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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중앙일보 2016.01.20 01:33 종합 2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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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 논설위원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야구에서는 그렇다. 9회 말 2아웃에도 승부가 뒤집힌다. 포수 출신으로 미국 야구계의 전설인 요기 베라(1925~2015)가 남긴 이 말과는 달리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The end is not truly an end)’라고 할 경우도 많다. 오히려 다수를 점한다.

 그렇다는 것을 드러내는 사례들이 많다. 예컨대 최근에 여러 추억을 되살리고 종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나 676년에 끝난 신라의 삼국통일의 경우다. 특히 승자가 아닌 경우에는 종결 이후에 더욱 아쉬움이 남고, 토론이 남고, 심지어 한(恨)이 남는다. 고구려가 삼국통일 주역이었어야 한다는 ‘고구려통일마땅론’이 있는 것처럼, 비록 ‘어남택(어차피 남편은 택이)’ 진영에 밀렸지만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 진영은 ‘혜리의 남편은 류준열이 마땅했다’로 이미 진화 중이다.

 뭔가가 끝나고 난 다음에 들이닥치는 승패의 결과를 깨끗이 인정하기는 정말 힘들다. 자존심 때문이건 정의의 이름을 욕되게 하면 안 되기 때문이건. 우리는 어릴 때부터 승패 다툼의 끝을 체험하지만 승복은 나이가 든 다음에도 어렵다.

 어려서부터 익숙한 동요 ‘그대로 멈춰라’(김방옥 작사·작곡)에는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가 네 번 나온다. 노래 중간에 놓인 것은 “눈도 감지 말고 웃지도 말고 울지도 말고 움직이지 마”라는 지상명령이다. 지금 총선과 대선을 준비하는 주자들과 그들의 진영·정당은 그대로 멈춰야 하는 선거운동 마감 시각까지 오전에 울고 오후에 웃으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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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그대로 멈춰라’ 게임을 하는 어린이나 선거 출마자가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승자에게 허락되는 숭고한 영광과 실리적인 혜택 때문이다. 연애 성공과 실연, 대학 합격과 불합격, 승진과 승진 누락, 당선과 낙선의 차이는 크다. 게다가 승자에게는 승자독식(勝者獨食)이 허용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정치의 경우에서도 승자독식제를 채택하고 있다.

 승리에 취한 승자는 역사 서술까지 독식할 권능이나 권한이 자신에게 있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본다. 역사는 승자가 편집한다는 것이다. 반(半)만 그렇다. 승자는 자신이 누구를 상대로 이겼는지를 밝힐 수밖에 없다. 상대 없는 승리는 없기에 패자는 반드시 기록된다. 패자가 위대할수록 승리가 더욱 빛난다. 승자는 패자의 위용을 과장함으로써 자신의 승리를 더 영광스럽게 만들려는 유혹에 빠진다. (예컨대 백제 의자왕과 관련된 ‘3천 궁녀설’이다. 이 설을 주장한 사람은 의도한 바와는 달리 백제의 융성뿐만 아니라 어쩌면 성군이었을지 모르는 의자왕에 대한 궁녀들의 충성심을 드러낸다.) 때가 되면 기록된 패자는 부활하기 마련. 승자와 패자는 모두 재해석이라는 심판을 받는다.

 심판은 ‘역사는 불가역(不可逆)’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조건 속에서 실시된다. 예컨대 이승만 박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은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논란의 여지 없이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또 ‘국부(國父·The Father of His Country)’이자 ‘건국의 아버지들(The Founding Fathers)’ 중에서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자면 ‘건국의 아버지들 중에서도 최고(The Foundingest Father of them all)’라고 학자와 일반 국민의 평가를 받는 조지 워싱턴에 비하면 이승만 대통령의 입지는 사실 취약하다. ‘진정한 국부’는 백범 김구 선생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라이벌이 없는 조지 워싱턴과는 달리 이승만과 김구의 정치적 유산(legacy)은 영원히 경쟁한다. 두 분의 승부는 아마도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대한민국의 역사가 더 건강하게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경쟁은 좋다.

 끝나지 않는 건국·국부 논쟁 속에 세계적인 승자독식주의의 폐해를 해결할 씨앗이 자란다. 전 세계적으로 독식이 심화되고 있다. 세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모범인 미국에서 특히 그렇다. 독식의 원인이 세계화라는 구조적인 변화에 따른 경쟁 때문이건 양극화를 심화시키거나 방조하는 잘못된 정치 때문이건 『승자독식사회(The Winner-Take-All Society)』(1995), 『승자독식정치(Winner-Take-All Politics)』(2010)라는 책이 나올 정도로 미국에서 승자와 패자의 비율은 20대 80을 오래전에 넘어 1대 99로 치닫고 있다. 승자독식사회는 ‘톱의 톱(the top of the top)’에 들지 않고서는 끝이 안 보이는 사회다. 옛날에는 소위 SKY건 아이비리그건 어느 정도까지는 ‘공부 끝, 성공 시작’을 보장했다. 지금은 전혀 아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다음 번 총선과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건, 어느 정당이 다수당이 되건, ‘이젠 끝이다’라며 승자독식으로 마음껏 해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얄궂게도 승자독식이 만연한 사회와 경제는 승자독식형의 정치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는다. 승자독식사회와 경제의 틀을 깰 수 있는 것은 승자독식을 거부하는 승자다. 패자를 포옹하는 승자다. 끊임없이 설득하고 사과하고 반성하는 승자다. 역사와 정치에는 끝이 없기에 시작만 있다. 승자는 없고 항상 새롭게 시작하는 ‘역사적 인간’만 있을 뿐이다.

김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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