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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4만원, 애인사진, 부적…2030 지갑 속은 아날로그

중앙일보 2016.01.20 02:35 종합 2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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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발매된 박유천의 솔로앨범엔 이런 제목의 노래가 담겼습니다. ‘당신의 지갑에는 얼마의 사랑이 있나요’.

[젊어진 수요일] 청춘리포트- 50명 지갑 열어보니


청춘의 지갑을 주제로 이번 호를 준비 중이던 저는 이 노래를 마주하고 문득 멈칫했습니다. 지갑에 돈이 아닌 사랑을 담을 수 있다니….

그런데 청춘리포트팀이 들여다본 청춘 50명의 지갑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현금이나 제대로 된 신용카드는 부족했지만 그 속엔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물건들이 소담스레 담겨 있었습니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외출할 때 제일 먼저 챙기는 것, 깜빡 잊어 안 갖고 나오면 집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 없어진 걸 알게 된 순간 눈앞이 아찔해지는 것. 바로 지갑이다.

지갑은 언제나 주인의 품 한쪽을 차지하며 자연스럽게 그의 일상을 담는다. 그만큼 주인과 가장 많이 닮아 있는 생활소품 중 하나다.

 청춘리포트팀이 지갑에 주목한 건 그래서다. 청춘의 지갑을 엿보면 요즘 청춘들의 생생한 삶을 들여다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청춘리포트팀은 20~30대 남녀 50명의 동의를 얻어 이들의 지갑을 직접 열어 봤다. 청춘의 지갑에는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


취미 >> “기타 치는 게 취미예요. 기타 칠 때 꼭 필요한 게 피크(pick)잖아요. 그래서 항상 넣고 다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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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 백호선(20)씨의 말처럼 지갑 속에는 주인의 취미가 담긴다. 청춘 남녀 50명 중 10명이 자신의 취미와 관련된 물건을 지갑에 넣고 다녔다.

 월 생활비의 80%를 문화생활에 쓰고 있다는 대학생 정지혜(21·여)씨는 좋은 공연을 보고 나면 입장권을 꼭 지갑 속에 보관한다.

가수 성시경의 ‘왕팬’인 정창현(21)씨도 콘서트를 VIP석에서 봤던 기억을 떠올리며 입장권을 지갑에 넣어 뒀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리버풀 FC의 광팬인 취업준비생 이광영(26)씨는 리버풀 공식 마크가 새겨진 신용카드를, 프로야구 구단 두산 베어스의 광팬인 김수비(25)씨는 두산 베어스 멤버십카드를 지갑 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여행을 좋아해 여행지 대중교통 티켓을 갖고 다니는 대학생 정세영(24)씨도 있었다.

 하지만 사회초년생들의 지갑에선 유독 ‘취미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영화관람권 정도였다.

회사생활 3년 차인 김만국(30)씨는 “직장인이 된 뒤 취미생활을 즐길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의 지갑 속엔 업무일정표와 거래처 명함 5장이 담겨 있었다.

희망 >> 스마트폰과 더불어 사람들이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게 지갑이다. 그렇다 보니 행운을 가져다주는 물건이나 불운을 막기 위한 부적 등을 지갑 속에 넣고 다니는 청춘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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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인 이유주(29·여)씨는 행운의 네 잎 클로버를 코팅해 지갑 속에 넣고 다녔다. 박윤숙(21·여)씨는 지난해 가을 남자친구가 준 은행잎을 잘 말려 간직하고 있었다.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알려진 ‘2달러 지폐’도 지갑 속 인기 아이템이다.

취업준비생 안지현(28·여)씨는 “원하는 곳에 취업하라는 의미로 아버지가 선물해 주신 행운의 2달러 지폐를 항상 지갑에 넣고 다닌다”고 말했다.

 ‘대박 행운’의 상징, 로또는 2명의 지갑 속에서 발견됐다. 대학생 성정은(22·여)씨는 “오늘의 운세를 보니 ‘로또를 사라’고 적혀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 봤는데 하나도 안 맞았다”며 웃었다.

