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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고가 폐쇄 한 달, 미싱 소리 줄어드는 만리동

중앙일보 2016.01.20 02:12 종합 2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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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 폐쇄된 서울역고가와 중구 만리동의 만리재로가 맞닿은 곳. 사진의 오른쪽 지역에 주로 옷을 만드는 봉제공장들이 있다. [사진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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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륵, 드르륵.” 영하 15도로 온도계 수은주가 곤두박질한 19일 서울 중구 만리동 골목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미싱 소리가 울려퍼졌다.

“염천교 우회, 원단 배달시간 두 배
납품 늦어지면서 거래처 절반 끊겨”
봉제공장들, 일주일에 3~4곳 떠나
동대문 가까운 신당동 등으로 이전

페달을 밟아 원단에 박음질하는 직원들을 바라보던 A 봉제공장의 사장 최모(41)씨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 달 만에 매출이 30% 줄었네요.” 15년째 이 공장을 운영 중인 최씨는 요즘 이사를 생각하고 있다.

 만리동 봉제공장 주인들은 요즘 생존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지난달 13일 서울시가 “공원으로 탈바꿈시키겠다”며 서울역고가를 폐쇄하면서부터다. 배달 시간이 늦어지면서 남대문·동대문 시장 거래처들의 주문이 뜸해졌다.

 최씨는 “원단을 주문하면 동대문에서 30분이면 도착했지만 이제는 북쪽에 있는 염천교를 우회하다 보니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났다. 작업이 마감 시간을 넘기기 일쑤”라고 말했다.

만리동 봉제공장들에게는 동대문 시장 등에서 자재를 받아 옷을 만들어 납품하는 게 주된 일이다. 오후 8시쯤에 완성된 옷들은 동대문 상가의 밤 시장에 진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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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봉제공장 운영자가 19일 폐쇄된 서울역고가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 전민규 기자]


신상품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는 동대문 소매상들은 납품이 지연된 옷을 잘 받아주지 않는다. 최씨는 “몇 차례 배달이 늦어지자 거래가 절반가량 끊겨버렸다”고 말했다.

최씨는 “일주일에 공장 3~4곳이 만리동을 떠난다. 조금만 더 버텨보고 안 되면 동대문과 가까운 곳으로 옮길 것”이라고 말했다. 만리동 곳곳에 ‘봉제 전문’이란 팻말이 붙은 대문이 굳게 잠겨 있는 공장들이 있다.

떠나는 자도 고민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W사 주인 김모(46)씨는 “만리동 공장(월세 65만원)의 임대계약이 1년 남았지만, 손해를 감수하고 동대문에서 가까운 신당동(월세 140만원)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지금 공장을 포함해 월세가 갑자기 200만원이 넘으니 걱정에 잠도 안 온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최근 이 일대 교통 흐름이 더 원활해졌다고 발표했지만 김씨는 “우리가 체감하는 것과는 너무 다르다”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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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동 봉제공장 거리는 1970~80년대 남대문 시장과 동대문 의류상가의 발전과 함께 형성됐다. 주로 다세대 주택이나 건물 지하에 터를 잡고 2~3인으로 운영하는 영세한 규모다. 마포구의회 허정행 의원에 따르면 만리동 일대에는 봉제공장이 1000개가량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공장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만리동 일대 상권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인근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채의임(63)씨는 “‘봉제 공장이 잘 돌아가야 만리동이 먹고 산다’는 말이 있는데, 공장들이 떠나니 가게를 찾는 손님도 확 줄었다”고 말했다.

가구점 사장 이명희(60)씨는 “택시기사들도 ‘4~5일 만에 한 번쯤 온다’고 할 정도로 통행량이 줄었다. 매상이 지난해의 3분의 1도 안 된다. 장사한 지 40년 됐는데 최악이다”고 말하며 눈물까지 보였다.

 ◆서울시 12월에 봉제지원센터 마련=서울시는 만리동 인근에 서부권 봉제지원센터를 올 12월에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봉제공장 사업에 대한 전문가 상담, 디자이너와의 협업 주선도 고려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상인은 “그때쯤이면 이 곳에 공장이 별로 남아 있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조진형 기자, 김해정(부산대 불어불문) 인턴기자 enish@joongang.co.kr
사진=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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