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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피가 증거" 패터슨 20년형 선고에 19년 걸렸다

중앙일보 2016.01.30 01:49 종합 6면 지면보기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법정에 들어섰던 미국인 아서 패터슨(36)은 두 시간 뒤 고개를 떨궜다.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기소된 그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지는 순간이었다.

법원 “근접해서 직접 찌른 흔적”
체격은 진범 잣대 안 된다 판단
“에드워드 리도 범행 부추긴 공범”
이미 무죄 확정돼 처벌은 못해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는 29일 패터슨에게 징역 20년형을 선고했다. 사건 발생 18년9개월 만의 일이다.

재판장인 심규홍 부장판사는 “패터슨은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고도 1997년부터 지금까지 공범인 에드워드 리(36)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범행을 반성하지 않고 있다”며 “당시 17세였던 패터슨에게 선고할 수 있는 최대 형량은 징역 20년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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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범행을 충동했던 리도 공범이다. 하지만 이미 무죄가 확정돼 처벌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97년 4월 3일 지금은 사라진 서울 이태원 ‘버거킹’ 햄버거 가게의 화장실에서 한국인 조중필(당시 22세, 홍익대 휴학생)씨가 여러 차례 흉기에 찔려 살해됐다. 조씨와 함께 범행 현장에 있었던 패터슨과 리는 서로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 뒤 살인 혐의로 기소된 리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흉기 소지 혐의로 구속됐던 패터슨은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미국으로 간 패터슨은 검찰의 재수사 끝에 지난해 10월 국내로 강제 인도됐다.

법정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이번에도 서로 “네가 범인”이라고 맞섰다. 하지만 결론은 180도 달라졌다. 패터슨의 양손과 상·하의 등을 적셨던 조씨의 피가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했다.

재판부는 “가해자가 근접해 칼로 찔러 목 양쪽과 가슴 부분에서 상당히 많은 피가 솟았고 공격 횟수도 아홉 번에 달했다. 가해자의 옷과 몸에 피가 많이 묻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사건 당시 리의 옷에는 적은 피만 흩뿌려져 있었다.

피가 묻게 된 경위에 대한 리와 패터슨의 진술에 대해 재판부는 “리는 비교적 일관되지만 패터슨의 말은 번복이 잦고 객관적 증거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과거의 1·2심에서 재판부가 패터슨의 진술에 무게를 뒀던 것과는 반대였다.

리의 큰 덩치(1m80㎝, 105㎏)도 이번엔 패터슨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부검의(서울대 이윤성 교수)가 낸 “자상의 형태로 볼 때 조씨(1m76㎝)보다 큰 덩치의 사람이고 방어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볼 때 힘이 센 사람”이라는 의견은 과거 재판에서 패터슨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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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심 부장판사는 “체격만으로 누가 가해자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소변보는 자세에 따라 키는 가변적이고, 취한 상태에서 가방을 메고 있던 조씨의 중심이 낮아졌을 수 있으며 칼이 날카로워 큰 힘이 들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에서였다.

리에 대해 재판부는 “리는 패터슨이 피해자를 칼로 찔러 사망케 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는 패터슨을 부추긴 뒤 망을 보거나 피해자의 반항을 제압하기 위해 따라갔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재판 뒤 조씨의 어머니 이복수(74)씨는 “범인을 못 잡아 중필이한테 늘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왔다. 이제 마음이 후련하다”고 말했다. 패터슨의 변호를 맡은 오병주 변호사는 “칼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갔던 리가 범인이다. 항소해 패터슨의 누명을 벗기겠다”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변호사, 홍상지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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