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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엄동설한의 보육대란, 급한 불부터 끄고 시스템 정비를

중앙일보 2016.01.21 00:55 종합 30면 지면보기
엄동설한에 우려했던 보육대란이 현실화되고 있다. 만 3~5세 아동의 무상보육·교육 프로그램인 누리과정 예산 문제를 놓고 중앙정부·교육청·자치단체·지방의회 간 반목이 아이들을 극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서울·경기·광주·전남 등 진보 교육감 지역에선 어제부터 유치원 예산 지원이 시작됐지만 한 푼도 확보 안 돼 교사 월급이 밀리고, 아이들 간식과 난방까지 걱정하고 있다.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의 누리과정 예산편성액은 전체 4조225억원 중 1조1802억원(29%)에 불과하다. 특히 전국 대상 아동 130만8027명의 43%인 55만7609명이 몰려 있는 서울·경기 지역은 유치원과 어린이집 예산이 모두 ‘0’원으로 제일 심각하다. 애초 조희연·이재정 교육감이 어린이집은 정부 책임이라며 편성을 거부했고, 다수당인 야당 시의원들이 유치원 예산마저 몽땅 삭감한 결과다. 경기도는 남경필 지사가 준예산 상태에서 두 달치 어린이집 예산 910억원을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야당 소속 일부 기초단체장이 반대해 이마저도 불투명한 상태다. 서울은 성난 엄마들이 거세게 항의해도 박원순 시장과 조 교육감, 시의회가 수수방관한다.

 출산율이 1.21명에 불과해 15년째 초저출산국(1.3명 이하) 늪에 빠진 우리로선 보육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여기엔 정권과 여야, 진보·보수가 따로 없다. 2012년 대선 때도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가 모두 무상보육을 공약했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전격 시행한 누리과정은 여야가 합의한 정책이다. 책임 공방을 떠나 우선 급한 불부터 꺼야 하는 이유다. 교육감들은 추경 편성을 통해 유치원 예산을 확보하고, 단체장들은 어린이집 예산을 긴급 지원해야 한다. 지방의원들이 또 ‘몽니’를 부린다면 혹독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어제 사회부처 업무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이 별다른 언급이 없었던 것은 아쉽다.

 이참에 누리과정 시스템의 전면 재설계를 서둘러야 한다. 정권마다 땜질식 돌려막기나 정파적 대립을 없애려면 예산전달 체계와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하는 게 중요하다. 우선 법률적 적합성부터 가려야 한다. 정부는 교부금에서 누리 예산을 의무지출하도록 한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교육감들이 위반했다고 한다. 반면 교육감들은 상위법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엔 교육기관(유치원)만 지원하게 돼 있어 어린이집까지 지원할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국고든 교부금이든 어차피 다 국민 세금인 만큼 소요 예산을 콕 짚어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올 예산 386조4000억원에 누리 예산을 명시하지 않고, 내국세의 20.27%를 교부금으로 교육청에 보낸 대가가 너무 크지 않은가. 종국적으론 유보(유치원 교육과 보육) 통합이 필요하다. 유치원은 교육부,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 소관이다 보니 인력·예산 낭비는 물론 책임 주체도 모호하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면 인구 5000만 명 지키기도, 출산율 1.5명 달성도 헛구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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