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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의 시시각각] 대통령 아들의 굴레

중앙일보 2016.01.30 00:01 종합 3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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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논설위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옥중서신을 통해 셋째 아들 홍걸씨에 대한 부정(父情)을 전했다. “좋은 아버지, 단란한 가정의 아버지가 되고자 마음먹어 왔으나 반대로 무서운 시련과 고통만 안겨준 결과가 됐다. 아버지로서 더 없이 가슴 아프고 미안하다.”(1981년 5월 서신), “곁에서 지켜주지 못하고 오히려 고통만 주고 있으니 정말 가슴이 메인다”고도 했다.

 그는 ‘딸 바보’였던 토머스 모어라는 세례명처럼 아들에 대한 애끓는 심정을 자주 표현했다. 이상적 국가를 꿈꾸었던 『유토피아』의 저자로 유명한 토머스 모어. 그는 481년 전 영국 헨리8세 때 단두대에 목을 내밀면서도 “아빠 때문에 슬퍼 말고 꿋꿋이 견뎌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처형됐다. 사형수 신분으로 옥중생활을 하던 김 전 대통령도 자신 때문에 홍걸씨를 비롯한 삼형제가 험지(險地)에서 뒹굴게 된 것을 애달파 한 것이다.

 이희호 여사와의 사이에 태어난 홍걸씨의 대학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전두환 군부정권 당시 고려대 불문학과에 입학했던 홍걸씨는 도중에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그러고는 20년 만에 세인의 관심을 끌게 된다.

 새천년민주당 권노갑 상임고문의 비서 출신인 최규선씨가 연루된 권력형 비리 사건이 2002년 터지면서다. 김대중 정부 당시 청와대 사직동팀의 후신인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홍걸씨의 비리 의혹이 담긴 보고서를 올렸다. 하지만 청와대 참모들은 셋째 아들에 대한 대통령 내외의 각별한 애정을 고려해 제대로 보고를 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규선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홍걸씨는 최씨와 기업체 등에서 각종 이권청탁 대가로 36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세상 물정을 몰랐던 홍걸씨가 지능적인 사기꾼에게 놀아났다”는 동정 여론이 나왔다.

 홍걸씨를 시작으로 세칭 ‘홍삼 트리오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김대중 정부는 전임 김영삼 정부처럼 식물 정권이 돼 버린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가 임기 마지막 해인 1997년 포토라인에 선 것 처럼 첫째 아들 홍일씨와 둘째 아들 홍업씨도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됐다. 대통령 아들들의 서글픈 현실이다. 이후에도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들들도 검찰 조사를 피할 수 없었다. 금수저가 아닌 아버지의 굴레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인 셈이다.

 홍걸씨는 재판 때 변호인을 통한 최후 진술에서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나이다”고 밝혔다. 성경의 시편 22장에 있는 이 구절은 이희호 여사가 직접 적어 홍걸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신이 주신 시련은 달게 받겠으며, 앞으로 학업을 계속해 사회에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 미국과 한국을 오가던 그가 최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정치적 논란의 장본인이 됐다. 그는 “김대중 정신은 통합과 단결”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60년 야당의 정통 본류는 더불어민주당이라고 했다. 정권교체를 위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를 희생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도전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동교동계 일부 인사들은 그의 정치 참여를 만류했다고 한다. 이희호 여사도 염려의 뜻을 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홍걸씨 개인의 자질이 아니라 대통령 아들을 이용하려는 정치권 인사들의 권모와 술수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14년 전 홍걸씨 수사팀에 있었던 한 법조인은 “그가 당시 조사에서도 자주 눈물을 보여 신문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전했다. 정치를 하기에는 심성이 너무 곱다고도 했다.

 그 또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뭐가 뭔지도 모르고, 소심해서 짚고 넘어갈 것도 대충 넘어가곤 했다”고 말했다. 그가 인용했던 시편에는 “개들이 저를 에워싸고 악당의 무리가 저를 둘러싸 제 손과 발을 묶었다”는 구절도 있다. “사자의 입에서 들소의 뿔에서 저를 살려내소서…”라는 말씀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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