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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서 부서 신년회, 파티, 작품 전시…대학생은 공부방으로 애용

중앙일보 2016.01.30 00:51 종합 20면 지면보기
지난 8일 오후 8시쯤 서울 종로구의 한 모텔에 건축 중소업체 M사의 직원들이 속속 모이기 시작했다. 부서 신년회를 하기 위해서다. 13명이 모두 모이자 긴 테이블에 둘러 앉아 통닭·초밥 등 준비한 음식과 술을 풀었다.

휴식·놀이공간으로 변신하는 모텔

한바탕 이야기꽃이 지나고 이들은 뒷정리를 누가 할지를 걸고 치열한 다트게임을 벌였다. 삼삼오오 보드게임을 하거나 미니 당구대에서 당구를 치기도 했다. 밤이 이슥해지자 빌려온 공포영화 DVD를 다같이 보기도 했다. 이 모든 게 56.2㎡(약 17평)의 모텔 방에서 일어난 일이다.

직원 오현준(32)씨는 “시끌벅적한 술집이나 비싼 호텔보다 놀이 시설을 갖춘 모텔이 신년회에 좋을 것 같아 제안했다”며 “세련된 인테리어와 다양한 놀이 도구 때문에 모텔이란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는 4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이서연(27·여)씨는 지난 23일 저녁 고교 동창 단짝 5명과 함께 서울 서초구 모 모텔에서 ‘브라이덜 샤워’를 했다. 브라이덜 샤워는 결혼 전 친한 친구들과 하는 파티다. 모텔 방 안 곳곳에 풍선과 꽃장식을 달고 컵케이크·파스타 등 음식도 차렸다.

이씨는 “모텔에서 브라이덜 샤워를 한다고 하니 시부모님이 은근히 걱정하시는 눈치였지만 내부 사진을 찍어 보내드리니 ‘이런 곳도 있느냐’며 웃으셨다”고 말했다.

 과거 ‘은밀한 만남’의 온상지로 여겨졌던 모텔이 휴식과 문화가 접목된 놀이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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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이 휴식과 문화가 접목된 놀이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인천시 부평구에 위치한 모텔의 파티룸 내부 모습(위)과 당구대·보드게임 등을 갖춘 종로의 한 모텔(아래). [사진 여기어때·종로JR]

파티룸·월풀룸·DVD룸 등 다양한 공간을 갖춘 모텔에 ‘다양한’ 목적으로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최근엔 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 갤러리형 모텔이나 해외에서 수입한 디자인 가구를 들여놓고 판매도 하는 가구 갤러리형 모텔도 등장했다.

숙박 애플리케이션 ‘여기어때’에 따르면 지난해 10~12월 앱 인기 검색어 1위가 파티룸(15.8%)이었고 2위 스파(12.3%), 4위 파티(8.8%), 10위 게임(4.5%) 등을 포함해 휴식·놀이와 관련된 단어가 대다수였다.

또 다른 숙박 앱 ‘야놀자’가 지난해 12월 20~34세 남녀 300명을 대상으로 모텔 대실 이용 형태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모텔을 파티 공간으로 사용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49.4%(중복응답)로 1위를 차지했다.

 덩달아 모텔에 대한 인식도 변하고 있다. 과거 모텔이 은밀하고 숨길 것이 많은 공간이었다면 이젠 당당한 파티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같은 변화를 반영하듯 최근 모텔 예약 애플리케이션 광고가 지상파까지 진출했다. 개그맨 신동엽이나 배우 공승연·송재림 등 톱스타들을 내세운 모텔 예약 광고는 TV 방송뿐 아니라 버스·택시 등 대중교통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문지형 ‘여기어때’ 홍보총괄은 “ 이제 모텔에 대한 광고를 재밌고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됐다”며 “올해에도 옥외광고 등을 더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사이에선 공부방으로도 애용된다. 조용한 곳에서 주변의 방해를 받지 않고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낮에 대실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2만~3만원에 4~6시간 이용할 수 있어 여럿이 함께 쓰면 일반 스터디룸이나 카페보다 나을 수 있다.

대학생 이슬지(23·여)씨는 “시험기간엔 도서관이나 학교 인근 카페에서도 자리를 잡기 힘들어 동성 친구들끼리 모여 모텔을 잡고 공부하곤 한다”며 “소리 내서 책을 읽을 수도 있고 공부하다 지치면 TV를 보며 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신 모텔의 강점은 ‘한 곳에서 여러 활동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 가서 무엇을 할까” 하는 고민 없이 애인이나 친구 등과 식사·휴식·놀이 모두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오붓한 분위기를 보낼 수 있는 맞춤형 장소라는 것도 강점이다. 그러면서도 레지던스나 부티크 호텔에 비해 가격에 부담이 없다.

 전문가들은 젊은 층의 개방적인 성(性) 관념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분석한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에 비해 젊은이들이 혼전 성관계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으면서 모텔을 꺼리지 않는 분위기”라며 “여성들의 성적 자율성이 높아지면서 좋은 모텔을 따지는 분위기가 된 것도 한 측면”이라고 분석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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