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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마차 정치토크] 與野 초선의원들이 본 19대 국회의 진풍경

온라인 중앙일보 2016.01.3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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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통 치는 문화 이해 안 돼”(도종환) ... “성과 쌓기용 법안 제출 이상해”(이자스민)

법안 제출 건수는 역대 ‘최고’인데, 가결률 30%로 ‘최저’ 수준… 여당이 청와대 지시로 찬·반 정하고 통과시점 결정하는 건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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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월이면 임기 4년의 19대 국회가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를 뒤로한 채 문을 닫는다. 대학으로 따지면 어제 갓 입학한 신입생들이 졸업을 앞둔 것이다. 2013년, 설레는 마음으로 국회에 들어왔던 초선 의원들의 마음에 4년의 의정활동 기간은 어떻게 아로새겨져 있을까? 1월 어느 날 저녁, 여야를 대표해 이자스민(새누리당)·도종환(더불어민주당) 두 국회의원이 삼겹살과 소주잔을 놓고 여의도 정치에 대해 솔직·담백한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을 한 자리에 부를 수 있을까 걱정부터 됐다. 한 사람은 20년 전 한국에 귀화한 방송인이자 영화 <완득이>에 출연해 잘 알려진 필리핀 이주여성. 또 한 사람은 ‘접시꽃 당신’과 ‘흔들리며 피는 꽃’ 등의 시(詩)로 잘 알려진 ‘국민 시인’이다. 30대와 60대, 여성과 남성. 쉽사리 접점을 찾기 어렵고 평소 대화를 나눌 일도 별로 없어 보인다. 유일한 교집합을 내라면 입법의 전당에 함께 들어온 ‘국회 동기’라는 것이 전부다.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39)과 더불어민주당 도종환(62) 의원이 서로 얼굴을 마주했다. 두 사람 모두 19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금배지를 달아 여야를 통틀어 가장 화제가 됐던 인물들로 꼽힌다.

이자스민 의원은 만 18세였던 1995년 한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해 3년 뒤 우리 국적을 취득해 귀화한 이주여성이다. 이후 다문화가정을 돕기 위한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영화 <완득이> 등에 출연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15번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헌정 사상 최초의 외국인 이주여성 의원, 다문화가족 1호 의원 등 그에게 따라붙는 각종 ‘1호’의 타이틀 덕분에 주목도 많이 받았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도종환 의원은 교과서에 여러 편의 시와 산문이 실릴 만큼 청소년들의 사랑을 받는 서정시인이다.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중학교 국어교사로 일하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를 노래한 시 ‘접시꽃 당신’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전교조 활동으로 투옥한 뒤 해직 10년 만에 다시 교편을 잡기도 했다. 19대 국회에서 민주통합당의 러브콜을 받아 비례대표 16번으로 배지를 달았다. 하지만 당선 후 교과서에 실린 도 의원의 시를 빼야 한다는 교육당국의 시도 등으로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국회에서 상임위 한 번 겹치지 않고 세대도, 관심사도, 삶의 궤적도 달랐지만 두 의원은 의정 활동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두 사람은 주제를 바꿀 때마다 속사포가 따로 없을 정도로 맞장구를 쳐주며 우리 정치의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쏟아냈다.

1월 13일 실외 포장마차가 있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고깃집. 인터뷰가 시작될 때쯤에 마침 함박눈이 쏟아졌다. 새해 들어 내린 첫눈이었다. 도종환 의원은 “운치도 있고 삼겹살에 소주가 아주 잘 어울리는 날씨”라며 운을 뗐다. 이자스민 의원은 “(고인이 된) 남편과 포장마차에 자주 갔었는데 분위기가 참 좋다”며 활짝 웃었다. 소주로 잔을 기울이던 두 의원은 소주에 맥주를 섞어 잔을 채우기도 했다. 이자스민 의원은 숟가락으로 술잔을 내리 찍으며 거품을 내는 개인기(?)도 선보였다. “이게 다 한국 와서 다 배운 기술이에요.”(웃음) 인터뷰는 3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죽도록 일해도 죽도록 욕먹는 게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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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두 분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도종환(이하 도): 원래 약주하는 것을 즐깁니다. 주량은 잘 모르겠습니다. 필름은 많이 끊겼어요.(웃음)

이자스민(이하 이): 저도 술은 가리지 않고 잘 마셔요. 술 버릇은 있대요. 같은 말을 무한 반복한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도: 술버릇에는 술을 마시고 끊임없이 강의하는 ‘세미나 형’이 있고, 계속 우는 ‘낙루형’, 흥이 넘치는 ‘음주가무형’, 툭하면 전화 돌리는 ‘전화형’이 있다네요.

