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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예능=한국 예능" 중국 창조산업을 키우고 있다

중앙일보 2016.01.21 00:02

중국이 지난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이유가 뭘까.

답은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중국인들이 한국 오락 프로에 빠져 북한에 소홀했다는 얘기다. 홍콩 유력 시사지 아주주간(亞洲周刊)의 우스갯소리지만 함의는 깊다. 중국에서 한류가 드라마와 영화·가요를 넘어 예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뜻이어서다.

아주주간 최신호(1월24일자)는 커버 스토리를 통해 중국에서 한국 예능이 중국의 창조산업에 변화를 주고 한중 양국의 소프트파워를 강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선 숫자부터 보자.

현재 중국의 주요 지방 위성 TV에서 방송 중인 한국 예능프로그램의 중국 버전은 모두 22개. 한류 드라마가 피로현상을 보이면서 최근 2~3년 전부터 예능으로 옮겨갔다. 이는 한국에서 인기를 끈 예능프로그램의 72%에 달한다.

이 중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 ‘비정상회담’, ‘히든싱어’,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등 4개 프로그램이 이름 그대로 방송 중이다. 또 MBC의 ‘나는 가수다’, ‘아빠 어디가’ 등 6개, KBS의 ‘불후의 명곡’, ‘1박2일’ 등 4개, SBS의 ‘런닝맨’, ‘정글의 법칙’ 등 3개 프로그램이 각각 중국 시청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산 프로그램의 중국 TV 예능 점유율은 42%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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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의 예능 프로그램 4개는 이름 그대로 중국에서 방송 중이다. [사진 JTBC 홈페이지 캡쳐]


이들 프로그램 방송은 갈수록 상업화하고 있는 지방 위성TV가 주도하고 있다. 상하이(上海)의 둥팡(東方)위성TV는 JTBC의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와 tvN의 ‘꽃보다 할배’ 등 5개 프로그램을, 장쑤(江蘇)위성TV는 SBS의 ‘런닝맨’ 등 4개 프로그램을 각각 방송 중이다.

모든 프로그램이 당의 선전에 집중돼 있는 중앙(CC)TV도 예외가 아니다. CCTV는 지난해 MBC의 무한도전을 리메이크해 일요일 밤 8시 황금시간대에 내보내고 있다. CCTV가 외국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밤 7시 메인뉴스 시간에도 이 프로그램 방송 예보를 할 정도다.

출연진도 메가톤 급이다. CCTV 유명 사회자인 사베이닝(撒貝寧), 만담가인 웨윈펑(岳雲鵬), 유명배우 샤이(沙溢), 루안징톈(阮經天), 명사회자인 화샤(華少), 심리분석가 러자(樂嘉) 등이 고정출연자다. 모두 중국 방송계에서는 각 분야 스타 대우를 받는 이들이다.

이 프로그램 시청률은 1.7%로 대박이다. 중국에선 시청률이 1%를 넘으면 대박으로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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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CCTV는 지난해 MBC의 무한도전을 리메이크해 일요일 밤 8시 황금시간대에 내보내고 있다. 출연진도 CCTV 유명 사회자를 비롯해 각 분야 스타 대우를 받는 이들이 대거 출동한다.


한국 예능프로그램의 팬클럽도 생겨나고 있다. 중국의 바링허우(八零後·80년대 출생자)와 주링허우(九零後·90년대 출생자) 젊은이들의 사교사이트인 Acfun 과 Bilibili에는 이미 ‘무한도전’ 팬클럽이 생겨 CCTV가 매주 방송할 때마다 관련 동영상을 퍼 나르고 있다. 1·2회 방송분이 200만 뷰를 기록했을 정도다.

한국 예능이 인기를 끌면서 판권의 가격도 원가의 8~10배로 치솟고 있다. 저장 위성TV가 지난해 3분기 SBS와 공동제작한 ‘런닝맨’ 중국판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SBS는 300억원을 벌어들였다.

이 밖에도 JTBC와 KBS 등 한국 주요방송사의 인기 예능프로그램은 중국 방송사들이 판권을 입도선매하고 있다.

또 일부 중국 방송사는 아예 한국의 예능제작팀을 수십 억~수백 억원에 스카우트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한국의 예능에 열광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시청자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 내용에서 답을 찾는다.

중국 예능은 대부분 스타들이 무대에서 연기하고 시청자는 그저 바라보는 스타와 시청자의 분리구조다.

그러나 한국의 예능은 시청자가 직접 참여해 스타들과 함께 부대끼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체구조가 많다. 심지어는 스타들을 괴롭히기도 한다. 예컨대 ‘나는 가수다’의 경우 관객이 직접 가수를 평가해 탈락을 결정하는 등 프로그램의 주체로 참여한다.

즉 중국 예능이 공급자 중심이라면 한국 예능은 수요자 중심이라는 것이다. 한류 전문가인 퍄오춘란(朴春蘭)은 “시청자들은 더 이상 신비스럽고 고압적인 스타 대신 자신들과 어울리고 교류하는 스타를 원하는데 한국 예능프로그램은 이를 간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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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가수들의 경연을 평가하기 위해 청중 평가단을 모집하는 `나는 가수다`의 광고 문구. [사진 해당 프로그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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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의 히든싱어도 청중 평가단의 평가를 통해 `진짜 가수`를 찾아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해당 프로그램 홈페이지]


가족과 종족, 단체를 중시하는 한국의 유교적 가치관도 중국인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 이유다. 대박 프로그램인 ‘아빠 어디가’는 가족의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담았다고 중국 언론은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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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중심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끈 `아빠! 어디가?`.


한국 예능은 중국 창조산업 혁신을 위한 동력 역할도 하고 있다.

한중 합작을 통해 중국 문화산업 수준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중국 영화제작사인 주나 인터네셔널(JUNA INTERNATIONAL)이 녹사 미디어를 인수하고 저장화처(浙江華策) 미디어는 2014년 11월 한국의 4대 영화제작사 중 하나인 NEW에 3억 2300만 위안(약 594억원)을 투자해 2대 주주가 됐다. 또 NEW와 화처허신(華策合新)이라는 합자사를 만들었다.

인터넷 포털 서우후(搜狐)는 김수현 소속사인 키이스트(Keyeast)와 1500만 달러 투자를 추진 중이다.

특히 2014년 7월 문화체육관광부와 중국 국가신문출판 광전총국이 ‘한중 영화공동제작협의’에 서명한 이후 양국 영화산업 협력이 탄력을 받고 있다. 이 협의는 중국이 한중 양국 합작 영화에 대해서는 중국산 영화 대우를 해주겠다는 게 골자다. 현재 중국은 한국산 영화에 대해 매년 3~4편 정도만 수입을 허용하고 있다.

왕충(王叢) 화처미디어 사장은 “한국은 좋은 기획과 프로그램이 있고 중국은 시장과 자본이 있다. 한국 문화산업도 중국 시장을 통해 더 발전하는 윈윈 구조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과의 합작과 협력을 통해 많은 경험을 쌓았고 연예계의 글로벌 인재를 많이 양성했다. 이는 중국 문화산업 발전의 큰 기회이며 향후 중국이 문화 강국이 될 수 있는 자산”이라고 말했다.

최형규 중국전문기자 chkcy@joongang.c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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