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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스티브 잡스'의 작가 아론 소킨이 창의적인 전기영화 쓰는법

중앙일보 2016.01.31 00:01
한 사람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속속들이 아는 체하는 것은 때로 얼마나 오만한가. 맥북과 아이폰으로 유명한 기업 애플의 공동 창립자이자 CEO를 지낸 스티브 잡스(1955~2011)의 전기영화 ‘스티브 잡스’(1월 21일 개봉, 대니 보일 감독)는 그 오만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잡스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꿨고, 그의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인간적 고민이 무엇인지 날카롭게 짚어낸다. 그 공의 팔 할은 시나리오 작가 아론 소킨(55)의 몫이다. 연극·영화·TV 시리즈 등 다양한 분야의 각본을 쓰는 그는, 연극과 영화로 제작된 ‘어 퓨 굿맨’(영화 1992, 롭 라이너 감독), 영화 ‘대통령의 연인’(1995, 롭 라이너 감독), 정치 드라마 ‘웨스트 윙’(1999~2006, NBC) 등으로 할리우드 최고의 작가로 떠올랐다. 그 이름값은 최근 선보인 전기영화 세 편, ‘소셜 네트워크’(2010, 데이비드 핀처 감독) ‘머니볼’(2011, 베넷 밀러 감독) ‘스티브 잡스’에서 톡톡히 드러난다. 세 영화에서 소킨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요약하고, 그 의미를 어디에서 찾았는지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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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잡스'의 작가 아론 소킨이 창의적인 전기영화 쓰는 법

1. 삶 전체를 그리지 말고, 가장 흥미로운 순간에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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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 소킨

‘스티브 잡스’의 주목할 만한 점은 잡스(마이클 패스벤더)의 삶을 단 세 순간으로 요약해 보여주는 형식에 있다. 이 영화는 잡스가 1984년 매킨토시, 1988년 넥스트, 1998년 아이맥 컴퓨터의 출시 발표회 무대에 서기 전, 각 40분의 시간을 실시간으로 펼쳐 보인다. 잡스는 평생 이 세 컴퓨터 말고도 혁신적인 제품을 여럿 발표했다. 그중에서도 이 영화가 세 제품의 출시 발표회를 잡스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분기점으로 삼은 이유는 명확하다. 이 제품이야말로 잡스의 창의성, 그가 내다본 문화의 미래, 더불어 개인적인 야망을 살필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순간이기 때문이다.

매킨토시는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대중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그래픽과 마우스로 작동할 수 있게 만든 컴퓨터다. 극 중 잡스는 발표회에서 매킨토시가 청중에게 반드시 “안녕”이라 말을 걸어 기존 컴퓨터와 다른 친근함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다음은 넥스트. 이는 잡스가 1985년 매킨토시의 판매 부진과 당시 애플의 CEO였던 존 스컬리(제프 다니엘스)와의 갈등으로 애플을 떠난 뒤, 컴퓨터 기업 넥스트를 설립해 처음 발표한 제품이다. 잡스에게 이는, 자신이 창립했으나 쫓겨나야 했던 애플에 대한 복수나 다름없었다. 넥스트 컴퓨터 자체의 시장성은 없었지만, 당시 애플이 이 컴퓨터에 쓰이는 객체 지향형 운영 체제(넥스트스텝)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간파한 잡스. 그의 예상대로 애플은 1997년 넥스트 사를 인수하고 잡스는 애플의 CEO가 된다.

영화의 후반을 장식하는 아이맥 출시 발표회는 이후 잡스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애플의 여러 제품을 통해 제시했던 비전의 출발점이다. 아이맥을 시작으로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애플의 제품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사람들의 교류를 확대하고,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도록 이끌었다. 또한 제품의 기능보다 브랜드 이미지를 파는 잡스의 마케팅 전략은 애플을 전 세계 자산 가치 1등 기업으로 키워나갔다.

SNS 웹사이트 페이스북의 창립자인 마크 저커버그(제시 아이젠버그)를 주인공으로 한 ‘소셜 네트워크’, 혁신적인 방식으로 선수들을 기용해 20연승의 대기록을 세운 메이저리그 야구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브래드 피트)의 이야기를 그린 ‘머니볼’ 역시 마찬가지다. 소킨은 두 영화에서 주인공의 가장 눈부신 업적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풀어간다.

‘소셜 네트워크’는 2003년 하버드대 학생이었던 저커버그가 여자친구 에리카(루니 마라)에게 차인 것에 대한 화풀이로 ‘페이스매쉬(여학생들의 외모를 비교해 승자를 가리는 웹사이트)’를 만든 데서부터 시작한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매쉬’의 폭발적인 영향력을 확인하고, 여기서 페이스북의 영감을 얻는다. 영화는 페이스북의 가치가 150억 달러(약 18조원)로 뛰어오른 2007년 즈음에서 끝맺는다. 페이스북 설립에 얽힌 왈도 세브린(앤드류 가필드)과 윈클보스 형제(아미 해머)가 저커버그를 상대로 소송을 벌여, 증언 녹취 절차를 거치는 순간이다. ‘소셜 네트워크’는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만들어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나가는 이야기 사이사이 증언 녹취 장면을 끼워 넣는다.

