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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의 품격 컬렉션이 만든다

중앙선데이 2016.01.31 00:18 464호 32면 지면보기

저자: 이종선 출판사: 김영사 가격: 1만8000원



재벌가가 운영하는 미술관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 재벌의 수집벽은 순수한 개인적 열정으로 이해받지 못하고 시끄러운 구설수에 휩싸이는 일도 다반사다. 하지만 박물관 분야에서 삼성이 우리 문화발전에 선구적 역할을 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국내에 박물관의 개념조차 희미하던 척박한 시절, 온갖 시샘과 오해 속에서 1982년 개관한 호암미술관은 기업 박물관 운영의 신호탄이 됐고, 이후 선재미술관·워커힐미술관·성곡미술관·금호미술관 등이 경쟁적으로 세워져 국내 미술계를 떠받치고 있다.


『리 컬렉션』

『리 컬렉션』은 1976년부터 95년까지 20여 년간 삼성문화재단에 몸담았던 이종선 전 호암미술관 부관장이 자신이 주도했던 삼성가 명품 컬렉션에 얽힌 흥미로운 뒷얘기를 풀어낸 책이다. 호암 이병철이 왜 수집을 시작했나부터 시작해 셋째 아들 이건희가 일찌감치 독자 컬렉션을 꾸린 의미, 각자의 컬렉션에 반영된 부자(父子)의 개인적 취향, 각각의 유물들을 입수한 파란만장 무용담과 그 문화적 가치까지 빼곡히 담았다. 마치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암미술관 소장 문화재들에 관한 알찬 도슨트 해설을 듣는 느낌이다.



삼성가 컬렉션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리움과 호암미술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국보급 문화재들은 어쩌면 뿔뿔이 흩어져 온전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온 나라가 먹고살기 바쁘던 70~80년대 하릴없이 골동상을 전전하던 우리 문화유산들이 명품으로 거듭나 대한민국의 역사·문화적 위상을 상징하게 된 데는 호암 부자의 수집벽이 크게 기여했다. 현재 리움과 호암미술관에 소장된 152건의 국보급 문화재는 개인의 수집으로는 세계에서도 이례적인 기록이다. 호림박물관의 46건, 간송미술관의 23건이라는 수치와 비교하면 그 규모의 정도를 알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컬렉션에 대한 비교도 흥미롭다. 호암은 국보 제138호 가야금관과 국보 제133호 청자진사주전자를 특히 사랑했는데, 매일 아침 금관의 소재를 확인하며 일과를 시작했고, 30㎜ 방탄유리 쇼케이스에 청자진사주전자를 고이 모신 것은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경비를 넘어서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호암 특유의 결단력은 고려불화 환수에도 한몫했다. 고려불화를 한국에 절대 팔지 않으려는 일본측 방해공작에 맞서 미국에 구입 비선을 만든 것. 결국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비밀작전으로 ‘아미타삼존도’와 ‘지장도’를 역수입할 수 있었고,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추방된 고려불화에 대한 이해와 정보가 없던 국내에도 그 가치를 새삼 알리게 됐다.



싸고 좋은 물건을 찾던 호암에 비해 이건희는 명품주의였다. ‘처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문화재 수집에도 적용됐다. 그때 집중적으로 시작된 ‘국보 100점 수집 프로젝트’로 현재의 삼성 국보 컬렉션이 완성됐고, 렘 콜하스,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등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스타 건축가를 동원해 건축한 ‘명품 박물관’ 리움에 모셔 우리 문화재의 품격을 더했다.



이건희 컬렉션의 백미는 국보 제309호 백자달항아리와 국보 제118호 고구려반가상이다. 팔자 센 미녀처럼 임자를 못찾고 골동상을 전전하던 백자달항아리가 리움에 들어오자 국보 지정을 받고 조선의 미를 대표하게 됐다. 평양 골동상 출신 김동현이 일제로부터 지켜낸 고구려반가상을 평생 꽁꽁 숨겨두다 말년에 삼성에 양도해 빛을 보게 된 사연도 기막히다.



1992년 중국과 수교 직전 저자가 주도한 호암미술관의 ‘명청회화 특별전’의 성공은 우리 문화외교에 한 획을 그었다 할 만하다. 국교도 수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금성 내 북경고궁박물관의 주요 소장품을 대거 들여온 것이다. 공산 중국에 대한 관심과 함께 전시는 대성황을 이뤘고, 곧 중국과의 수교 성사로 이어졌다. 때론 문화가 정치와 경제를 이끈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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