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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의 유레카, 유럽] 난민 품다 집토끼 잃은 무티…정치연대 세력까지 등돌려

중앙일보 2016.01.25 01:49 종합 1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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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일부 난민들이 일으킨 집단 성폭력 사건 등으로 궁지에 몰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메르켈의 네 번째 총리 연임에 빨간 불이 켜졌다. [AP=뉴시스]


“앙겔라 메르켈 시대의 끝이 보인다.”

 지난해 10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실린 칼럼이었다. “2017년 예정된 독일 총선 이전에 메르켈 총리가 물러날 가능성이 있다. 설령 임기를 채우더라도 4연임은 어려워졌다”는 취지다. 한때 댓글 기능이 중단됐을 정도로 논란을 불렀다. 성급한 예상이란 게 중론이었다.

 불과 석 달 만에 완전히 달라졌다. 주요 언론들이 메르켈 총리를 두고 “모든 방면으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다”(로이터), “나라 안팎에서 고립무원이 되고 있다”(뉴욕타임스)고 썼다. 블룸버그통신은 “다보스에선 메르켈이 물러날까 불안해했다”고 전했다.

 메르켈은 독일 총리이면서 동시에 대체 불가능한 유럽 지도자였다. 5년여 경제위기를 헤쳐 왔고 우크라이나 사태에선 균형추였다. 영국이 내향형으로 바뀌면서 유럽과 거리를 두고, 프랑스가 자체 위기로 지도력을 잃어갈 때도 굳건히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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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자유세계의 총리’라며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이유였다. 독일인들에게도 ‘무티(엄마)’였다.

 난민 위기가 모든 걸 바꿔놓았다. 메르켈 총리는 여전히 “우린 할 수 있다”며 난민 상한제를 거부하고 개방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도 100만 명 이상 난민들의 유럽행이 예상되는데다, 세밑 독일 전역에서 벌어진 난민에 의한 집단 성추행 사건으로 독일은 물론 유럽에서도 “할 수 없다”는 반발이 거세다.

 더욱이 해법 마련이 어려운 상황이다. 메르켈 총리는 유럽 차원의 해법을 압박한다. 난민 할당제가 대표적이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어렵사리 합의하고도 돌아가선 몰라라 하고 있다. 16만 명을 분산 배치하겠다고 했지만 현재까지 300여 명만 옮겼을 뿐이다.

최근 EU의 외부 국경 수비대를 두자는 논의를 집중적으로 하고 있는데, 막상 개별 국가들이 주권인 국경 통제를 쉽사리 포기할 지에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난민들을 터키에 묶어두려는 계책도 기대만큼 효과가 있진 않다. 유럽은 3억 유로(3890억 원)의 현찰은 물론 터키인의 무비자 유럽 입국과 터키의 EU 가입 논의 허용이란 ‘당근’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한겨울인 이달에도 하루 1600명의 난민이 유럽 땅에 발을 디뎠다. 최근엔 모로코·알제리인들까지 가세했다.

 유럽은 ‘각자도생’(各自圖生) 중이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3억 유로 갹출에 반발하고 있다. 독일과 공동보조를 취했던 오스트리아는 올 난민 신청자 수를 3만7500명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유럽 곳곳에서 사실상 ‘국경’이 생겨나고 있다.

 독일 상황도 악화일로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선 독일 국민의 15%만 메르켈 총리의 난민 정책을 지지한다고 했다. 독일 기업인들은 “80%의 난민은 아무 기술도 없다”(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고 여겼다.

 이로 인해 메르켈의 리더십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지난주 메르켈 진영의 44명이 공개 항의 서한을 보냈다.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도 “난민 상한제를 두는 게 비도덕적인 건 아니다”라고 거들었다. 메르켈 총리가 속한 기독민주당(CDU)과 자매당인 기독사회당(CSU)은 절연할 태세다.

호르스트 제호퍼 CSU 당수 겸 바이에른 주총리는 메르켈 총리의 난민 정책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밝혔다. 봄이 돼 난민이 크게 늘 수도 있는 3월까지 별다른 조치를 취하치 않으면 CSU가 관계를 끊을 수도 있다.

현 정부의 골간은 CDU-CSU(630석 중 310석)이다. CSU(56석)가 이탈하면 메르켈 총리가 총리 자리를 지킬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독일의 대중지인 빌트는 “메르켈이 너무나도 심연에 가까이 있으므로 메르켈 근처에 가지 말라”고 썼다.

 메르켈 총리로선 단순화하자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처지로 몰렸다. 기존 정책을 고수하면 권력을 내놓아야할 수도 있다. 난민 상한제 등 요구를 수용하면 체면은 구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2달 여란 초읽기에까지 몰렸다.

고정애 런던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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