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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자발적 가난’을 택한 사람들

중앙일보 2016.01.30 01:22 종합 14면 지면보기
찌뿌둥한 몸으로 출근해 녹초가 되어 퇴근한다. 주말엔 밀린 잠을 자고 미뤄둔 집안일을 처리한다.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은 내 통장을 잠시 스쳐 은행으로, 카드회사로 흘러간다.

‘다운시프터’ 자본주의 틈새 찾아 시골로
‘노마드’ 여행이 생활인 양 돌아다녀
‘미니멀리스트’ 물건 버리며 삶의 가치 느껴

내일도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뛰겠지만 오늘보다 행복할 것 같지 않다. 1년 후엔? 10년 후는? 어느 날 생각한다. ‘다른 길이 있을까….’

간혹 있다. 성장과 경쟁을 바퀴 삼아 정신 없이 돌아가던 일상에 브레이크를 건 사람들이다. 돈에 일희일비하는 삶을 멈추고 ‘자발적으로 가난하기’를 택한 이들이다.

도시를, 아파트를 떠나 ‘멀고 불편한’ 삶을 선택한, 의식주의 규모를 줄이는 대신 자유의 규모를 늘리기로 결정한, 채우기 위해 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설명해 두자. ‘자발적 가난’(voluntary poverty)이란 독일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1911~77)가 주창한 삶의 방식이다.

그는 “물질주의와 그것의 소산, 그러니까 자신의 발전에 어떤 한계도 없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현대 경제를 반성적으로 성찰하기 위해 이 개념을 만들었다. 여기서의 가난은 생존을 위협하는 빈곤이 아니다. 소유를 지상과제로 여기는 가치관을 재정립해 정신적·철학적 비움을 추구하자는 의미다.

성장을 멈춘 사회에서 나타나는 삶을 축소하고 정리하는 움직임, ‘라이프 다운사이징’(life downsizing·삶 축소하기), ‘다운시프팅’(downshifting·삶의 속도 늦추기), ‘미니멀리즘’(minimalism) 등이 큰 의미에서 자발적 가난의 범주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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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공터에서 눈싸움을 하고 있는 김재인씨 가족.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빚을 토대로 움직이던 삶에서 ‘도주’하다=올겨울 충남 홍성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 김재인(47)씨와 초등학교 5학년 딸 아침놀, 2학년 아들 가온이는 종종 집 앞 눈 쌓인 공터에서 썰매를 타며 놀았다.

서울에서 홍성으로 이주한 지는 아직 1년이 채 안 됐다. 홍성군 장곡면 20여 채의 단독주택이 모여 있는 단지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에선 아이들과 온전히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죠. 여기 와서야 처음으로 가족이 제대로 서로를 마주한 것 같아요.”

 서울에선 마포의 고층 아파트에 살았다. 김씨는 철학과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아내와 함께 논술학원을 운영했다. 사교육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아이들은 자유롭게 교육하고 싶었다. 그랬더니 정작 아이들이 소외를 당했다.

“놀이터에 애들이 하나도 없어요.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친구를 사귀기도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층간 소음 때문에 집에선 늘 “뛰지 마!”가 울려 퍼졌다. 이렇게는 건강한 한 명의 인간으로 키워내기 어렵겠다 판단했다. 떠나야 할 때였다.

 ‘빚’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삶에 대한 회의도 컸다. 대학과 연구모임 등에서 받는 강의료의 상당 부분을 전세담보대출 갚는 데 써야 했다.

“사람들이 서울을 고집하는 이유는 결국 교육과 직장이잖아요. 좋은 교육을 받아야 좋은 직장을 잡을 수 있을 것 같고, 그러려면 서울에 머물러야 하고. 대출받아 주거와 교육비를 해결할 수밖에 없고. 도시에서의 삶이란 결국 빚을 깔고 앉아야 가능하단 거죠.”

김씨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1925~95)를 전공한 국내에서 손꼽히는 들뢰즈 전문가다. 들뢰즈는 자본주의의 부품, 톱니바퀴로 머물지 말고 자본주의의 ‘틈새’를 찾아내 ‘도주’할 것을 제안했다. 홍성으로의 이주는 자신이 공부한 철학을 실천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했다.

 김씨처럼 도시를 떠나는 사람은 점점 늘고 있다. 통계청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0년 4057호이던 귀농귀촌 가구수는 2014년 4만4586호 8만855명으로 5년 사이 10배가량 증가했다. 30~40대가 이 중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교육과 주거 문제가 이주를 결정하는 가장 큰 이유다.