이: 오늘 인터뷰로 다들 어느 유형이 될지 기대되네요.(함께 웃음)

사회: 벌써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신 지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국회의원으로서의 삶은 어떠셨나요?

도: 한때 국민의 95%가 좋아하는 시인이었는데, 이제 5%만 좋아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어요.(웃음) 국회의원은 쉽게 말씀드리면 ‘죽도록 일하고 죽도록 욕먹는’ 직업입니다. 많은 민원을 듣고 해결하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녀도 끝까지 욕 먹더군요. 아주 독특한 직업입니다. 요즘은 이런 일을 왜 그렇게 기를 쓰고 하는가 싶어요. 돌아가면서 해야 해요.(웃음)

이: 욕 먹는 거라면 저도 일가견이 있죠. 전 ‘댓글 깡패(댓글이 많이 달린 사람을 지칭하는 속어)’잖아요.(웃음) 이번 국회에도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된) ‘이주아동권리보장 기본법’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댓글이 달렸어요. 국회역사상 법안 중 최다 댓글이라고 해요. 1만5천여 건이 넘었거든요. 아마?(웃음) 최근에 국회 본회의장에서 초콜릿을 먹다가 ‘국회법 위반’이라고 해서 언론에 화제가 됐고요. (도종환: 그 비난은 너무했어) 의정활동 초반에는 학력위조 논란도 있었고요. 입법활동은 아무리 잘해도 절반은 욕먹고, 절반은 칭찬받지 못하잖아요. 물 잔이 반이나 찼는데 “반밖에 안 찼네”라고 부정적으로 보는 것처럼요.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더 저돌적으로 일할 걸 그랬어요. 어차피 욕 먹을 일이라면요.(웃음)

사회: 국회에 들어올 때부터 두 분 다 스타 의원으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죠? 주변의 기대가 컸을 텐데, 스스로 의정생활에 몇 점을 주시겠어요?

도: 점수를 준다면 40점? 원래 정책은 사안별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계층이 있어서 늘 합의와 절충이 필요해요. 수많은 열망이 충돌하는 국회에서 조금이나마 그 간격을 좁혀보려고 왔는데, 교실이든 국가든 크고 작은 사안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어요. 열심히 한다고는 했지만 미흡하고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이: 저도 만족스럽지 않아요. 30~40점? 국회에 들어오기 전에 “여성이 정치권에 들어가면 갈기갈기 찢겨서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2011년 남편과 사별한 뒤로 정치라는 것을 혼자서 감당할 수 있을까 고민이 적지 않았고요. 19대 국회는 저에게 ‘배우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인터뷰할 때마다 늘 같은 질문을 받아왔어요. 항상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아주었죠. 그런데 지난 4년간 동남아 출신 결혼이주민 국회의원을 넘어 더 발전된 질문은 없더라고요. 아직도 영화 <완득이> 얘기부터 물어오시거든요.(웃음) ‘이민사회기본법’, ‘이주아동권리보장법’, ‘외국인 근로자 개정안’ 등 제가 발의한 주요 법안은 아직도 계류 중이에요. 2년간 열심히 공부하면서 어렵게 내놓았는데…, 4년이란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스타 정치인에 대한 기대감만큼이나 두 의원에 대한 여론의 질타도 적지 않았다. 도종환 의원은 당선 후 얼마 되지 않아 교육당국이 교과서에 실린 그의 시를 빼려는 시도가 있어 논란이 일었다. 이자스민 의원도 같은 시기에, 교과서에 실린 영화 <완득이> 사진이 교체 대상으로 거론됐다.

사회: 좌절하거나 그만두고 싶으셨을 때도 있었겠죠?

도: 국회의원으로 등원하는 첫날 많은 분이 축하 화분을 보냈어요. 그런데 문인 중 한 분이 근조 리본이 달린 화분을 보내셨더라고요. ‘너는 문인으로 끝난 거다’라는 메시지였죠. 그 화분을 지금까지도 잘 가꾸고 있어요. 출근할 때마다 제가 문인이자 의원으로서 살아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화분입니다.

이: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어요. 어떻게 그만둬요. 헌정 사상 최초의 이주여성 의원이라는 부담은 크죠. 단지 아이들이 마음에 걸려요. 제가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주변 사람들이 아이들한테 “너희 엄마 국회의원인데 이러면 안 되지 않아?”라고 한대요. 미안하죠. 우리 아이들 같은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었던 의도가 오히려 족쇄를 채운 게 아닌가 싶어서요.

