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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하기·가위질·젓가락 연습…공부보다 생활습관 잡아 주세요

중앙일보 2016.01.21 01:39 종합 2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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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맘 김모(37)씨는 지난 한 해 ‘전쟁’을 치렀다. 초등 1학년 아들 때문이다. 입학 전에는 아들이 금방 학교생활에 적응할 거라고 믿었다. 한글·영어는 물론 덧셈·뺄셈을 미리 배웠고 성격도 원만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꿈꾸는 목요일] 예비 초등생 뭘 준비할까


 예상은 빗나갔다. 늦잠 자는 습관을 고치지 못해 거의 매일 아침식사를 거른 채 허둥지둥 등교해야 했다.

담임선생님은 “허락 없이 친구 물건을 집어 가거나 남을 아프게 하고도 사과하지 않아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걱정했다.

이후 아들은 자신감을 잃어서인지 “학교에 가기 싫다”며 버티는 일이 잦았다.

 입학 석 달 만에 김씨는 회사에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아들과 자주 대화하고 놀이를 통해 생활습관들을 하나씩 고쳐 갔다. 아들은 곧 안정을 찾았다.

김씨는 “공부만 미리 시켜 놓으면 잘 적응할 것이란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뒤늦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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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대전 선암초의 예비소집. [프리랜서 김성태]

 초등학교 입학은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일생일대의 변화다. 놀이·보육 중심의 유치원과 달리 초등학교는 본격적인 배움의 공간이다.

공간적 변화도 크다. 유치원의 아늑한 놀이방 같은 환경에서 직사각형의 교실과 딱딱한 책걸상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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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적 압박도 크다. 학업에 대한 부모의 기대는 높아 가고 교사·친구와의 관계에서 받는 긴장감도 커진다.

한상윤 서울학생교육원장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들은 고교를 졸업해 대학에 가는 것 이상의 변화와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고 말했다.

 취학 직전 부모들은 자녀에게 받아쓰기와 덧셈·뺄셈 연습 등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 선행교육이 확산된 요즘엔 지역에 따라 90% 이상이 한글을 배운 뒤 입학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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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 26년째인 양영미 서울 풍성초 교사는 “입학 전엔 1부터 10까지 셀 줄 알고 받침 없는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수준이면 초등 1학년 수업을 따라가는 데 충분하다”고 했다.

아울러 본인과 학교·선생님 이름을 쓸 줄 알고 교무실·급식실·화장실 등 학교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를 읽을 수 있으면 더욱 좋다.

김중훈 인천 운서초 교사는 “부모가 보기에 한글을 뗀 아이도 획순에 맞춰 또박또박 쓸 줄 아는 경우는 드물다”며 “선행교육을 했더라도 학교 수업에서 기초를 충실히 다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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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비 초등 1학년에겐 읽기·쓰기보다 듣기·말하기가 더욱 중요하다. 김중훈 교사는 “학교 수업에 익숙지 않은 초등 1학년 학생 중엔 교사의 설명이 길어지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하니 있는 아이가 꽤 있다”고 전했다.

취학 전 부모가 동화를 읽어 주고 내용을 묻는 활동을 반복하면 아이의 집중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또 초등 1·2학년 과정엔 ‘손 공부’가 많다. 그림을 그리거나 종이를 오리고 붙이는 등 손을 쓰는 활동이 제법 많다는 뜻이다.

양영미 교사는 “영어엔 능숙하면서도 가위질·풀칠엔 서툴다 보니 자신감을 잃는 아이가 많다”며 “입학 전에 종이접기나 블록 쌓기 등을 하면서 손 근육을 발달시키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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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조로운 학교생활엔 바른 습관의 역할이 크다. 김중훈 교사는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잠을 푹 자고 아침까지 먹고 온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를 금방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 수업 태도와 집중도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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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형순 아이스크림홈런 초등학습연구소장은 차례로 줄 서기 등을 가르치라고 조언했다. 그는 “아이들 간의 다툼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상황은 급식시간이나 체육시간, 숙제 검사 등을 위해 줄을 서야 하는 때”라고 설명했다.

학교는 유치원과 달리 수업시간 40분 동안 한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미리 의자에 앉아 있는 훈련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식습관도 중요하다. 초등학교 급식에선 아이들이 모두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린다. 식사 속도가 너무 늦은 아이가 생기면 모든 학생이 기다려야 해 난감한 상황이 된다.

가정에서 젓가락질과 급식으로 나오는 우유팩 여는 법 등을 미리 익히는 게 좋다.

 바른 언어습관도 필요하다. 오세현 서울 경인초 교사는 “친구에게 서운하거나 미안한 감정을 표현하고 사과하는 법을 몰라 자기도 모르게 친구들과 멀어지는 아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부모가 다양한 상황을 연출한 뒤 자녀가 자기 의사나 감정을 차분히 설명하도록 하는 역할놀이를 하면 도움이 된다.

 오 교사는 “배가 아프다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말을 못하고 끙끙대다 실수하는 경우도 많다”며 “선생님이나 친구에게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나타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학교는 유치원에 비해 학교폭력에 민감한 분위기임을 감안해 입학 전에 “친구의 몸이나 물건을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고 설명해 두는 것도 필요하다.

 교사들은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재미있는 곳’이란 인식을 심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중훈 교사는 “입학을 앞둔 아이에게 ‘이렇게 하면 선생님에게 혼난다’는 식으로 훈계하면 자연스레 ‘선생님은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해 선생님을 멀리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오세현 교사는 “입학에 앞서 부모와 함께 학교 안팎을 미리 둘러보면 아이 마음도 한결 편안해질 것”이라며 “통학로를 미리 다녀 보고 안전에 문제는 없는지 체크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고 말했다.

 입학 후 3~4주가 되면 초등 1학년 교실엔 복통이나 감기 증세를 보이는 아이들이 나타난다. 환경 변화에 따른 긴장감, 이에 따른 체력 저하 등이 원인이다.

양영미 교사는 “어른도 직장을 옮기면 긴장하는 것처럼 취학아동도 적잖은 스트레스를 겪는다”며 “입학 후 한두 달은 학원 보내기를 자제하고 방과후나 주말엔 푹 쉬게 하라”고 조언했다.

문경민 서울 언남초 교사는 “12년 동안 이어질 초·중·고교생활의 첫 단추인 만큼 학습 부담감은 줄이고 학교에 대한 기대감과 스스로 일상을 챙기는 능력을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천인성 기자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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