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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던 책·TV·기타 … 3000개 정도 버렸더니 놀라운 변화 생기더군요

중앙선데이 2016.01.31 00:30 464호 24면 지면보기
나는 자타 공인 맥시멀리스트다. 물건에 집착할 뿐더러 절대 버리지 못한다. 책상에는 읽고 있는 책, 읽어야 하는 책, 언젠가는 읽으리라고 마음먹은 책들이 층층이 쌓여있다. 가방 역시 마찬가지다. 영수증과 명함으로 가득 찬 지갑과 각종 필기구 및 다이어리, 파우더부터 스킨 로션까지 속이 꽉 찬 파우치로 남다른 무게감을 자랑한다. 심지어 아직 정리하지 못한 사진과 음성 파일로 휴대폰마저 늘 ‘저장 공간이 부족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온다. 갑갑한들 어쩌겠나. 하나라도 없으면 불안한 것을. 마치 오늘 꼭 쓸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말이다.



한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어떤 책 한 권을 읽은 뒤, 물건을 볼 때마다 질문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물건이 나한테 꼭 필요할까? 과연 이 물건이 날 설레게 하는가? 이 물건이 없어진다 한들 내가 다시 돈 주고 이 물건을 사게 될까? 등등. 비록 아직까지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손만 덜덜 떨고 있지만,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물건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작가 사사키 후미오

최근 블로그에 ‘버리기 일기’를 기록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안 쓰는 물건 나눔에 나서는 이들이 늘어나는 걸 보면, 이 책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비즈니스북스) 후유증을 앓게 된 사람이 비단 나 하나만은 아닌 것 같다. 심지어 버리지 못하기로 유명한 직군인 편집자가 미니멀리스트로 거듭난 이야기라니, 왠지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마저 주지 않는가. 자기계발 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달리고 있는 작가 사사키 후미오(佐?木典士ㆍ37)를 e메일로 만났다.



 



미니멀리스트 만났을 때 차원이 다른 충격 받아사실 저자 역시 단순하게 살기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와세다대 졸업 후 여러 출판사를 거쳐 와니북스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던 그는 메모지 한 장도 쉽게 버리지 못했다. 멋진 앤티크 카메라를 구입해 그야말로 ‘장식’해 놓고, 초보자용 기타와 앰프까지 각종 취미를 섭렵하며 자신이 가진 물건이야말로 자신의 가치이고 행복으로 이어주는 매개체라고 믿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미니멀리스트로 변모한 계기에 대해 “특별한 사건이나 이유는 없었다”며 다소 심심한 답변을 내놨다. 그저 “저는 제 인생이 줄곧 정체돼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미니멀리스트를 만났을 때 지금까지의 인생과는 차원이 다른 충격을 받았고 그러한 삶에 매료된 것 같다”고 했다.



10년 만의 이사를 준비하면서, 그는 서서히 물건을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던 시절 모아뒀던 필름부터 책장과 책은 물론 컴포넌트 스테레오와 CD를 전부 버렸다. 42인치 TV나 홈시어터 등은 20㎡(약 6평) 짜리 원룸에는 불필요한 물건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2014년부터 관련 기록을 남기고자 시작한 홈페이지 ‘미니멀 앤 이즘 - 레스 이즈 퓨쳐(Minimal & ism - less is futureㆍminimalism.jp)’가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단순한 삶은 한층 탄력을 받았다.



“얼마나 버렸느냐”는 질문에 그는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버리면서 찍어둔 사진이 3000장이 넘는다”며 “일본인의 평균 소유물이 3000~6000개”라고 덧붙였다. 가장 버리기 어려웠던 물건으로는 자신의 가치가 되어버린 책, 취미이자 여자친구와 함께하는 즐거움이었던 TV, 모으는 데 막대한 시간을 들였던 ‘야동’을 꼽으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건은 근본부터 잘라내야 쉽게 버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즉 TV를 처분해야 여기에 연결된 홈시어터, 플레이스테이션3, 녹화용 HDD는 물론 기기를 연결하는 케이블이나 어댑터도 버릴 수 있단 얘기다.