“치고 박고 싸우던 몸싸움 국회 없어서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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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국회의원이 된 뒤로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도: 가장 이해가 안된 부분은 국감이나 회의 때 상임위원들이 호통 치는 문화였어요. 뭐 별로 화낼 일도 아닌 것 같은데 “야! 하지마! 내려!”를 얼마나 자주 외쳐대는지.(이자스민 의원은 박장대소를 하며 ‘맞다’며 맞장구를 쳤다) 선배 의원에게 적응이 안 된다고 하소연했더니 “적응 되면 큰일 난다”고 충고하더라고요.

이: 저는 자꾸 “한국어 할 줄 아느냐”고 물으실 때가 당황스러웠어요. 어떤 행사에서는 통역을 붙여주실 때도 있었어요. 저 한국에 귀화한 지가 20년입니다.(웃음) 한 번은 의원들이 법안이나 이슈에 대해 한참 동안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멈추더니 제 얼굴을 쳐다보면서 그러는 거예요. “내가 하는 말 다 알아듣고 있는 거지?” 도대체 이 나라가 국회의원을 낮게 보고 있나 싶더라고요. 아무렴 입법기관이 말도 못하는 사람을 국회의원 시켰을까 봐?

사회: 19대 국회에서만 있었던 독특한 풍경을 꼽는다면요?

도: 늘 회의 때마다 치고 박고 싸우던 국회였는데, 19대 때는 다행히 한 번도 몸싸움이 없었습니다.

이: 아, 맞아요. 제가 의원이 됐을 때 아들이 “엄마가 혹시 TV에서 누구 머리채 붙잡고 있는 걸 보면 호적에서 파낼 거야”라고 경고하더라고요.(웃음) 처음에 보좌진들은 본회의 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느 문으로 도망쳐야 하는지를 미리 알려주기도 했어요. 그게 그동안 우리가 갖고 있던 국회의 이미지죠.

사회: 정치인들이 하는 가장 흔한 거짓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 의원들의 경우 “불러만 주시면 가겠습니다”인 것 같아요. 굉장히 많은 행사나 포럼에 참석해서 “다음에 저희 행사에 오십시오”라는 부탁을 들으면 “못 갈 것 같다”고 거절할 수가 없잖아요. 일정상 못 가는 행사가 늘다 보면 나중에는 “왜 안 왔느냐”며 따지는 분도 많더라고요.

도: 토론회에 가봐도 시작 전에 상당수 의원이 인사만 하고 우르르 빠져나가요. 사실 토론회가 시작하기도 전에 사진 찍고 사라지는 풍토를 의원이 되기 전엔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그런데 곧 알게 됐죠. 30분, 1시간 단위로 행사에 참석하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요.

사회: 초선의원이자 비례대표 의원으로 입법활동을 하는데 특별히 겪는 어려움은 없었나요?

도: 아무래도 편견이 심하죠. “시인인데 정치를 뭐 알겠어?”하고 생각하시더라고요. 평상시 말이 없다 보니 의원총회 같은 곳에서는 미심쩍은 시선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법안을 하나 만들려면 2~3년씩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반대로 다선 의원들은 수십 개씩 내더라고요. 그게 다른 개정 법들이 아니라 글자 한두 개 고쳐서 내는 거예요. 어쨌든 성과를 내고 많은 법을 통과시키더군요.

이: 저는 그 문화가 정말 싫어요. 심지어 단어 하나만 갖고 여러 개를 고쳐놓고선 수십 개 법안에 사인을 하래요. 그런 법안들이 발의된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었어요. 주요 성과로 매겨진다는 것 조차도요. 저는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어요. 제가 마치 다문화를 상징하는 사람처럼 되다 보니 다른 의원들과 이슈를 함께 추진하고자 부탁하면 “그건 이자스민 의원이 해야지”라는 답이 돌아오기도 했어요. 항상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었죠. 제가 잘못하면 두 번째, 세 번째의 이자스민은 없을 것 같아서요.

사회: 국회는 입법부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보시나요? 제도, 관행상의 문제가 있다면?

