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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쓴 얘기]6만명 개인정보 담긴 '성매매 리스트'의 모든 것

중앙일보 2016.01.2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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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성매매 알선업체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엑셀 파일을 지난 18일 확보해 수사에 나섰습니다. 일명 ‘성매매 고객 리스트’로 불리는 이 파일에는 이름은 없지만 성매수 남성으로 추정되는 6만6000여개의 휴대전화번호 등 개인정보가 빼곡하게 담겨 있습니다. 또 이 파일에는 채팅 애플리케이션(앱) 아이디(ID)나 차량 번호, 외모 특징도 세세하게 적혀있습니다. ‘검정 오피러스’ ‘근육남’ ‘베이지 점퍼'···· 이런 식입니다. 누군가가 가짜 리스트를 만들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구글도 모르는 정보 안다"는 컨설팅업체가 폭로
수사는 경찰이 이 엑셀 파일을 입수하면서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파일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컨설팅 전문회사 ‘라이언 앤 폭스’가 경찰 수사에 앞서 파일을 언론에 공개 하면서부터입니다. ‘라이언 앤 폭스’ 김웅 대표는 “강남 성매매 업자가 노트 8권에 수기로 적은 내용을 건네받았다”면서 “이 조직은 하루 평균 1000만원씩, 2011년부터 5년간 15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이 성매매 조직은 서울 강남 일대에서 활동하고 3개의 사무실을 갖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공익을 위해서 리스트를 공개하기로 결심했다”고 파일을 공개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라이언 앤 폭스는 지난해 세계 최대 불륜 조장 사이트로 알려진 얘슐리 메디슨의 개인 정보를 분석해 이들 중 국내 공공기관의 이메일을 확인했다고 주장한 바 있는 곳입니다. “구글도 모르는 미국 정보를 안다”고 홍보하는 회사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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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업자가 리스트를 작성한 이유는 ‘고객관리’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실제로 ‘기존’, ‘신규’ 등으로 ’고객‘을 분류해 놓기도 했습니다. 돈을 주지 않는 등 문제를 일으킨 고객은 ‘블랙’으로 적어 따로 관리했습니다. 단속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선지 ‘경찰’ 등은 따로 적어놓았습니다. 이 리스트에는 ‘경찰’, ‘경찰의심’, ‘확인된 경찰’ 등의 메모도 40여개가 적혀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리스트는 상당히 구체적입니다. 리스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상자들이 ‘플레이 메XX’ ‘쳇 XXX’, ‘즐X’ 등의 채팅 앱이나 인터넷 사이트 등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를 통해 ‘조건만남’을 시도했을 개연성이 높다는 얘기입니다. ‘사진을 보내왔다’는 메모도 있는 것으로 보아 사진교환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성매수를 원하는 남성과 접촉한 성매매업자는 채팅을 통해 개인정보를 모으고, 전화번호를 받아냅니다. 이후 업자들은 이 전화번호를 ‘구글링(구글을 통한 정보 검색)’해 의사ㆍ변호사ㆍ회계사ㆍ교수 등 성매수를 원하는 남성의 직업을 상세정보를 추가로 알아냅니다. 공기업 여러개와 H사 등 대기업 이름도 수십개 등장합니다. 예컨대 ‘구글 부동산쪽 일함’이라고 장부에 써 놓은 것은 업자들이 구글링해 본 결과 이 번호의 주인이 부동산업자로 파악됐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본지가 이 리스트에 있는 휴대전화 번호를 골라 구글링해 본 결과 직업 정보 등이 리스트에 나온 내용과 상당부분 일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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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검색 결과와 유사, 신빙성 의구심도 제기돼
이처럼 리스트에 적힌 대상자가 존재하고, 실제로 성매수를 시도했거나 성공했을 가능성은 높습니다. 하지만 성매매특별법 위반 등의 혐의로 리스트에 오른 대상자를 처벌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수사가 진행돼봐야 알 수 있다는 게 경찰의 입장입니다. 한 경찰관계자는 “현장이나 구체적 물증없이 전화번호와 메모만으로 성매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또다른 경찰관계자는 “리스트를 작성한 업자나 성매매 여성의 증언이 필요한데 부인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신용카드 매출전표 등 증거가 추가로 발견될 경우 처벌 가능성은 한결 높아집니다. 실제로 2011년 발생한 ‘국회 앞 안마방 전표 사건’은 성매수 남성을 대거 처벌한 사례로 기록됐습니다. 당시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성매매가 벌어진 국회 앞 안마방에서 결제된 신용카드 매출전표 3600여장을 압수해 수사에 나섰고, 300여명을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처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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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알선업자들이 고객 전화번호를 구글 검색해 기본 정보를 적어놓은 엑셀 파일.

 
리스트의 진위 여부를 밝혀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리스트 자체가 허위로 작성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지능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중구난방인 엑셀 파일을 정리하고 있다”면서 “파일의 진위여부와 출처 등을 조사한 뒤 수사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리스트가 일반인들에게 유출될 경우 실제 성매매 여부와 관계없이 많은 이들에게 ‘성매수자’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리스트에 전화번호가 오른 한 남성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환장하겠네. 자꾸 전화가 와서 사람들이 물어보는데…. 누가 번호를 가르쳐 준 거에요?”라고 푸념하기도 했습니다. 정용교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리스트가 유출됐을 경우 휴대전화 번호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성매매자로 인식되는 심각한 인권피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성매매는 한국 사회 관행, 리스트 놀랍지 않다”

전문가들은 리스트의 존재 자체가 성매매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방증이라고 설명합니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워낙 한국 사회에 성매매가 관행처럼 되어있어 리스트 존재가 놀랍지 않았다”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성매매가 일상화된 현실과 여성 인권침해 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울의 한 풍속담당 경찰관은 “성매매는 점점 음성화되고 업소는 늘어나는데 풍속 담당 인원은 많지 않다”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휴대전화를 통해 서로 만나 성매매를 하는 경우가 늘어 단속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채승기ㆍ조한대 기자 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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