김씨가 자리 잡은 홍성에도 최근 10년 사이 젊은 귀촌인들이 속속 모여들면서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 가고 있다. 주민들의 모금으로 세워진 홍동밝맑도서관에서는 매일 논어읽기 모임, 사진 강좌 등이 진행된다. 친환경 농산물 장터, 의료생협 등 자급자족 공동체를 만드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서울과 멀어지면서 강의가 줄어 소득도 감소했지만 서울 아파트 전셋값의 3분의 1로 주거비를 해결할 수 있어 김씨의 가족에게는 오히려 여유가 생겼다. 자의반 타의반 외식과 쇼핑을 줄이니 생활비 부담도 자연스레 감소했다. 아이들의 행동과 목소리가 밝아진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김씨는 “강의 때문에 서울로 출퇴근하는 ‘자발적 불편’은 감수해야 하지만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부쩍 길어졌다. 농도 짙은 자유와 약간의 소득을 맞바꾼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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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커피 트럭 ‘풍만이’를 몰고 전국을 유랑하는 바리스타 이담씨.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정주하는 삶에서 움직이는 삶으로. 통장 잔액은 50만원이다=노란색 커피 트럭 ‘풍만이’를 몰고 전국을 떠도는 바리스타 이담(본명 이종진·50)씨.

그는 뿌리내리는 삶을 자발적으로 거절했다. 2013년 여름부터 3년째 1년의 절반 이상을 길 위에 머문다. 정해진 목적지는 없다. 커피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간다.

 서울을 떠난 건 12년 전이다. IT 잡지기자 생활을 10년간 하다 벤처기업을 차렸는데 크게 실패했다. 신변을 정리하고 제주도로 향했다. 제주도 이주 열풍이 시작되기 전 섬에선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어려웠다.

독학으로 커피를 배워 바리스타가 됐다. 핸드드립 커피만 전문으로 하는 ‘바람카페’에서 커피를 만들었는데 몇 년 지나니 떠나고 싶어졌다.

“제주도엔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오잖아요. 손님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여기도 저기도 궁금하고 몸이 근질근질하더라고요. 움직여야 할 시기가 왔구나 생각이 들었죠.”

 여름과 겨울은 제주도에 머물며 커피를 만들고, 봄과 가을엔 트럭을 몰고 나선다.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에 들어가 주민들에게 커피를 대접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가평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에 트럭을 멈춰 커피를 판다.

‘커피 트럭’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초청을 받는 경우도 많아졌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출발을 알리면 우리 마을로 와 달라는 요청이 몰려든다. “길 위에서 참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커피를 좋아한다는 건 대화와 여유를 즐긴다는 의미예요. 이런 사람들은 다른 방식의 삶, 낯선 대상에도 마음이 열려 있죠.”

 돈은 많지 않다. 제주도에서 일하며 모은 돈은 커피 트럭을 구입하고 개조하는 데 썼다. “통장에는 늘 50만원 정도가 있어요. 이게 좀처럼 세 자릿수로 올라가질 않네요.”

그래도 잘 먹고 잘 자고 괜찮게 살아진다. 한 잔에 5000원인 커피를 팔아 기름값과 식비 등을 마련하고, 잠은 트럭 안에서 자거나 그 동네 유명 찜질방을 이용한다. 처음 만난 사람인데 잠자리를 서슴지 않고 내주는 사람도 꽤 많다.

 이담씨와 같은 ‘노마드(nomad·유목민)형 삶’은 요즘 젊은 층에 확산되는 삶의 방식이다. 최악의 취업난 속에서 일자리를 잡기가 어렵고 취직을 해도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안정과 정착 등 과거에 중요했던 가치에 집중해 봐야 뜻대로 되지 않을 걸 이미 알고 있다.

한 곳에 정주하지 않고 흐르듯 인생을 살며, 불안 속에서도 소소한 즐거움을 찾고자 하는 이가 많아졌다. 여행을 생활처럼, 생활을 여행처럼 떠도는 ‘여행생활자’들의 등장이다.

이담씨는 “새롭게 맞닥뜨린 시대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적응하는 과정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성장이 계속되는 산업사회는 종말을 고했는데, 한국의 제도나 가치관은 아직 과거에 머물고 있죠. 노마드형 삶을 선택하는 것은 기질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생존의 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이씨는 “앞으로도 ‘낯선 것과의 조우’라는 지침을 따라 여행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생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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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물건을 그림으로 그려 기록하는 ‘미니멀 리스트’ 강현양씨.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일상에서 실천하는 자발적 가난, 미니멀리즘=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소극적인 방식으로 자발적 가난을 실천한다. 가진 물건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삶을 단순화한다. 남은 것들은 이웃과 나눈다.