도: 정말 못하고 있죠. 사실 여당이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서 찬성, 반대를 정하고 통과 시점을 결정하는 일이 있어요. 국회가 국회다움을 지키지 못하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관광진흥법은 여야 원내대표 합의로 본회의 직권상정을 했어요. 저는 법안을 심사해야 하는 교문위 위원인데 법안을 못 본 채 본회의에 올라왔어요. 입법부에 있는 의원으로서 법안을 본 적이 없다면 말이 안 되잖아요. 상임위를 통과해서 법사위에 오면 법사위에서 5일간 숙려기간을 갖도록 되어 있습니다. 입법부는 청와대와 별개로 움직여야 합니다. (정부가) 협조를 구해서(합의는) 입법부 내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지요.

이: 사실 19대 국회는 가장 많은 법안을 냈지만 법안 가결률은 약 30% 수준으로 역대 최저였습니다. 한 단어를 갖고 바꿔서 백 몇 개 내고 하니 막상 중요한 법안은 통과를 못했어요. 법사위 문제를 보자면 상임위에서 통과를 해도 법사위에서 ‘인질’처럼 붙들고 있어 못 나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법안 취지가 좋으면 내용을 보고 결정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국회에서 하는 일들이 “시기상조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에 가로막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여야합의가 우선돼야 하지만 저는 국회선진화법의 정신을 살리면서 직권상정 대상 안건을 확대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현재 야당은 어수선하다. 안철수의 신당 창당으로 정당이 다시 쪼개졌다. 도종환 의원은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들어와서 새정치민주연합, 더불어민주당으로 정당명이 바뀌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1월 11일, 그는 의원들의 연이은 탈당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어 비판했다. 도 의원은 “당이 난파하는 배 같다면 그 배와 운명을 같이하겠다”며 “계파 이익에 집착해 패권을 휘두른 일이 언제 있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주시길 바란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으로 한국 정치가 다당제로 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어떻게 보세요?

도: 제1당 제2당 말고, 노동자들이 만든 당, 소수자를 위한 당, 녹색당과 같이 각 분야에 필요한 당이 있습니다. 소수자를 대변하는 당들이 많아야 한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탈당 현상은 공천을 받지 못해서 나간다든가 대통령 후보가 안 될 것 같아서 나가는 것 아닙니까? 당의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은 분당은 정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이합집산의 분당이 아니라 분명한 가치를 가진 여러 당이 필요한 겁니다.

이: 동의합니다. 예를 들어 소수자를 배려하고 실질적인 정책을 내놓을 수 있는 정당이 필요한 것이죠. 양당제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부분이 적지 않은데 소수자를 배려한 다당제가 필요하다고 봐요.

다양성 존중할 비례대표 의석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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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이슈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도: 지난해 가을 정국을 달궜던 국정화 교과서 이슈가 생각납니다. 하지만 국정이라는 게 이렇게 선택을 하면 국가의 품격이 떨어지게 됩니다. 나치 정권이 국정화를 했고, 유신시대 때 일본 군국주의 정권이 아이들을 전쟁터로 내몰기 위해 국정을 채택 했었어요. 전체주의적인 국가운영을 할 때 국정을 채택하게 하죠. 그 뒤에 어떤 비극을 낳았는지 역사 속에서 우리가 다 보지 않았습니까?

이: 저는 제가 겪은 일 중 ‘이주아동권리보장 기본법’을 준비하던 때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특히 이 법안을 발의하기 전 정청래 의원께서 발의한 법안이 ‘이자스민법’으로 뭇매를 맞은 적이 있어요. 같은 상임위 정청래 의원이 “법은 내가 냈는데 욕은 왜 네가 먹니?”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사회: 20대 총선에서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요?

도: 비례대표 구성 관련해서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이 아주 잘한 부분이 이주여성과 탈북자 중 한 사람을 배정하겠다고 한 것이라고 봐요. 우리 당은 못했던 것입니다. 이번 20대 국회의원 비례대표를 어떤 사람들로 구성할 것인가, 분야별로 나눠 사회적 다양성을 TF 팀에서 논의하고 있는데, 우리도 다문화 비례대표를 배정해야 된다는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친한 시인이자 대학교수 친구가 “너희는 지난번에 새누리당에서 이자스민을 비례대표로 뽑아가는 바람에 100만 표는 졌을 거야”라고 하더군요.

이: 다양성을 중시하는 비례대표 의석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자스민 의원은 비례대표 재선을 꿈꾼다. 그는 “재선 가능성을 크게 보지는 않지만 19대 때도 막판에 비례대표로 포함됐으니 아직 희망은 있다”고 말했다. 도종환 의원은 그동안 출마의사를 밝히지 않다가 1월 11일 기자회견에서 “당에서 어떤 지역이든 나가서 역할을 해달라고 한다면 하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런 것도 하겠다”며 20대 총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사회: 제20대 국회에서 일하고 싶은 이유는요?

