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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직자리 알아봐 줄게” 17세와 성관계한 43세 ‘무죄’

중앙일보 2016.01.20 03:05 종합 1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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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앙포토]

17세 여고생이 “취직자리를 알아봐 준다”는 40대 중년 남성과 성관계를 가졌다면 자발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법원 “원치않는 성관계 입증 안돼”
“미성숙한 미성년자 감안 안하나”
일부선 ‘적극적 법 해석’ 주문도

2014년 4월 당시 17세의 A양은 방과후 다니던 간호학원의 행정원장 김모(43)씨로부터 “수업이 끝난 뒤 실습실을 청소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청소를 마치자 김씨는 중국음식을 배달시켜 A양과 함께 먹었다.

야간에 실습실에 둘만 남게 되자 김씨는 A양에게 “나랑 사귀면 용돈도 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좋은 곳에 취직시켜 줄 텐데”라고 말했다. 식사가 끝나자 “내가 남자친구가 돼 줄까. 우리 오늘 사귀는 거다. 첫날을 기념해야 한다”며 자신의 옷을 모두 벗었다. 이어 겁을 먹어 어쩔 줄 몰라 하는 A양과 성관계를 가졌다.

김씨는 다음 날 학원을 마치고 나오는 A양을 차에 태워 주차장으로 간 뒤 성관계를 두 차례 더 가졌다. A양은 알고 지내던 사회복지사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검찰은 지난해 수사 후 취직 관련 영향력을 이용해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로 김씨를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동부지법 형사12부(부장 김영학)는 김씨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위계 등 간음)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19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이후 A양이 김씨를 ‘오빠’라고 부르는 등 성폭행 피해자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행동을 한 것을 근거로 들었다.

또 성관계 다음 날에도 함께 차를 타고 나가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고 학원을 계속 다닌 점 등이 미심쩍다고 판단했다.

A양의 진술이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 여러 차례 바뀐 점도 감안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피해자에게 위력을 행사해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가진 것인지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판결을 두고 일각에서는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상태의 미성년자와 어른의 성관계를 지나치게 경직된 기준으로 판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15세 여중생을 강간한 혐의로 기소된 40대 연예기획사 대표에 대해 대법원이 2014년 11월 “둘은 사랑하는 사이였다”며 무죄를 선고한 이후 하급심에서도 이런 판결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한다.

▶[판결 인사이드] 기사 보기
①형법상 모욕죄, 'X발' 은 무죄 '개XX'는 유죄
②'리벤지 포르노' 처벌할 수 없다?…대법원 판결 논란

이에 대해 차미경 여성변호사회 사무총장은 “13~19세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한 어른의 경우 정신적·물리적 협박을 했음이 입증돼야 처벌이 가능하나 심리적으로 위축된 미성년 피해자들은 법정에서 제대로 진술을 못하는 일이 많다”며 “법원이 보다 적극적으로 법 해석에 나서야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부적절한 성범죄를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민제·백수진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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