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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따로, 물가 따로

중앙일보 2016.01.21 00:01 경제 4면 지면보기
#2015년 소비자물가는 0.7% 오르는데 그쳤다. 역대 최저 상승률이다. 그나마도 이를 가능하게 한 건 담뱃값 인상이다. 담뱃값이 2000원 오르면서 소비자물가를 0.58%포인트 끌어올렸다고 정부는 추정했다. 담뱃값 인상분을 제외하면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제로(0)’에 가깝다.

작년 물가 역대 최저 0.7% 상승
그나마 담뱃값이 0.58%P 끌어올려
저물가 가린 ‘착시’ 올핸 기대 못해
한은 정책 대응 갈수록 힘들어져

 #2011년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연 4%였다. 당시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범위(3.0±1%) 상단에 간신히 놓였다. 정부는 공공요금 인상 억제와 같은 물가안정책을 통해 2012년 물가상승률을 2.2%로 안정시켰다. 여기에 기여한 게 정부의 무상복지 정책이다. 그해 물가를 0.4%포인트 끌어내린 걸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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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뱃값 인상, 무상복지 정책과 같은 ‘정책 물가’가 ‘물가지수’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한국은행의 통계로 입증됐다. 대신 경기와 물가지수의 상관관계는 크게 약해졌다.

경기는 좋은데 물가는 찔끔 오르거나, 반대로 경기는 나쁜데 물가는 오르는 상황이 빈번해졌다는 얘기다. 이러면 물가지수와 실제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물가 간 괴리가 커진다. 뿐만 아니라 물가를 기초로 한은이 펼치는 통화정책의 ‘영점(零點)’이 흔들릴 수 있다.

 20일 한은에 따르면 가격이 경기 부침에 영향을 덜 받는 ‘경기 비(非) 민감품목’의 물가에 대한 영향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들 제품이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물가상승률(근원인플레이션)에 기여한 비율은 지난해 56%였다.

2001~2010년 평균(32%)보다 24%포인트 올랐다. 반대로 경기에 따라 가격 진폭이 큰 ‘경기 민감 품목’의 물가상승률 기여도는 같은 기간 68%에서 44%로 줄었다.

 경기와 따로 노는 품목이 물가를 좌우했다는 뜻이다. 여기에 담뱃값 인상이나 무상복지과 같은 정부 정책에 따라 물가는 요동쳤다.

2012년 시행된 무상보육·무상급식 정책은 그해 소비자물가를 0.4%포인트 끌어내렸지만, 무상복지 정책이 축소되자 물가 상승 요인으로 돌변했다.

실제 보육·급식비는 지난해 근원인플레이션을 0.1%포인트 올렸다. 최강욱 한은 물가동향팀 과장은 “수요·공급 원리와 상관없는 제도적 요인이 물가에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요금이 물가를 적정하게 조정할 수 있다면 괜찮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실제 물가 현실을 왜곡할 수 있다.

 한은은 1999년부터 근원인플레이션을 측정하고 있다. 석유류 같은 일회성 요인을 제거하고 순수 국내 수요를 측정해 정밀한 통화정책을 펼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 지수 역시 실제 내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게 되면서 통화정책이 왜곡될 가능성이 커졌다.

담뱃값 인상이 ‘제로 물가’에 근접한 저물가 상황을 가리는 착시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게 대표적이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지난해 담뱃값을 제외한 물가상승률은 0.1%에 불과하며 이는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할 수치”라며 “그런데도 한은은 이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 정책이나 원화가치 변동 같은 요인이 물가를 부풀리거나 줄여 실제 상황을 왜곡하면 정부나 한은의 정책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연구위원은 “자칫하면 물가만 보고 내수가 튼튼하지 않은데 돈을 조이는 ‘정책 미스’를 할 가능성도 있다”며 “물가지수가 경기 상황을 보다 정확히 반영할 수 있도록 항목 개편 등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근원인플레이션=소비자물가에서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물가상승률을 뜻한다. 일시적인 요인으로 가격 변동이 큰 품목을 빼고 물가를 측정해 통화량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더욱 정확하게 분석하기 위한 지표다. 한은이 1999년 11월부터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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