뉴욕 맨해튼 뉴욕 시립도서관에서 나는 생각했다. 우리 서울은 이런 도서관을 언제쯤에나 가질 수 있을까 하고. 그 건축이며 책이며, 그 담론이며 전시를 보면서, 책을 국가·사회의 한가운데 놓는 미국은 역시 강대국 미국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의 서울엔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현대 건축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서울 책의 전당’은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 토론해봄 직한 야심적인 어젠다가 아닐까. 서초구에 국립중앙도서관이 있지만 우리 출판문화의 위상을 세계에 떨치기에는 한없이 부족하다. 서울시로서도 작은 도서관들과 함께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이런 큰 도서관을 구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세계의 명문 도서관들은 세계인들이 찾는 관광코스가 되고 있다. 2008년 베이징에 새로 세워진 중국국가도서관의 위용을 보고 나는 중국의 문화적 위력을 새삼 실감했다.



제안 발표 이후 우리는 안타깝게도 심한 ‘힐난’을 받았다. 도서관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정부 부처의 한 차관은 나에게 전화해서 “왜 이따위 의견을 발표하느냐”고 했다. “왜 정치적 발언을 하느냐”고도 했다.



“어찌 이게 정치적인 발언인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의 문화적 견해를 발표했을 뿐이다. 이걸 문화부가 받아서 논의해야 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각계에서, 특히 정부 관계자들에게 “좋은 의견 내줘서 고맙다”는 칭찬을 받을 줄 알았다. 정부 고위 관리에게 ‘꾸중’을 듣고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헤겔·헤세가 드나들던 오시안더 서점

2 헤켄하우어는 헤세의 기념관을 서점 한쪽에 만들었다. 헤르만 헤세는 헤켄하우어에서 3년간 도제 생활을 했다.



지난해 10월 나는 책과 대학의 도시 튀빙겐에 가서 500년 된 서점 오시안더(Osiander)를 방문했다. 세계철학사를 상징하는 헤겔, 서정시인 횔덜린, 관념철학자 셸링, 신학자 칼 바르트, 노벨문학상을 받은 헤르만 헤세, 교황 베네딕토 16세, 나치에 저항하다 체포되어 처형당한 신학자 본회퍼가 학창시절과 교수 시절에 드나들었던 서점이다. 오시안더의 주인은 한두 차례 바뀌었지만 책 읽는 연구자들과 학생들을 위해 계속 문을 열고 있다. 인문적 담론 프로그램들을 다양하게 기획하고 있다.



튀빙겐은 대학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책의 도시, 서점의 도시다. 노벨문학상에다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여덟 명이나 배출한 튀빙겐대학은 인문·자연과학의 기초분야가 아주 튼튼하다. 독서하는 도시이자 대학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헤르만 헤세가 1895년부터 99년까지 도제수업을 한 서점 헤켄하우어도 200년이 된 고서점으로 지금도 문 열고 있다.(사진 2)



 

3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시티라이트 서점. [사진 김언호]



샌프란시스코에는 ‘도시의 불빛’ 시티라이트(City Light) 서점이 있다.(사진 3) 1953년 시인 펄링게티(Lawrence Ferlinghetti)가 문을 열었다. 펄링게티는 시티라이트에 출입하던 앨런 긴즈버그, 잭 케루악 등과 함께 비트운동(Beat Movement)의 진원지를 만들었다. 반전문학의 근거지가 된 곳으로 미국문학사를 장식하는 자유와 전위의 대명사로 불려졌다.



1956년에 간행된 긴즈버그의 서사시집 『절규』(Howl and Other Poems)로 인해 발행자 펄링게티는 ‘외설출판’ 혐의로 체포된다. 그러나 문학가들과 독자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결국 펄링게티는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 ‘절규사건’에서 거둔 문학가들의 승리는 미국 출판역사에서 중요한 선례가 되었다. 이 재판 이후로 D.H.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 같은 작품들을 출판할 수 있었다. 미국 현대사에서 시티라이트 서점은 ‘예술의 자유’를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다.



 

1 200년이 된 고서점 헤켄하우어를 이끌고 있는 로거 조네발트(오른쪽)와 인터뷰하고 있는 필자.



1998년 샌프란시스코 시정부는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잭 런던, 마크 트웨인, 잭 케루악 등 문학가들의 이름을 열두 거리에 붙였다. 시티라이트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펄링게티의 이름을 딴 거리도 생겼다. 펄링게티는 1988년 샌프란시스코 시정부로부터 샌프란시스코 초대 계관시인으로 선정됐다. 2001년 10월 28일 시티라이트 서점은 샌프란시스코의 228번째 랜드마크로 지정됐다.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나면서 미국은 중동전쟁을 시작했다. 시티라이트 서점은 서점 외벽에 ‘전쟁을 중단하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전쟁 자체가 죄악이고, 폭력에 폭력으로 나서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이었다. 시티라이트는 샌프란시스코와 미국을 넘어 예술과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의 서점으로 알려지게 됐다.



“종로서적 없는 종로에 뭐 하러 갈까” 글도우리에겐 서울 종로 2가에 종로서적이 있었다. 우리는 종로서적에서 만나곤 했다. 1907년에 문을 연 종로서적은 그러나 2002년 문을 닫고 말았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해방을 맞고 전쟁을 극복해낸 종로서적. 1960년대와 70년대의 경제개발시대와 함께 존속해온 종로서적. 80년대와 90년대 민주화운동 시절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독서를 매개했던 종로서적. 그 곳이 문을 닫을 때 나는 몇몇 출판인들과 대책을 의논했지만 우리의 힘은 너무나 미약했다. 나는 그때 “종로서적 없는 종로에 뭐 하러 갈까”라는 짧은 글을 한 신문에 쓰기도 했지만, 그 이후 실제로 종로에 가지 않게 되었다.



나는 우리가 함께 손잡고 종로서적을 ‘복원’하자고 말하고 싶다. 이 땅의 근대 정신사에 종로서적만큼 큰 역할을 한 문화적 기구가 어디 있는가. 종로서적이 우리 출판문화사는 물론이고 우리들의 삶에 미친 영향은 얼마나 대단한가. 물질적 성장을 넘어서는 우리 모두의 정신사에!



지난 시절의 그 규모가 아니라도 좋다. 우리 사회에 지금 절실하게 필요한 인문정신을 공급하는 품격 있는 서점이면 족할 것이다.



종로는 종로서적이 있어야 종로다. 종로서적이 부활하는 종로의 그 거리에서, 책들이 손짓하는 종로서적의 그 바닥에서, 책과 문화를 애호하는 우리 모두가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아름다운 우리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종로서적은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이자 대한민국의 문화적 긍지가 아닌가.



 



김언호한길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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