소비를 통해 정체성을 확인하던 습관을 바꿔 소유하지 않는 행복을 선택한 사람들, 이른바 ‘미니멀리스트(minimalist)’다. 『미니멀리스트』의 저자 조슈아 필즈 밀번의 표현을 빌리면 “미니멀리즘은 소중한 것에 집중하는 힘이자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는 도구”다.

 강현양(33)씨는 ‘기록하는 미니멀리스트’다. 버리는 물건을 그림으로 그려 자신의 SNS에 올린다. 가장 최근 그린 116번째 그림은 남편의 부러진 안경. 한 장의 종이에 ‘저장’된 물건과는 무조건 작별한다. 기부하거나 중고사이트를 통해 판매한다.

그림으로 남기는 건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다. 강씨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물건을 충분히 살피고, 그리면서 물건과 이별할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했다.

 버리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집에 들어서면 한숨이 먼저 나왔다. “거의 모든 수납공간이 물건으로 꽉 차 있었어요. 물건이 쌓일수록 스트레스도 같이 쌓여 갔어요.”

3년 전 벼룩시장에 판매자로 참여하면서 ‘비우기’의 즐거움에 눈을 뜨고 자신을 되돌아봤다. 그는 “소유해도 행복하지 못한 나를 발견했다. 그 후 버리는 게 내 삶의 프로젝트가 됐다”고 말했다.

 자신만의 ‘비우기 철학’을 정해 실천해 나갔다. ▶한꺼번에 무리해서 버리지 않기 ▶오래되고 불필요한 것부터 처분하기 ▶같은 물건이 여러 개 있는 경우 한두 개만 남기기 ▶오래 안 쓰는데도 당장 못 버리는 것들은 한 상자에 모아뒀다 버리기 등이다.

작은 신혼집에 공간만 차지하던 소파를 처분했고 ‘언젠가는 사용하겠지’하는 마음에 모아둔 빈 용기들도 버렸다. ‘1+1(원 플러스 원)’이나 세일에 혹해 충동구매를 하지 않게 됐다.

 강씨는 “물건을 버릴수록 삶이 보다 가치 있는 것들로 꽉 채워지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짐더미 속에서 물건을 찾느라 헤매는 시간이 줄어들자 집에서의 일상이 즐거워졌다.

쇼핑을 이전보다 훨씬 덜하게 돼 그 시간에 책을 읽는 등 삶에 여유가 생겼다. 나름의 철학이 생기니 친구들의 명품 자랑에도 마음이 요동치지 않게 됐다. 그는 “물건을 사는 것이 버리는 것보다 힘들어졌다. 가지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마음이 사라졌다”고 했다.

올 4월 첫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는 그는 출산 준비에도 ‘미니멀리즘’을 실천 중이다. “정말 필요한 물건만 최소화해서 사거나 중고물품을 구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일본은 20년 전부터 ‘심플 라이프’ 움직임…『반농반X의 삶』 등 베스트셀러로

[S Box]  귀농자들, 나무 때는 ‘화목난로’ 비용 적게 들어 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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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 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란 개념이 있다. 『자발적 가난』을 쓴 독일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가 주창한 것으로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로도 불린다.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해 제작하고 적은 비용으로 유지하는, 환경을 보존하면서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한다.

귀농 인구가 늘어나면서 에너지 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주목받는 적정 기술 중 하나가 바로 ‘화목(火木)난로’다.

『화목난로의 시대』(소나무)라는 책을 쓴 김성원씨 역시 전남 장흥으로 이주해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다 치솟는 난방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난로에 관심을 갖게 된 경우다. 직접 난로의 구조, 열효율 등을 연구해 축열식 벽난로 등으로 난방을 해결하고 있다.

그는 “나무를 때는 화목난로는 인류가 수만 년간 사용해온 난방법이며 에너지 자급 차원에서 큰 장점을 갖고 있다”며 “최근 몇 년 사이 귀농자들을 중심으로 난로를 공부하고 직접 만들어 쓰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고 했다.

열효율이 낮아 환경에 유해한 기존 화목난로의 단점을 개선한 다양한 신형 난로도 등장하고 있다. 난로의 열을 이용해 온수를 생산하거나 난로에 라디에이터를 붙여 바닥난방·열풍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열을 이용하는 난로 등이다.

전국 난로 장인들이 새로운 기술을 접목한 독특한 난로를 선보이는 행사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전북 완주군이 열고 있는 ‘나는 난로다’가 대표적이다. 초반에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지난해 11월 열린 제5회 행사에는 1만6000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글=이영희·임선영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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