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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가장 따뜻한 색, 공유

중앙일보 2016.01.30 00:01
가장 따뜻한 색, 공유
'남과 여', '부산행' 그리고 '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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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37)가 ‘용의자’(2013, 원신연 감독) 이후 2년 만에 공식 석상에 나섰던 지난 1월 18일, 전국에는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쳤다. 공교롭게도 그가 핀란드의 설원에서 찍은 영화 ‘남과 여’(2월 25일 개봉, 이윤기 감독)의 제작 보고회가 열린 날이었다. 공유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날씨였다. 차가운 공기와 흐린 하늘이 공유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잠시 잊고 있던 ‘남과 여’의 기억을 불러들이게 했으니까.

머나먼 이국땅 설원에서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 본 여자 상민(전도연)과 기홍(공유)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공유가 오래도록 바라왔던 진한 멜로다. “출연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어요.” 공유는 예의 그 차분한 말투로 말하며 웃었다. 

‘남과 여’를 시작으로 올해 공유는 세 편의 영화를 선보인다. 여름께는 좀비 블록버스터 ‘부산행’(연상호 감독)이, 이후에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을 둘러싼 배신과 음모를 다루는 ‘밀정’(김지운 감독)도 잇따라 개봉 예정이다.

“요즘은 ‘밀정’의 하루하루를 부지런히 살고 있는” 공유의 얼굴에서 옅은, 하지만 기분 좋은 피로감이 묻어나왔다. “숙제 검사를 한 번에 받는 기분이에요. 부담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욕이든 칭찬이든 사람들의 반응이 문득 그립기도 해요.” 공유를 만나 그동안 그가 차곡차곡 준비해 왔던 세 편의 영화를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그로서는 실로 오랜만에 풀어놓는 이야기 보따리인 셈이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제야 서서히 실감이 났다. 긴 기다림이 끝나고 다시 공유를 만날 시간이 됐다는 것. 올해는 그의 해가 될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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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으면서 배우가 끊임없이 관객의 반응을 예측하는 경우가 있고, 아닌 경우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남과 여’는 어땠나요. “반응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저 하루하루 충실히, 상대 배우에게만 집중한 영화였어요. 그래서 연기한 느낌이 안 들기도 해요.”

-그게 가능한가요? 연기는 캐릭터의 감정을 정확히 전달해야 하는 ‘기술’이잖아요. “‘이렇게 해 볼까’ 하는 계산이 아니라, 상황 속에 온전히 나를 던지고, 내가 극 중 인물이라면 눈앞의 상대에게 어떤 표정을 보여주고 어떤 말투를 쓸까를 먼저 고민하는 식이었어요. 자연스럽게 기홍이 아닌 저의 모습이 드러났겠죠. 전 연기하는 인물에 제가 묻어나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요. 그런 연기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상대 배우가 전도연이기 때문에 가능한 몰입 아니었을까요. “맞아요. 전도연 선배는 제게 ‘확신’이었어요. 이 영화를 택한 결정적 이유죠. 물론 예전부터 진한 멜로를 기다려오긴 했어요. ‘30대 후반에 멜로를 찍는 내 모습은 어떨까’ 하는 막연한 기대와 궁금증이 늘 있었어요. 기회가 왔고, 상대가 전도연 선배인데 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요. 그토록 멋지고 큰 산이 내 옆에 버텨주는데.”

-멋진 산임과 동시에 두려운 산이기도 할 테죠. “처음엔 마냥 신나서 생각하지 못했는데, 촬영 시작할 때쯤 부담감이 한 번에 몰려 오더라고요(웃음). 전도연 선배에게 내가 이렇다 할 영감을 주지 못하면 큰일인데. 누를 끼치면 안 되는데.”

-누를 끼치기 싫다는 얘기를 종종 하는 것 같습니다. 일에 임하는 기본 마음가짐인가요. “성격인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남에게 피해 주는 걸 워낙 싫어했어요. 좋은 말로 배려심이 많은 거겠지만, 제가 볼 때는 그냥 소심한 거예요. 이게 정말 배려라면 수많은 사람이 함께하는 작업을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한 마음가짐이기도 하고요. 바꿔 말하면 제가 하는 만큼 누군가도 제게 그러길 바란다는 뜻이기도 해요.”

-기대가 컸던 만큼 오히려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았나요.
“왜 아니겠어요. ‘남과 여’ 찍으면서 내내 무섭고 버거웠어요. 전 배우로 살면서 늘 무서웠어요. 지금껏 그랬고, 앞으로도 무섭겠죠. 그 감정이 반복되기 때문에 배우라는 직업이 외로운 거라 생각해요. 그래도 나중에 후회하긴 싫었어요. 이겨내야 하는 감정 같아요.”

