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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홍석재의 심야덕질] 스물다섯 살 이상은 아무도 믿지 마

중앙일보 2016.01.31 00:01
"미국 영어덜트 소설은 현실의 불합리와 모순에 대한 과격한 상상을 끌어다 충돌시킨다. 순수한 청소년 주인공들은 거대한 시스템에 압도되거나 순응하지 않고 돌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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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이 마모루의 걸작 애니메이션 ‘패트레이버2’(1993)는 조작된 테러 때문에 일본 경찰과 자위대 사이에 벌어진 정치적 갈등을 흥미롭게 묘사한다. 극 중에선 자위대가 도쿄 시내 한복판으로 출동하고, 탱크가 도로 위를 점거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소설 『리틀 브라더』와 애니메이션 '패트레이버2'


‘패트레이버2’가 전한 충격은 도심의 일상 풍경에 단순히 탱크가 들어섰기 때문만은 아니다. 국가적 위기라는 전제를 붙이면, 우리가 딛고 살아가는 세계가 순식간에 붕괴되는 상황과 그것마저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도시인을 절묘하게 잡아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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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 닥터로우의 소설 『리틀 브라더』를 읽으며 ‘패트레이버2’가 계속 떠올랐다. 이 소설의 배경은 9·11 사태 규모의 테러가 발생한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 브릿지와 지하철이 폭파당하면서 샌프란시스코는 완전히 달라진다.

국토안보부의 관리 하에 들어가더니, 심지어 학교 내부에도 CCTV가 설치되고, 정부는 모든 사람들에게 카드를 사용하도록 종용한다.

교통카드 사용 내역을 추적해 비정상적인 이동 기록을 보인 사람은 경찰이 불시에 검문하고, 카메라는 보행자들을 인식해 작동한다.

테러리스트를 잡는다는 명목 하에 개인의 사생활을 침범하고,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장면이 심각하게 펼쳐진다. 도시가 순식간에 자유를 잃어가는 그 모습이 섬뜩했다. 사실상 계엄령이 내려진 것과 유사한 상태인 것이다. 다른 나라가 아닌 미국에서 벌어졌다는 게 묘하게 사실적으로 다가왔고, 불편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문득 ‘광주’가 떠올랐다. 온 나라가 멀쩡히 잘 굴러가지만 한 도시만 완전히 분리되어 관리된다. 평범한 시민들을 의심하고, 이들을 본보기 삼아 국가의 통제력을 강화하고, 공포심을 일으키려는 발상과 흐름 자체가 닮았다. 사실 30여 년 전의 광주뿐만 아니라 한국의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리틀 브라더』에는 몇몇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밴드가 불법 공연을 하기위해 공원에 몰려든다. 주최측 셈으로 2만 명이, 경찰 추산으론 5000명이 모인 그 공간에 스물다섯 살 이상인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 젊고 어리다. 그들은 노래하고 외친다.
 

스물다섯 살 이상은 아무도 믿지 마.” “이건 시X 우리 도시야! 이건 시X 우리나라야! 우리가 자유로운 한, 결코 테러리스트에게 뺏기지 않아. 우리가 자유롭지 못할 때 테러리스트가 이기는 거야! 되찾자! 되찾자!”


허공에 뜬 경찰 헬기에서 즉시 해산하라는 목소리가 들리며 하얀 연무를 뿌린다. 최루액이다.

『리틀 브라더』는 미국에서 2008년에 출간됐으며, 장르는 근미래 SF에 속한다. 그러니까 미국 작가가 상상한 근미래 SF가 지금, 여기 한국의 현재와 비슷한 셈이다.

좋은 SF는 언제나 지금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의 지표를 흔든다. 이 소설은 미국에서 영어덜트(Young Adult) 장르로 분류된다. 미국 영어덜트 소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정말이지 끝내주는 SF가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의 불합리와 모순에 대한 과격한 상상을 끌어다 충돌시키는 작업을 해내고 있다. 『헝거게임』 시리즈부터 『리틀 브라더』까지, 이들은 바탕에 공동체에 대한 걱정과 사유를 깔고 있다. 순수한 청소년 주인공들은 거대한 시스템에 압도되거나 순응하지 않고 돌파한다.

‘패트레이버2’와 이 소설의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냉소적이고 자의식 강한 중년의 시각으로 풀어낸 ‘패트레이버2’와 달리, 『리틀 브라더』의 주인공 마커스는 혈기왕성한 10대 청소년이다. 테러 발생 당시, 우연히 현장 근처에 있었다는 이유로 마커스와 친구들은 국토안보부에 잡혀간다. 마커스는 휴대폰 비밀번호와 e-메일 암호를 넘기라는 정부 요원의 말을 거부한다. 그는 마치 관타나모 수용소를 연상케 하는 처우를 받는다. 인간으로서 존엄과 에고를 완전히 상실한 채 복종하자, 마커스는 겨우 풀려난다. 국가로부터 기본 인권을 강탈당한 10대 아이는 처음으로 냉혹한 현실을 마주한다.

마커스는 국가가 우리를, 나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사실, 국가는 우리 편이 아니라 국가 자신의 편이라는 사실을 직시한다. 국가가 국가 자신의 편을 들 때 얼마나 얼토당토 않는 폭력이 발생하는지 알게된 10대는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고 저항한다. 소리치고 사람들을 깨우치려 한다. ‘먹고사니즘’에 붙들린 어른과 달리, 아이들은 언제나 가장 빨리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부당한지에 대해 반응하고 행동한다. 그러니 책에서 반복해서 쓰이는 구호는 틀리지 않았다. 부끄럽다.
 

스물다섯 살 이상은 아무도 믿지마.”


글=홍석재 영화감독. ‘소셜포비아’(2015) 연출. 타고나길 심심한 인생인지라 덕질로 한풀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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