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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헬기로 나른 분뇨만 362t…와이파이 터지고 싱크대·수세식 화장실은 “호텔 같네”

중앙일보 2016.01.30 00:48 종합 2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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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문을 연 소백산 제2연화봉 대피소. 주변 풍광이 빼어나고 편의시설도 다양해 탐방객들 사이에서 ‘연화호텔’로 불린다.


지난 18일 해발 1357m인 소백산국립공원 제2 연화봉엔 하얗게 눈이 쌓여 있었다. 능선에서 불어오는 칼바람 때문에 체감온도는 영하 40도까지 떨어졌다. 꼭대기에 있는 ‘연화호텔’에 가려면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현장 속으로] 해발 1357m 소백산 제2연화봉 대피소 가보니


제일 쉽게 갈 수 있는 출발점은 죽령탐방지원센터다. 죽령은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 사이를 오가는 백두대간 고개다. 이곳에서 호텔까진 탐방로를 따라 오르막을 두 시간가량 걸어야 한다.

 연화호텔은 ‘소백산 제2 연화봉 대피소’의 별명이다. 지난해 12월 문을 열었다. 다른 국립공원 대피소와 마찬가지로 침대는 없다. 투숙객은 국내산 낙엽송으로 만들었다는 침상에서 잠을 잔다. 예전 군대 내무반을 연상케 한다. 그래도 침상 위에 폭 80㎝ 간격으로 칸막이가 세워져 있어 다행이다.

연화호텔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운영한다. 이용료는 시기나 객실에 따라 1인당 7000∼1만1000원. 많게는 40명, 적게는 6명이 자는 방이 6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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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전망대를 겸하고 있는 대피소 옆 강우레이더 관측소.


 전국 21개 국립공원 중 대피소는 이곳 소백산까지 포함해 모두 4곳에 마련돼 있다. 지리산과 설악산에 8개와 5개가 있고 덕유산에 2개가 있다. 소백산에도 대피소가 생겼다는 건 1박2일 산행길이 열렸다는 의미다. 대피소는 종주 산행을 하는 이들이 주로 이용한다.

 연화봉 대피소가 탐방객들 사이에서 ‘연화호텔’로 불리는 이유는 뭘까. 우선 대피소 내에 화장실이 있다. 게다가 수세식이다. 지리산 벽소령 대피소를 빼곤 모두 실외 화장실에 재래식이다.

연화호텔 화장실에선 대피소 중 유일하게 물도 나온다. 별도 건물에 마련된 취사장엔 싱크대가 있고 수도꼭지도 달려 있다. 지하수를 파지 않은 다른 대피소에선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연화호텔이 이렇게 꾸며질 수 있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소백산엔 대피소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국립천문대(1974년)와 강우레이더 관측소(2011년) 등 국가기간시설이 들어섰다.

이런 시설에 쓰느라 전기를 끌어오고 지하수도 팠다. 이들 시설에 출입하는 차량이 올라올 수 있는 길도 닦았다. 연화호텔도 원래는 KT에서 쓰던 통신기지였다. 그런데 통신기지가 강우레이더 관측소로 옮겨간 뒤 공단이 인수받아 11억원을 들여 리모델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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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산 낙엽송으로 침상을 꾸민 객실.


 대피소엔 오후 5시부터 입장할 수 있다. 이날도 이 즈음이 되자 탐방객이 한둘씩 찾아들었다. 대피소는 2주 단위로 사전 예약을 받는다. 예약자는 최대 4명까지 예약할 수 있다. 공단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대피소 중 ‘나홀로’ 예약이 44.7%로 가장 많았다. 다음은 2명으로 24.9%였다.

 연화호텔은 최대 125명을 수용할 수 있다. 평일인 이날엔 18명이 예약했다. 대피소는 대체로 금요일과 토요일엔 예약이 꽉 차지만 주중엔 한산하다.

경기도 양평에서 왔다는 주현성(61)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희방사에서 출발해 비로봉을 거쳐 이곳에 왔다. 그는 지리산과 설악산의 대피소를 두루 다녀봤다고 했다.