조금씩 버리는 습관 쌓아야 … 아쉬움은 사진으로 달래덕분에 30분 만에 이사를 끝마친 그는 물건을 버린 뒤 자신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고 고백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밝고 따사로운 햇살에 절로 눈을 뜬다는 점. 물건이 없어진 덕에 방이 한층 밝아진 덕분이다. TV를 보는 대신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치울 물건이 없으니 청소도 매일 손쉽게 하게 되고 덩달아 스트레칭을 하니 체중도 10kg은 줄었단다.



사사키는 “우리가 소유한 물건의 상당 부분은 본래 기능이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내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물건들을 짊어지고 사느라 그 물건들을 위한 방값을 지불하고 더 갖지 못해 안달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는 것. 도구가 아닌 주인 행세를 하는 물건에서 벗어나야 한단 얘기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이제 버리기는 한결 쉬워진다. 그는 책에서 인생이 가벼워지는 비움의 기술 55가지와 더 버리고 싶은 이들을 위한 15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기술 3가지만 꼽아달라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버릴까 말까 다섯 번 망설였다면 버리세요. 고민의 대상이 됐다는 것 자체가 버릴 수 있다는 증거예요. 두 번째로, 버리는 것도 기술입니다. 버리는 일은 부모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아니에요. 조금씩 버리는 습관이 쌓여가면 어느새 잘 버릴 수 있게 되죠. 마지막으로, 영원히 오지 않을 ‘언젠가’란 마음을 버리세요. 언젠가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모든 걸 보관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언젠가가 아닌 지금 필요한지 아닌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게 중요합니다.”



보다 실질적인 팁은 버리기 전 사진으로 남기기다. 유치원 때부터 모아둔 편지나 학창시절 찍은 졸업앨범 같은 것은 한 순간에 없애버리기가 특별히 어려웠던 터. “물건을 줄이기 위해 사진도, 편지도, 책도 전부 디지털화했어요. 일종의 의식 같은 셈이죠. 하지만 그것을 보존하고 있는 하드디스크도 언젠가는 망가지고 데이터도 사라지겠죠. 그 사이 데이터로 변환된 물건에 대한 애착도 엷어질 테고요. 추억도 형태나 데이터로 남기는 것보다 기억 속에 남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진 났을 때 물건에 맞아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사라져”그렇다면 때아닌 미니멀리즘 열풍의 원인은 뭘까. 사사키가 꼽은 이유는 ▶넘쳐나는 정보와 물건 ▶기술과 서비스의 발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등 세 가지다. 그는 도쿄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큰 피해를 입은 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역시 단순한 라이프스타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만화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북앳북스)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많은 사람들이 집이 무너지는 일을 겪었고 쌓여있던 물건들이 흉기로 돌변해 가족을 공격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때 일로 일본인들의 무의식엔 확실하게 각인이 된 것 같아요. 일본에 사는 한 앞으로도 지진은 계속 일어날 거라고. 그렇다면 물건을 줄이고 몸을 가볍게 해두는 편이 좋겠죠. 실제로 2014년 5월 도쿄에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큰 안도감을 느꼈어요.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물건에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은 사라진 거죠.”



사사키는 한국에 대해서도 비슷한 진단을 내놨다. 매년 굶어 죽는 사람은 수십 명에 불과하지만 자살하는 사람은 수만 명에 달하는 두 나라의 문제점은 경제적 이유가 아닌 비교하기 좋아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있다는 얘기다.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뿐만 아니라 물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물질에서 벗어나면 남과 비교할 기회가 적어지고, 자연스레 타인이 평가하는 자신의 가치가 아니라 자기가 믿는 가치관에 따라 살아갈 수 있게 되거든요. 그런 점에서 제 책이 공감을 얻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경쟁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버리는 행위 자체에 집착하며 물건을 몇 개나 가지고 있는지 세어보는 행위는 무의미하단 얘기다. “‘최소한’이란 단어는 상황이나 목적에 따라 충분히 변할 수 있습니다. 애인이 생기거나 가족이 생기면 당연히 물건은 늘어나겠죠. 저는 이미 95%의 물건을 버렸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물건을 늘려갈 겁니다. 최근엔 공부에 집중하고 싶어서 책상과 의자를 사버렸는걸요. 일단 버려보고 필요하면 언제든 다시 취하면 됩니다. 그럼 그 물건은 더욱 소중하게 아끼며 사용하게 될 테죠.”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사사키 후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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