-예상보다 훨씬 버거웠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차 안의 기홍이 창밖으로 멀어지는 상민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어요. 시나리오 볼 때 제일 좋아했던 장면이에요. 잘하고 싶고, 스스로 기대했던 장면이라 촬영할 때는 오히려 힘들었어요. 나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서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니 버거운 순간이 참 많았네요. 일명 ‘호텔 복도신’이라고, 기홍의 감정이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장면이 있어요. 하필 촬영하는 날 몸이 너무 아팠어요. 오디션 프로그램 보면 결정적인 무대를 앞두고 성대 결절 판정받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때 제가 딱 그 상황이었어요. 아픈 게 너무 화나는 거죠. 감독님은 괜찮다고 하셨는데 전 사실 그다지 만족하진 못했어요.”

-반면 굉장한 희열을 느낀 순간도 있었겠죠. “전도연 선배의 연기를 눈앞에서 보는 매 순간이 그랬어요. 화면상으로 선배를 보는 것과, 상대 배우로서 바로 눈앞에서 보는 건 달라요. 카메라에 담지 못하는 디테일이 훨씬 많아요. 제가 그걸 느끼고 리액션을 하는 게 카메라에 담기죠. 결국 상대 배우의 힘 덕분에 제가 좋은 연기를 선보인 셈이 되는, 그런 희열이 있었어요. 전도연 선배 연기를 너무 좋아했어요. ‘무뢰한’(2015, 오승욱 감독)에서 잡채 무치던 혜경(전도연)에게 재곤(김남길)이 ‘나랑 같이 살래요?’라고 하잖아요. 그때 혜경이 ‘진심이야?’라고 말해요. 눈은 너무 슬픈데 눙치듯 물어보는 그 모습이 정말 사랑스러웠어요. 만약 누가 저런 눈빛으로 내게 말한다면 난 그 여자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그런 풍경을 매일 보는 호사를 누린 거죠.”

-영화가 개봉되고 ‘공유 참 잘했다’가 아닌 ‘전도연 덕분’이라는 반응이 우세하다면요. “그런 반응이라도 나오면 다행이죠(웃음). 전 돋보이고 싶진 않아요. 그런 욕심은 없어요. 결코 역할에 소홀하겠다는 게 아니에요. 제 몫을 다 하되, 영화에 은은하고 자연스럽게 녹는 게 좋아요. 단체 사진을 찍을 때, 굳이 가운데 서려고 앞으로 나서는 사람은 아니라는 거죠.”

-제작 보고회에서 이 영화를 ‘핀란드 하늘색 같은 영화’라고 설명했죠. 그곳의 날씨와 하늘이 분명 어떤 감성을 자극했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썼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부분 흐린 날이었어요. 전 그런 날씨 좋아해요. 적당히 흐리고 건조한. 그리고 그 날씨가 기홍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기홍은 좀 애매한 남자예요. 여자들이 싫어하는.”

-무슨 뜻인가요. “대사도 있어요. ‘사는 게 왜 이렇게 애매한지 모르겠다’고. 전 그 대사가 정말 좋았어요. 사실 누구나 그런 기분 느끼지 않나요. 물론 애매하기 때문에 비겁하게 보일 수도 있어요. 아마 여자 관객은 기홍을 ‘저 못난 놈’ ‘비겁한 놈’이라고 많이 얘기할 거예요. 하지만 그런 기홍의 마음이 제게는 너무나 크게 와 닿았다는 거죠. 기홍이 나와 전혀 다른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었다면 이해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실제 공유도 똑 떨어지는 성향의 사람은 아니라는 거군요. “네. 저도 애매한 부분이 많은 사람 같아요. 극 중 기홍과 상민은 비슷한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보는 것으로 그려져요. 하지만 전도연 선배는 실제 성격이 절대 그렇지 않죠. 굉장히 칼 같고 뜨거운 사람이에요. 반면 전 미적지근한 사람이죠. 적정 온도를 늘 유지하고자 하고. 제게 가장 이상적인 건 따뜻함이지 뜨거움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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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께 개봉하는 ‘부산행’ 역시 큰 망설임 없이 합류했다고 들었어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첫 발자국 찍는 것에 대한 욕심이 있어요. ‘이미테이션으로 성공하는 것보다 오리지널로 실패하는 게 낫다’고 하잖아요. 한국 장편 상업영화에서 좀비를 다룬다는 건 하나의 의미 있는 시도죠. 연상호 감독님의 전작이 모두 사회 고발적인 애니메이션이라는 점도 좋았어요. ‘부산행’에도 감독님의 성향이 묻어 있어요. 사람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잔인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죠. 그게 이 영화의 진짜 공포예요.”