‘머니볼’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20연승의 기록을 세운 2002년 시즌에 집중한다. 2002년 시즌을 준비하는 빈은 경제학도 출신의 피터 브랜드(요나 힐)의 아이디어, 즉 ‘머니볼’ 이론을 받아들여 적은 돈으로 새로운 팀을 구성해, 온갖 반대에도 그 전략을 끝까지 밀고나간다. 머니볼 이론이란, 몇몇 스타 선수에 의존하는 대신 통계 정보에 따라 출루율이 높은 선수 위주로 팀을 구성하는, 저비용 고효율의 야구단 운영 기법을 말한다. 여기서 젊은 시절 야구 선수였던 빈이 스카우터가 된 이야기가 극 중간 짧은 회상 장면으로 등장한다. ‘스티브 잡스’ 역시 입양아였던 잡스의 어린 시절이나,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세스 로건)이 차고에서 애플을 막 시작했을 때의 모습, 1985년 잡스와 스컬리의 갈등을 극 사이사이 짧게 스케치하는 방식을 택한다.


2. 인간관계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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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 영화 `스티브 잡스` `머니볼` `소셜 네트워크`

‘스티브 잡스’가 신제품 발표회 무대가 아니라 그 직전의 40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소킨은 주인공이 홀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보다, 그 영광을 누리기까지 그가 어떤 사람들과 어떤 갈등을 빚으며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세 발표회 시작 직전 40분 동안 잡스가 매번 마케팅 이사 조안나 호프먼(케이트 윈슬릿), 워즈니악, 스컬리, 매킨토시 개발팀의 일원이던 앤디 허츠펠드(마이클 스털바그), 딸 리사(매켄지 모스, 리플리 소보, 펄라 하니 자딘) 등 다섯 인물을 만나도록 배치한다.

영화에서 각 인물들은 잡스의 각기 다른 면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는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상황과 사람들을 통제하려 들었다. 그 방식은 때로 굉장히 비인간적이고 잔인했다. 1984년 장면에서 잡스가 허츠펠드에게 매킨토시가 ‘안녕’을 말할 수 있게 당장 고쳐 놓지 않으면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겠다고 협박하는 장면이 그 좋은 예다. 잡스와 함께 애플을 설립한 워즈니악은 그런 잡스에게 그의 성공이 다른 사람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했음을 일깨운다. 동시에 그는 각기 다른 사람들의 재능을 한데 모아 새로운 문화적 혁신을 이루어내는 ‘지휘자’로서 잡스의 남다른 능력을 부각시킨다.

한때 잡스가 아버지처럼 따랐던 스컬리와의 갈등은 잡스 생애 가장 큰 상처였다. 딸 리사와의 관계는 아버지로서의 잡스를 드러낸다. 호프먼은 잡스를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인물로, 결정적 순간 잡스에게 인간성을 일깨우고 그를 바로잡는다. 잡스가 다섯 인물과 맺는 관계는 1984년, 1988년, 1998년 세 시점에 따라 변화한다.

그리하여 ‘스티브 잡스’에는 영화 내내 소킨의 장기인, 운율 넘치는 긴 따발총 대화가 이어진다. 미국의 연예 뉴스 웹사이트인 ‘더랩(The Wrap)’은 이를 ‘토크 오페라’라 표현했고, 호프먼을 연기한 케이트 윈슬릿은 ‘대사의 압력솥’이라 일컬었다. 놀라운 것은, 워즈니악 역을 맡은 세스 로건의 말처럼 “그 많은 대사 중 일차적 설명이라고 할 만한 것은 거의 없고, 잡스의 갈등과 시련을 곧바로 맞닥뜨리게 하는 대화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3. 업적 대신 인간적인 고민에 주목하라
바로 그 인간적인 갈등이 바로 소킨의 전기영화가 그리는 드라마의 핵심이다. 소킨의 전기영화는 그 인물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삶에서 우리 모두가 곰곰이 생각해 볼만 한 질문을 뽑아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소킨이 ‘스티브 잡스’를 “일반적인 전기영화가 아니라 ‘인상파적 초상화’”라 말한 건 그래서다.

‘스티브 잡스’는 말한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사람들을 못살게 굴어서라도 불가능을 실현하려 했던 점이 잡스를 창의적인 선구자로 만들었지만, 그것이 곧 그의 삶과 인간관계를 망가뜨렸다고. 이는 우리에게 극 중 워즈니악의 대사처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과연 사람은 천재적인 동시에 착할 수 있을까. 영화는 결말에 이르러 아버지 잡스의 변화를 통해 그 질문에 대한 따뜻한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소셜 네트워크’는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만든 건, 천재인 그가 더 특별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그가 갈구했던 인정이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었음은 저커버그가 에리카의 페이스북에 친구 신청을 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확실해진다. ‘머니볼’에서 빈이 사람들의 만류에도 머니볼 전략을 고수한 건 메이저리그 역사에 대한 도전이자, 스타 선수가 되려다 실패의 쓴잔을 들이켜야 했던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한 설욕이었다. 이것이 소킨이 잡스와 저커버그와 빈을 특별한 천재가 아니라 우리와 다름없는 고민을 지닌 사람으로 그려내는 방식이다.

소킨은 ‘스티브 잡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잡스는 굉장히 복잡하고 아주 똑똑한 남자였다. 커다란 결함이 있었지만 꿈을 크게 꾸고,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이다. 난 관객이 이 영화를 보고 잡스를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느끼길 바란다. 천재성과 친절함이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훨씬 더 행복했을 사람으로.”


글=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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