“소백산에도 여러 번 왔는데 대피소가 생겼다는 소식에 다시 찾았다”고 했다. 내부를 둘러본 그는 “와, 여긴 완전히 호텔급이네, 호텔”이라고 탄성을 질렀다. 대피소 안에서 와이파이가 잡히는 것을 알고 또 놀라워했다.

 전국이 강추위에 꽁꽁 얼었던 이날 대피소 밖 수은주는 영하 20도였다. 소백산 능선은 키 큰 나무가 적고 계곡이 적어 능선을 따라 부는 ‘칼바람’으로 유명하다.

 사위가 캄캄해져 오후 8시가 됐다. 그런데 예약을 한 남성 세 명이 대피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피소엔 긴장감이 돌았다. 때마침 이날 설악산 중청대피소 인근에선 조난당한 탐방객 한 명이 저체온증으로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대피소 상근 근무자가 예약자들에게 수차례 휴대전화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직원 두 명이 구조장비를 갖추고 긴급 출동에 나서기로 했다. 그 순간 예약자들이 대피소에 나타났다. 월동장비를 갖추고 있었지만 안면 가리개마저 하얗게 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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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난사고에 대비해 구조 장비를 갖춰놓은 대피소 사무실.


이들은 “대피소까지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잘못 계산했다. 워낙 추워 전화를 받을 경황도 없었다”고 했다. 대피소 팀장인 박노준 분소장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박 소장은 “강추위에 칼바람까지 불면 조난사고가 날까 봐 아찔할 때가 많다. 예약자가 밤 늦도록 나타나지 않으면 대피소엔 비상이 걸린다”고 말했다.

 규정에 따라 대피소 실내등은 오후 9시에 꺼졌다. 대피소 안은 고요에 휩싸였다. 이따금 코 고는 소리와 창문을 때리는 칼바람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다음날 오전 7시쯤 동이 트기 시작했다. 탐방객들은 옷을 챙겨 입고 해맞이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왔다는 노용하(54)씨는 “산 속 높은 곳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건 대피소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권”라며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연신 스마트폰 카메라를 눌렀다.

 탐방객들은 취사장에서 제각각 아침을 지어먹고는 대피소를 떠났다. 상고대 핀 능선을 따라 누구는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으로 향하고, 또 누구는 죽령 쪽으로 내려갔다.

오전 11시가 되자 대피소는 텅 비었다. 직원들은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탐방객들이 사용한 담요를 정리했다. 청소가 끝나자 대피소 내부엔 낙엽송 향기가 은은히 퍼졌다. 그리고 오후 5시, 해발 1357m의 연화호텔은 또 다른 이용자를 맞기 위해 다시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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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Box] 대부분 대피소 재래식 화장실 … 작년 헬기로 나른 분뇨 362t

국립공원 대피소는 대부분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지리산 벽소령·노고단·피아골, 덕유산 향적봉, 소백산 연화봉 대피소에선 전기도 쓸 수 있다. 인근에 군부대·국가기간시설이 있었거나 곤돌라가 놓이면서 일찌감치 전기가 들어온 곳이다. 나머지 대피소는 자체적으로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댄다.

연화봉과 노고단 두 곳을 제외하곤 자동차길이 닦이지 않아 모든 물자를 헬기로 실어나른다.

규모가 큰 대피소에는 한 해 10여 차례 헬기가 뜬다. 발전기 연료와 매점용 물품, 담요, 대피소 보수에 쓰이는 각종 자재들이 헬기에 실린다. 대피소 매점에선 생수·라면·햇반·티슈·우의·아이젠·부탄가스 등 기본적인 물품만 판다.

문정문 국립공원관리공단 차장은 “국립공원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피소는 가장 기본적인 시설 위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며 “탐방객들도 이런 상황을 이해하기 때문에 별다른 불평은 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화장실도 열악할 수밖에 없다. 연화봉과 벽소령만 수세식이고 나머지는 재래식이다. 재래식 화장실이 있는 대피소는 정기적으로 분뇨를 통에 담아 산 밑으로 나른다. 지난해 헬기에 실린 분뇨는 362t에 달한다.

소백산=글·사진 성시윤 기자 sung.si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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