이: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거든요. 나가면 비례대표 재선이어야겠지요. 지역구를 나가려면 연고지가 있어야 하는데 저는 없잖아요. 특히 다문화가정들은 우리처럼 한 지역에서 살고 있지 않아요. 경기도 안산에 많이 산다고 하지만 그곳은 이주 노동자가 많지, 정착한 분들이 아니거든요.

도: 비례대표도 재선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전문성을 살려서요. 그건 당에서 하기 나름이거든요. 당헌·당규를 만들면 되니까요. 안 그러면 연속성이 떨어지거든요.

국회의원은 사회적 ‘옷’에 불과, 벗으면 그만

사회: 만에 하나라도 19대 임기가 끝나고 일반인으로 돌아간다면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이: 사실 주위에서 임기가 끝나면 무엇을 할 거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국회의원을 했는데 아무 일이나 할 수 있느냐고 하더라고요. 질문 자체가 좀 황당해요. 제가 알기로는 정치인이 국민의 종인데요. 국민으로 돌아가면 오히려 갑이 되지 않나요? 재선 의지를 가진 건 여태까지 해온 일을 손 놓으면 누가 이어줄 수 있겠느냐 하는 걱정 때문이에요. 하지만 국회의원이 아니라도 이 일은 계속할 것입니다.

도: 국회의원이라는 것은 사회적인 옷 중에 하나여서 벗으면 그만이에요. 정채봉 선생 동화 중 <옷걸이>에 보면 이런 문구가 있어요. ‘옷걸이야 너는 옷걸이란다. 네가 옷이 아니란다.’ 끝나면 본래 옷걸이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요즘 “시는 거의 못 쓰시죠?”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습니다. 제 답은 항상 “늘 꾸준히 쓴다”입니다. 고은 시인도 “시는 어디서나 쓰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감옥에서도 몰래 시를 썼고, 논산훈련소에서도 몰래 볼펜 토막 구해서 책 포장지 안에 썼는데 국회가 감옥보다야 낫지 않겠나 생각했어요.(웃음) 오는 5월 시집을 냅니다. 써놓은 작품 중 3분의 1 정도를 골라서 70편 묶었어요. 정치 소재의 시도 있어요. 동료 선배 의원들이 놀랄 것 같네요. 그런데 한편으론 걱정이에요. “의정활동 안 하고 시만 썼구만.” 이렇게 욕 먹을까 봐요.(웃음)

사회: 두 분처럼 외국인, 시인 후배가 비슷한 케이스로 스카우트돼 등원한다면 어떤 조언을 하시겠습니까?

이: 제가 이주여성에게 들었던 가장 가슴 아팠던 답은 “꿈을 갖는 것이 꿈”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였어요. 이들이 꿈을 갖기 위한 환경이 조성되려면 굉장히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혹시 그 뜻을 이어가고자 한다면 저보다 더 적극적으로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이민사회와 이주 노동자에 대한 시선은 더 안 좋아질 겁니다. 다음 국회에는 그런 비판을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을 단단히 준비했으면 좋겠어요.

도: 빨리 들어오라고 하고 싶습니다. “나하고 교대 좀 하자. 나만 이 고생이냐?”라고 하면서요. 물론 개인적으로는 고생이 될 겁니다. 독자를 다 잃을 수도 있거든요.(웃음) 그러면서도 제가 하던 일을 이어가 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요. 문학진흥을 위한 기구를 아직 못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술인 복지 재단을 지켜달라, 국정화 교과서 추진 좀 막아달라고 계속 민원을 하겠죠.

사회: 20대 국회에 기대하는 점과 과제를 말씀해주세요.

도: 합리적인 토론과 치열한 논쟁에서 합의를 존중하는 국회가 되길 바랍니다. 언어의 품격, 사유의 품격, 행동의 품격. 국회를 중심으로 사회 문제를 풀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합니다.

이: 백 번 옳으신 말씀입니다. 국민에게 인정받는 국회가 되길 바랍니다.

사회: 덕담으로 건배하면서 마치시죠.

도: 오늘 우리의 아름다운 만남을 위하여!

이: 남은 임기 성공적인 의정활동을 위하여! 도 의원님, 저랑 셀프 카메라 인증샷 한 장 찍으시죠!

- 사회·글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 사진 오상민 기자 oh.sangmi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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