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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국부 이승만, 통일되면 가능하다

중앙일보 2016.01.27 00:47 종합 3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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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진 논설위원

건국대통령 이승만(1875~1965)을 높게 평가하는 이들은 그를 국부(國父)로 추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대개 보수·우파다. 진보·좌파에선 이런 목소리가 거의 없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한상진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이 이승만을 국부로 평가한 것이다. 그는 대표적인 진보파 사회학자다. 정치적으로는 김대중(DJ)에게 정서적 유대를 갖고 있다. 그런 인물이 ‘국부 이승만’을 언급한 것이다.

 세계사에서 국부라 불리는 이들은 근대 공화국 건설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다. 고대·중세에서 아무리 위대한 제국을 만들었다 해도 국부라 하지는 않는다. 이슬람 제국의 무함마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로마의 카이사르,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국부로 불리지는 않는다. 조선의 이성계도 마찬가지다.

 대개 봉건왕조와 싸워 근대 공화정을 수립한 이들이 국부가 된다. 왕조의 창립이나 확장보다 자유·평등·민권의 근대국가를 세운 게 중요한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헌신과 애국심으로 온갖 시련을 이겨내는 건 당연한 것이다. 이 두 가지를 갖춘 국부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조지 워싱턴, 남미의 볼리바르, 중국의 쑨원, 인도의 간디, 터키의 케말 파샤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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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는 이승만이 있다. 일제강점기나 해방공간에서 그는 가장 핵심적인 지도자였다. 그는 상하이 임시정부의 대통령이자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다. 그는 공산주의를 물리치고 자유민주 공화정을 도입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시련과 헌신 또한 간디나 쑨원 못지않다. 그는 봉건왕조 고종에 대한 쿠데타 음모로 5년6개월이나 감옥에 갇혔다. 유품이 보여주듯 청렴하고 검소했다. 북한의 남침으로부터 국가를 지켜냈다. 전후에는 강력한 한·미 동맹으로 국가 발전의 길을 열었다.

 문제는 그의 과오다. 그는 친일파 청산에 소극적이었다. 공산주의 세력과 싸우려면 숙련된 관리·경찰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국회가 친일파 단죄 특위를 만들자 그는 삼권분립을 들어 반대했다. 이승만의 경찰이 특위를 공격했으며 결국 특위는 와해됐다.

 독재도 중요한 과오다. 박정희는 아예 개발독재 소신파였다. 국가 개발의 초창기에는 민주주의가 유보돼야 한다고 믿었다. 반면 이승만은 민주주의 신봉자였다. 그런데도 그는 장기집권을 위해 독재 방식을 택했다. 경찰력과 편법으로 국회를 누르고 헌법을 바꾸었다. 결국 1960년 3·15 부정선거가 터졌고 학생들이 피를 흘렸다. 이승만은 부정을 지시하지도, 발포를 명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4·19의 비극과 정권의 몰락은 장기집권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오가 있는 건국 지도자는 국부로 불릴 수 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 터키의 무스타파 케말(1881~1938)은 독재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국부로 불린다. 공적이 과오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케말은 술탄 봉건왕조를 무너뜨리고 근대국가 터키를 만들었다. 역사적인 갈리폴리 전투에서 영국을 물리쳤다. 기독교 국가 그리스와 아르메니아의 공격으로부터 이슬람 터키를 구했다. 그는 1차적으로 케말 파샤(Pasha·지도자)가 됐다.

 그러나 초대 대통령이 되자 케말은 독재권력을 휘둘렀다. 정치는 1당 체제였으며 반항하는 신문이 폐간되기도 했다. 그는 소수민족 쿠르드의 반란을 진압하고 지도자들을 처형했다. 그가 퇴임하기도 전에 동상이 세워졌다. 그런 독재 논란에도 불구하고 터키 국민은 그를 국부라 부른다. 의회는 그가 죽기 전 아타튀르크(Atatürk·터키의 아버지)라는 호칭을 헌상했다.

 한국의 케말 파샤 이승만은 언제 국부가 될 수 있을까. 남북 통일이 되면 그럴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역사는 사실(史實)을 해석하는 것이다. 사실이란 재료가 더욱 늘어나면 해석도 달라질 수 있다. 통일이 되면 공산주의 북한의 끔찍한 비밀이 세상에 드러날 것이다. 그러면 이승만의 자유민주 건국이 다시 조명될 것이다.

 이승만이 중국이 아니라 미국에 머문 건 대한민국에 축복이라 할 수 있다. 김구 세력이 활동했던 중국에선 쑨원의 자본주의 혁명이 마오쩌둥의 공산혁명에 밀려나고 있었다. 중국의 조선 독립운동가들은 사회주의에 많이 노출됐다. 소련과 김일성에 대해 김구가 경계심을 늦춘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을 것이다. 반면 이승만은 미국에서 자본주의의 풍요로운 성장을 목격했다.

 통일이 되면 이승만의 선택이 얼마나 위대한 지 증명될 것이다. 해방공간에서 남북 합작 세력이 매달렸던 환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승만의 유상 토지개혁이 북한의 국가 소유 집단농장보다 얼마나 우월한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승만의 한·미 동맹이 북한을 어떻게 막았는지 국민은 생생히 느낄 것이다.

 자유민주 국가의 건국과 호국(護國) 속에 4·19의 함성이 묻힐 때 천상(天上)의 이승만은 국부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김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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