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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청춘기 상징물에 애착을 느끼는 남자

중앙일보 2016.01.30 00:02 종합 2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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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동네 뒷산을 운동 삼아 오르던 시절, 산에서 노년의 남자들과 자주 마주쳤다. 그들 중에는 소형 음향기기를 소지한 채 주변이 울리도록 음악을 틀어놓고 운동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즐기는 음악은 대체로 당사자가 젊은 시절에 유행했을 법한 것이었다. ‘신라의 달밤’이나 ‘굳세어라 금순아’ 같은 곡. 요즈음 택시를 타면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같은 옛 가요 모음을 듣는 기사들을 목격한다. 그 노래 역시 당사자의 청춘기에 함께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자들은 자주 청춘의 상징들에 집착하면서 그 시절 정서 속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욕구를 보인다.

 퇴행은 대표적인 방어기제이다. 현실의 좌절감이나 스트레스가 클 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지나온 발달 단계로 되돌아가는 현상이다. 동생을 본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잃은 상실감 때문에 다시 오줌을 싸거나 손가락을 빠는 행위를 한다. 성인들도 삶에서 만나는 불안·우울증·죄책감·수치심 등을 감당할 수 없을 때 정서적 퇴행을 경험한다. 1997년 경제위기 시절에는 인터넷을 통해 초등학교 친구를 찾는 일이 유행했다. 어려움 없던 시절로 돌아가 고난의 현실을 잠시 피하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명백히 집단퇴행처럼 보였던 친구 찾기 열풍은 경제가 안정되자 자연스럽게 사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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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행의 또 한 가지 기능은 마음 치유다. 정신분석가를 찾는 내담자는 퇴행적 언어를 사용해 지난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퇴행적 감정과 욕구를 토로한다. 분석가는 퇴행의 부산물들을 인정하고 소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퇴행 없이는 치유도 없다. 성인 중에는 사랑을 퇴행적 행동을 지지해주는 일이라 여겨 서로를 “아가야!”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사랑을 통해 치유와 성장을 경험하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구를 표현하는 셈이다. 방어기제로서의 퇴행은 행복의 시기로, 치유 작업으로서의 퇴행은 고통의 시기로 주로 돌아간다.

 퇴행은 발달 단계에서 정상적인 반응이다. 성장을 위한 다음 단계의 도전을 감당하기 위해서도 잠시 이전 단계로 후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곳에서 미해결된 문제를 해결하고, 정서적 통합을 이룰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위치백 구간을 지나는 기차처럼 전진과 퇴보를 반복하면서 성장한다. 지난 시절을 소환하는 음악, 드라마가 요즈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복고 문화의 유행은 우리가 그 속에서 편안함과 치유를 경험하면서 다음 단계의 발달을 준비 중이라는 뜻이다.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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