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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흔든 시 한 줄] 정목 스님·정각사 주지

중앙일보 2016.01.20 01:34 종합 2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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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꽃 손에 받아
사방을 두루 둘러본다
(중략)
그 문전
닿기도 전에
이 꽃잎 다 시들겠다

- 김상옥(1920~2004), ‘그 문전(門前)’ 중에서
 

가볍고 가벼워진 사람들 관계
김상옥 선생님이 더욱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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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에 꽃이 눈처럼 날린다. 그 꽃잎을 소중히 받아 사랑하는 이에게 전해주고 싶다. 그런데 아무리 불러도 그 사람은 여기 없다. 달려가 전하고 싶지만 그사이에 꽃잎이 다 시들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깃든 시다. 누구나 아름다운 것은 고마운 사람과 나누고 싶어한다. 20대 중반에 우연히 만난 시조시인 초정(草汀) 김상옥 선생님이 내겐 그런 분이다. 40년 나이 차를 뛰어넘는 문학의 스승이셨다.

당시 1주일에 한 번꼴로 선생님 댁을 방문했다. 선생님께선 꼭 좋은 시를 두세 편 읽어주셨다. 나무에 새순이 아기 이빨처럼 뾰족뾰족 나올 무렵 “저것 좀 보세요. 나는 저럴 때 미쳐요”라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시 한 줄을 완성하려면 “마치 우황 든 소처럼 앓았다”던 말씀도 생생하다. 선생님께선 시서화(詩書畵)에 능하셨다. 사물 하나를 대할 때도 늘 어머니가 애달픈 자식을 바라보듯 하셨다.

너무나 가볍게 만나고 가볍게 헤어지는 시대, 올봄에는 시간을 내서 통영에 있는 ‘김상옥 거리’를 걸어봐야겠다.  정목 스님·정각사 주지

시 전문

그 문전  -김상옥

모처럼
지는 꽃 손에 받아
사방을 둘러본다

지척엔
아무리 봐도
놓아줄 손이 없어

그 문전
닿기도 전에
이 꽃잎 다 시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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