 2명의 지갑에선 불운을 막기 위한 부적이 나왔다. 자녀를 걱정하는 마음에 부모님이 준 부적이었다. 대학생 김난진(22)씨는 “몇 달 전 외할머니가 주신 부적을 지갑에 넣고 다닌다”며 “무슨 의미가 담긴 부적인지는 모르지만 어머니가 잘 갖고 다니라고 하셔서 지갑에 넣어 뒀다”고 말했다.

또 싱가포르에서 살다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유학생 대릴 고준양(Darryll Goh Jun Yang·26)은 어머니가 “멀리 유학을 떠나는데 안전하게 다녀오라”며 손에 쥐여 준 불교 부적을 지갑에 간직하고 있다.

사랑 >> 현금·카드·신분증 등 필수품을 제외하면 청춘들이 지갑 속에 가장 많이 들고 다니는 물건은 사진이었다. 50명 중 12명의 지갑 속에서 사진이 발견됐다. 사진에는 주로 친구·연인 등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이 담겨 있었다.

3년 차 초등학교 교사인 김나래(27·여)씨는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3년 전부터 아프리카 어린이에게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는 정창현씨의 지갑 속엔 자신이 후원하는 어린이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사진 외에도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담긴 물건이 많았다. 대학생 백낙영(24)씨는 “친구들과 운동을 하다 보면 다치는 애들이 많아 상처에 붙이는 밴드를 갖고 다닌다”고 말했다.

또 정지혜씨는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헌혈을 30번 하는 것”이라며 헌혈증서 4장을 지갑 속에서 꺼내 보였다. 정씨는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기기 위해 작은 태극기도 지갑에 늘 가지고 다닌다”고 덧붙였다.

 부모님의 사랑은 ‘엄카(엄마 카드)’와 용돈의 모습으로 지갑 속에 담겼다. ‘엄카’란 부모님의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신용카드를 뜻한다.

전예진(25·여)씨는 “꼭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부모님이 주신 카드를 이용한다”고 했고, 박수진(23·여)씨도 “어머니 카드로 교통비를 내고 필요한 물건은 아버지 카드로 산다”고 했다. 또 대학생 김휘견(21)씨는 “얼마 전 친척 어른들이 용돈을 줘 지갑이 두둑하다”고 자랑했다.

 생활 >> 청춘들의 지갑은 전반적으로 가벼웠다. 큰 지갑보다는 작은 카드지갑이나 휴대전화 케이스를 선호했다. 모바일카드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아예 지갑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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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예슬(21·여)씨는 “지갑을 사용하는 게 귀찮아 카드만 한 장 넣고 다닌다”며 “주머니가 지갑”이라고 말했다. 정세림(22·여)씨 역시 “지갑은 잘 안 들고 다니고 주로 쓰는 카드 몇 장만 넣은 카드지갑을 들고 다닌다”고 말했다.

 지갑 속에 가지고 다니는 물건은 연령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났다. 대학생들은 USB 메모리와 군대 관련 물건을 지갑에 넣고 다녔다. 정슬지(22·여)씨는 “학교 과제가 많아 지갑에 과제 제출용 USB 메모리를 달고 다닌다”고 했다.

군대에 갈 예정이거나 최근 전역한 학생들의 지갑에선 나라사랑 카드나 전역증, 군대 계급장 등이 발견됐다. 백낙영씨는 “지난해 12월 전역을 하며 군복에 달아야 할 계급장을 들고 나왔는데 상징적 의미로 지갑에 넣고 다닌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들의 지갑에선 매일 공부하러 가는 도서관의 출입카드, 도서관 내 인쇄기를 사용할 수 있는 프린트 카드, 도서관 사물함 열쇠, 증명사진 등이 나왔다.

사회초년생의 지갑에서는 대학생·취준생의 지갑에선 볼 수 없는 물건이 많았다. 사원증과 명함 등이다. 주차권이나 회사 업무일정표 등도 눈에 띄었다.

지난해 취업한 박진응(28)씨는 “회사 취업 후 그전에는 없었던 신분증이 새로 생기고, 또 주고받는 명함들도 생기다 보니 그만큼 책임도 무거워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윤정민 기자, 강지민·김지아 인턴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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