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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일찍 일어나면 바보가 되는 세상?

중앙일보 2016.01.22 00:01 Week& 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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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하면 여행 방법도 변한다. 아니다. 여행의 변화 속도가 시대의 변화를 앞서는지도 모른다. 여행업계의 시계는 의외로 빠르다.

불과 10여 전 얘기다. 특급호텔이 서머 패키지를 선보였다. 바캉스 시즌에 비즈니스 수요가 줄어들자 고민 끝에 내놓은 비수기 타개책이었다. 그 시절 특급호텔은 서머 패키지를 최첨단 바캉스 트렌드인 양 포장했다. 20∼30대 여성들이 호텔 수영장에서 우아하게 휴식을 취하고, 저녁에는 객실에서 파자마 파티를 즐기는 장면이 스스럼없이 연출됐다.

지금은? 특급호텔 대부분이 여름마다 홍역을 치른다. 수영장은 아이들 울음소리 요란한 물놀이장으로 변하고, 아침이면 뷔페 레스토랑 앞에 긴 줄이 선다. 특급호텔 서머 패키지는 어느새 대중적인 바캉스의 한 방법이 됐고, 시방 특급호텔은 1년 내내 이름만 바꿔 패키지 상품을 판다.

지난해 여행업계에서 소문이 파다했던 단어가 있다. 당일 예약 모바일 앱. 아직도 스마트폰이 서툰 독자를 위해 설명을 덧붙인다. 스마트폰이 대중화하면서 ‘소셜 커머스(Social Commerce)’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공동으로 상품을 사는 형식을 빌려 물건을 싸게 사서 되파는 온라인 쇼핑 서비스를 가리킨다. 뒤이어 ‘타임 커머스(Time Commerce)’라는 단어도 나왔다. 마감이 임박한 상품을 싸게 사서 되파는 온라인 쇼핑 서비스다.

소셜 커머스가 이른바 공동구매 방식이면, 타임 커머스는 쉽게 말해 ‘땡처리’ 형식이다. 이처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계한 마케팅 기법을 O2O(Online-to-Offline)라고 하는데 지난 한해 O2O 시장은 무려 15조 원대로 파악됐다.

타임 커머스의 핵심 부문이 당일 예약 모바일 앱이다. 여행업계에서는 호텔 객실과 항공 티켓이 대표적인 시장이다. 호텔 방이나 비행기표는 예정된 시각이 지나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당일 예약 모바일 앱을 이용하면 호텔 객실을 최대 70%까지 싸게 살 수 있다.

일부 모텔에만 해당하는 얘기라고? 저런, 진실을 말씀드린다. 현재 당일 예약 모바일 앱에 가입한 전국의 호텔은 1000개가 훨씬 넘는다. 신라·롯데·조선·하얏트·콘래드·포시즌즈 등 국내 특1급 호텔 모두 당일 예약 모바일 앱에서 객실을 살 수 있다. 각 호텔이 호텔 이미지를 고려해 드러내놓고 알리지 않을(또는 못할) 따름이다.

이 대목에서 소비자가 고려해야 할 점은 두 가지다. 우선 호텔 객실도 정상가격으로 구입하면 손해를 본다는 사실이다. 이미 테마파크나 스키장 입장권은 정상가격이 무의미해졌다. 신용카드 할인 혜택이나 소셜 커머스로 절반 이하 가격에 이용하는 소비자가 허다하다. 이제 당일 예약 모바일 앱은 레스토랑·영화·공연까지 영역을 넓히는 참이다.

무엇보다 여행에 관한 오랜 신앙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호텔 객실이고 항공 티켓이고, 일찍 예약해야 싸게 산다는 여행업계의 오랜 믿음이 당일 예약 모바일 앱의 출현으로 깨지고 말았다.

이제는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다. 아니, 일찍 일어나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10년쯤 뒤엔 이 칼럼도 ‘그땐 그랬지’ 식으로 읽힐 것 같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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