-‘부산행’의 좀비들은 어떤가요. 영화마다 좀비를 묘사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잖아요. “미친 듯이 도망갈 수밖에 없을 만큼 빨리 뛰어다녀요(웃음).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좀비를 연기하신 분들이에요. 수 개월 동안 안무가의 지도를 받으면서 몸을 움직이는 법을 배웠는데, 다들 정말 열정적이었어요. 그분들의 연기를 보고 제가 반성할 정도였어요.”

-‘밀정’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임했나요. 의열단 리더 김우진 역을 맡았죠. 김우진과 일본 경찰 밀정 이정출(송강호)의 심리 갈등이 주된 이야기라고 알려졌는데요. “사극에는 별로 관심 없는데, 시대극은 한번 해 보고 싶었어요. 의열단의 이야기가 남다른 울림으로 다가오기도 했고요.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당시 의열단으로 활동한 인물들이 엄청난 멋쟁이더라고요. 외적으로도 그렇고,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었죠. 언제 죽을지 몰라서 그랬다고 해요. 그 인물이 되어, 그 시대에 들어가 앉아 보고픈 호기심이 일었죠. 무림의 고수 송강호 선배를 만날 수 있다는 최고의 장점도 있고.”

-‘남과 여’와 ‘밀정’에서 무림의 남녀 고수를 모두 만났군요. “네. 엄청난 행운이죠.”

-‘밀정’의 김지운 감독과 송강호는 워낙 좋은 짝패임을 영화로 여러 번 증명했죠. 호흡이 척척 맞는 둘 사이에서 일하는 신입 사원의 입장이었겠네요. “하하. 그런 셈이죠. 사실 ‘밀정’에 대해 많은 말을 하는 건 조심스러워요. 지금 한창 ‘밀정’의 하루하루를 살고 있으니까요. 이건 솔직히 감추고 싶은 말인데…, 처음엔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중국에서 두 달간 촬영할 때 좀 겉돌고 불안했던 것 같아요.”

-왜 겉돌았다는 생각이 들었을까요. “안 풀리는 부분에 대해 응석 부리지 않고 스스로 돌파구를 찾고 싶은데, 마음을 빨리 다잡기가 쉽지 않았어요. 김지운 감독님의 스타일을 이해하는 시간도 필요했고요.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꼼꼼한 연출가예요. 예상했던 것과 달라 약간 당황했다고 할까. 전 이렇게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확한 디렉팅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그걸 정확히 소화하는 게 배우의 몫이기도 할 텐데. 마음처럼 잘 안 돼서 주눅 들기도 하고. 중국 촬영 때는 ‘시키는 대로 정확히 해 보자’와 ‘좀 더 자유로우면 안 될까’ 사이에서 혼자 계속 내적 갈등을 겪었던 것 같아요. 절반 정도 찍은 지금은 점점 편해지고 있어요. 감독님께 이런 속내를 드러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활자로 읽고 오해하시면 안 될 텐데, 조심스럽네요.”

-설정과 캐스팅 구도만 보면 ‘밀정’은 ‘의형제’(2010, 장훈 감독)와 비슷한 느낌이에요. “그렇네요. 그러고 보니 송강호 선배는 나보다 (강)동원이랑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웃음). 아무튼 이 영화에서 이정출과 김우진은 적이지만 서로 이용할 수밖에 없어요. 서로 간 보고, 신경전을 벌이고, 정체를 숨기면서 서로 살살 뜯어 먹어야 하는 관계라 할까요.”

-한 해에 연달아 영화 세 편을 선보이는 건 처음이에요. 그동안 출연작마다 공백이 조금씩 있던 것에 비해서는 이례적이죠. 앞으로도 이 페이스를 유지할 건가요. “쉬지 않고 ‘소처럼 일하는 배우’들이 있잖아요. 황정민·하정우·강동원처럼(웃음). 전 그들이 진짜 신기했거든요. 근데 해 보니까, 하면 되는 것 같긴 해요. 다만 처음 해 보는 페이스라 힘들긴 하더라고요. 작품을 떠나서 나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해와 올해는 운때가 맞았던 것 같아요. ‘밀정’ 이후의 행보는 아직 전혀 모르겠어요. 쉬고 싶긴 한데, 매혹적인 제안이 온다면 또 거절하기 힘들겠죠.”

이은선 기자 haroo@joongang.co.kr, 사진=전소윤(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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