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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파일] 보이스피싱 '오명균 수사관'검거

중앙일보 2016.01.21 16:07

예 수고하십니다. 서울중앙지검의 오명균 수사관이라고 합니다.”

오 수사관이 자기소개를 마치자마자 전화를 받은 여성은 웃음을 터뜨립니다.
옆에서 박장대소하는 어머니의 웃음소리까지 들립니다.

왜 웃으세요?”

자꾸 검찰이라면서 전화가 와서요.”

계속 이런 전화를 받으셨어요?”

네, 지금 네번째인데… 또 어떤 잘못을 저질렀나요?”


결국 양쪽이 다 웃음이 터졌습니다. 자신이 검찰 수사관이라던 이 남성은 “아, 겁나 웃겨”라고 말하며 정체를 드러냅니다. 여성이 “아침부터 고생이 많다”고 말하자 멋쩍게 인사하고 전화를 끊습니다.
 
 
[오명균 수사관 보이스피싱 실패 영상]

지난해 3월,보이스피싱 조직이 중국 콜센터에서 한국에 있는 여성에게 전화를 걸어 보이스피싱을 시도하다 실패한 통화 내용입니다. 해당 대화 녹음파일이 ‘보이스피싱과 즐거운 대화’라는 제목으로 자막과 함께 유튜브에 올라오면서 SNS 상에서 큰 화제가 됐습니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중국에 콜센터를 차리고 전화금융사기를 벌여온 혐의(사기 및 전자금융거래법 위반)로 보이스피싱 총책 조모(43)씨 등 14명을 구속하고 1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1일 밝혔습니다. 구속된 조직원 중에는 ‘오명균 수사관’ 목소리의 주인공인 유모(28)씨도 있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2월부터 11월까지 중국 길림성 용정시에 위치한 콜센터에서 합숙을 하며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총책 조모(43)씨 밑으로 경찰·검찰 수사관을 사칭하는 1차 작업팀과 검사 등 고위직을 사칭하는 2차 작업팀이 있었습니다. 1차 작업팀은 피해자들에게 제일 처음 전화를 걸어 “본인 명의의 대포통장이 개설됐는데 공범인지 피해자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겁을 주는 역할입니다. 이후 2차 작업팀이 겁 먹은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금융정보를 입수하는 식입니다. 주로 가짜 검찰청 사이트를 알려주고 계좌번호와 보안카드 번호 등을 입력하게 했습니다. 경찰이 확인한 피해자는 20여명이고 피해금액은 3억 원에 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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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콜센터 외경 사진]
 

직장인 배모(23·여)씨가 이 조직의 전화를 받은 건 지난해 3월이었습니다. 배씨가 금융범죄에 연루됐으니 갖고 있는 돈을 가상계좌에 몰아둬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검찰 수사관이라는 사람에게 보안카드 번호를 불러줬고, 배씨의 통장에서 295만원이 출금됐습니다. 출금된 돈은 국내 인출책에 의해 바로 중국으로 보내졌습니다. 다행히 은행에서 즉시 계좌를 정지해 추가 피해는 없었지만, 직장생활 1년 반 동안 모은 적금을 한 순간에 잃게 됐습니다.

배씨는 “TV에서 들어본 수법이었지만 막상 당해보니까 하라는 대로 응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동포 억양이 전혀 없는 ‘일반 한국사람’의 말투여서 크게 의심하지 못한 겁니다.

‘오명균 수사관’역할을 한 유씨는 2014년 12월 중국으로 건너가기 전까지는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집에 빚이 있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중에 조선족 지인의 제안을 받고 범행을 결심했습니다. 며칠간 합숙 교육을 받고 1차 작업팀에 투입됐습니다. 일주일에 평균 세 건 정도를 성공했고, 건당 피해금액의 7%씩을 받았습니다. 유씨는 월수입이 150만원 정도였다고 진술했지만 경찰은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검사나 금융감독원을 사칭하는 2차 작업팀은 한 달에 4000만원 이상을 벌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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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조직도]
 

하지만 콜센터는 유씨가 일을 시작한 지 1년만인 지난해 12월 와해됐습니다. 총책 조씨가 한국에 들어왔다가 경찰에 먼저 붙잡힌 겁니다. 불안해진 현지 조직원들은 일을 관두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줄줄이 검거됐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국내 인출책 등 일부가 붙잡히는 경우는 많지만, 총책까지 잡히는 경우는 드뭅니다. 조직원들도 서로 얼굴을 모르고 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국내 인출 총책 채모(23)씨와 중국 내 콜센터 총책 조모(43)씨가 서로 아는 사이여서 체포할 수 있었다”며 “아직 중국에 남아있는 조직원들도 해외 공조수사 등을 통해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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